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기금 '주주권 강화' 논란] 군사정권 시절엔 정치자금 갈등…노무현 이후 '기업 지배구조' 타깃

● '대기업 때리기 시나리오' 재계 공포…정부-재계 충돌 '잔혹사'

MB '기업 프렌들리'로 출발…집권 후반기 '공정' 내걸고 대기업 때리기 정책 쏟아내
5공 시절인 1985년 재계 순위 7위였던 국제그룹이 갑작스레 공중 분해됐다. 당시 정치자금 제공과 관련해 전두환 대통령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었다는 게 정설이다.

한 재계 관계자는 "역대 정권과 대기업의 관계는 '맹수와 초식동물'에 비유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정권이 마음 먹기에 따라 한 기업의 운명이 낙엽처럼 떨어지곤 했기 때문이다. 역대 정권은 하나같이 경제 번영을 이야기하며 친기업을 외쳤다. 그러나 음지에서는 기업을 정치자금 창구로 이용했으며,심사가 뒤틀리면 칼자루를 휘둘렀다. 노무현 정부 이후 정치자금 수수를 둘러싼 갈등은 크게 사라졌지만 기업지배구조 개선이란 명목 아래 대기업 오너의 승계를 놓고 정권과 기업 간 또 다른 갈등이 지속되고 있다.

◆정치자금을 둘러싼 갈등

개발연대 시대엔 대기업은 정권의 '정치자금 줄'이었다. 정부가 신규 사업 진출,금융 지원 등 각종 특혜를 주는 대가로 정치자금을 요구했다. 사업을 확장하려는 기업들도 이런 공생관계를 유지해 왔다. 군사정권 시절 전두환 · 노태우 대통령은 기업들의 손목을 비틀어 수천억원의 정치자금을 받았고,이것이 문제가 돼 김영삼 정부에서 30대기업 총수들이 줄줄이 법정에 섰다. 정권의 '주문'이 도를 넘어서자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은 '더러운 놈들.그까짓 거 내가 해버리면 되지!'라며 직접 정권에 도전했다. 현대그룹은 김영삼(YS) 정부시절 그룹의 모든 계열사가 강도 높은 세무조사를 당하는 보복을 당했음은 물론이다. YS 정부는 개혁의 슬로건으로 '문어발을 잘라야 한다'고 했고,김대중 정부도 외환위기의 주범으로 대기업을 지목하며 '재벌 때리기'에 나섰다. 김대중 정부 때는 외환위기 극복 과정에서 '빅딜(사업 교환)'을 놓고 큰 충돌이 빚어졌다. 당시 반도체 사업을 넘겨준 LG그룹은 하이닉스반도체만 보면 가슴을 칠 정도다. 대북 사업과 남북 정상회담 성사를 둘러싼 4억달러의 대북 송금 논란은 2003년 노무현 정부 출범 직후 특검을 거쳤다. 그 와중에 정몽헌 현대그룹 회장이 안타깝게 목숨을 버렸다.

◆지배구조와 승계문제 논란

노무현 정부 때부터 정치자금 논란은 점차 수그러들었다. 정부는 그 대신 대기업의 지배구조와 편법 승계 문제를 물고 늘어졌다. 삼성에버랜드의 전환사채(CB) 저가 발행 논란이 대표적이다. 2000년 6월 법학교수 43명은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등 33명을 특가법상 배임 혐의로 고발했다. 이 문제는 '편법 승계 논란'으로 이어지면서 2009년 법원 판결로 사실상 무혐의 판정을 받을 때까지 11년간 삼성그룹을 짓눌렀다. 참여연대를 비롯한 시민단체가 삼성을 비롯한 대기업 공격의 선봉장 노릇을 했다. 노무현 정부는 사외이사제 강화 등 지배구조 개선과 이명박 정부에서 위력을 발휘하고 있는 '상생 협력'을 정권 차원에서 밀어붙였다. 집권 초기 대기업 총수들이 비자금 관련 혐의로 줄줄이 검찰수사를 받은 뒤 구속됐다. 2004년 삼성전자가 큰 이익을 내자 '삼성공화국' 논란이 다시 불거져 노무현 정부 말기까지 반기업정서가 팽배했다.

경제대통령을 자처하며 당선된 이명박 대통령은 당선인 신분으로 전경련을 첫 방문,'비즈니스 프렌들리'를 표방하며 친기업을 외쳤다. 쇠고기 촛불시위로 지지율이 곤두박질치자 '친서민 · 중도실용' 기조를 내걸며 방향을 틀었다. 집권 후반기엔 공정사회와 대 · 중소기업 동반 성장을 강조하며 대기업을 압박하기 시작했다. 김종석 홍익대 교수는 "선거를 앞두고 거대 기업을 공격함으로써 대중의 지지를 끌어올리려는 포퓰리즘 정책으로 바뀌고 있다"고 말했다.

장진모 기자 j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