[권영설의 '경영 업그레이드'] 사내 벤처가 시급한 이유

문명은 발전할수록 복잡해진다. 문제가 연쇄적으로 터질 때 사람들이 대처하는 첫번째 방식은 문제의 단순화다. 한두 가지의 간단한 해결책을 동원해 문제를 풀어보려고 애쓴다. 그러나 점점 고도화되는 문명은 그 시간 동안 더욱 복잡해지기만 한다. 해결책이 실패로 돌아가면 사람들은 위기감에 빠진다. 해결책이 없다는 판단을 하게 되고 믿음에 의지한다. 미신에 빠지고 종교행사에 매달리다 또 시간을 놓친다. 마침내 문명의 복잡성은 극에 달해 폭발하고 만다.

문명 붕괴의 과정을 흥미로운 필치로 그려낸 《지금 경계선에서》에서 저자인 레베카 코스타는 왜 거대한 문명이 하루 아침에 종말을 고하는지를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실제 마야문명의 경우 물(水) 문제가 초기부터 큰 걸림돌이었다. 댐을 만들거나 저수지를 만드는 단순한 해결책을 동원해 봤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마침내 이들은 어린아이나 처녀를 희생양으로 바치며 믿음에 의존했다.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고 마야문명은 사라지고 말았다. 저자는 이 책에서 현대 문명의 갖가지 문제가 점점 거대해지고 있어 어지간한 해결책으로는 풀릴 수 없다고 강조하고 있다. 세계적인 금융 위기,지구온난화 문제 등이 해결되기는커녕 점점 더 복잡해지는 건 이미 인간의 두뇌 범위를 넘어서고 있어서다. 국내적으로 최근 논란의 중심이 되고 있는 '초과이익공유제''국민연금을 통한 기업 감시' 등도 하나의 해결책으로 모든 것이 풀릴 것이라고 믿고 있다는 점에서는 별 차이가 없다. 정부의 '묘안'에도 불구하고 전셋값이 좀처럼 잡히지 않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런 대책들이 실패를 거듭하면 정책 당국자들은 시장을 탓한다. 그것도 문명붕괴에서 나타나는 믿음에 의지하는 경향과 별반 다를 바 없다.

문명 붕괴 과정은 기업에 적용해도 마찬가지다. 21세기 들면서 세계의 모든 기업들은 저성장 국면이라는 새로운 환경에다 고령화와 인터넷의 대중화라는 거센 물결 속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묘하게도 문제가 복잡한 기업일수록 단순한 해결책,예를 들면 유능한 외부 인사를 스카우트하거나 명예퇴직 등 조직을 슬림화하는 조치로 모든 문제가 풀릴 줄로 기대하는 경향이 있다. 문제는 이런 한두 가지 해결책이 통하지 않을 경우 조직에는 더욱 복잡한 일들이 벌어진다는 사실이다. 사람을 내보내는 바람에 신상품을 개발하지 못해 기회를 놓치고 또 조직에 과도한 스트레스가 가해져 기업문화 자체가 붕괴되는 일이 생기기도 한다.

희망이 없는 것은 아니다. 통찰력(insight)있는 경영자가 '간단하게' 경영을 정상화시키는 사례를 우리는 많이 목격했다. 다만 통찰력이라는 것이 보통의 경우 주변의 공감을 이끌어내지 못하는 속성이 있다. 어지간한 조직에서 통찰력은 항상 소수 아이디어로 밀린다. 이런 상황에서 유일한 해결책은 문제를 단순한 조치 몇 가지로 풀려고 하지 말고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 아이디어를 쏟아내는 일이다. 수십개,수백개의 아이디어도 좋다. 이 가운데 한두 가지가 통찰력 넘치는 아이디어로 구체화돼 문제를 해결하는 단초가 되는 것이다. 수많은 실패에도 불구하고 단 10%만 살아남아도 기적을 일으키는 모델,바로 벤처모델이다.

한두 가지 조치로는 절대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직원들과 파트너의 잠재력을 극대화하는 사내 벤처모델을 긴급하게 가동해야 한다. 문명의 붕괴에서 배울 수 있는 기업 경영의 교훈이다.

권영설 한경아카데미 원장 yskw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