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 오른 복수노조시대] (中) 英BL, 노조 17개 난립해 도산…日선 강성노조 힘 잃고 노사 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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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中) 기업들 대응 전략…선진국 복수노조 '명암'단위사업장 복수노조 허용은 서로 다른 성격의 노조가 여러 개 난립할 수 있는 만큼 노무관리를 해야 하는 기업 입장에서는 득보다 실이 많은 게 사실이다. 오래전부터 복수노조를 허용하고 있는 선진국에서도 노동운동이 활발했던 1950~1990년대 사이에 복수노조로 인해 치명적인 손상을 입은 기업들이 많다. 노조 측의 과도한 요구와 노조 간 선명성 경쟁 탓이다. 하지만 복수노조의 폐해가 단기간에 그치고 오히려 노사안정을 찾은 나라들도 많다.
에어프랑스, 1년 내내 勞ㆍ勞 갈등…미쓰비시重은 1개 노조로 통합
영국의 브리티시 레이랜드(BL)는 197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종업원 20만명에 영국 내 시장점유율이 35%에 달할 정도로 잘나가던 자동차 생산기업이었다. 1960년대 후반 로버자동차를 인수 · 합병하면서 세계 6위의 자동차회사로 올라선 이 회사에는 무려 17개 노조가 난립했다. 1년 내내 노노 간 선명성 경쟁이 끊이지 않았고 결국 경영난 악화로 1992년 도산하고 말았다. 복수노조로 인한 폐해를 줄이기 위해 과반수 노조에 단체교섭권을 부여한 배타적교섭권제를 도입한 미국 역시 복수노조의 덫에 걸린 기업이 많았다. 세계 항공업계를 선도하던 미국의 팬암항공은 1980년대 후반 경영이 악화돼 파산위기에 몰린 상황에서 노노갈등이 겹쳐 파산한 케이스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노동조합이 가장 많은 프랑스의 경우 1년 내내 조합원 확보싸움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에어프랑스에는 19개 노조가 난립해 서로 다른 요구를 내놓으며 회사 측을 압박하고 있다.
하지만 복수노조가 오히려 강성노조의 운동노선을 전환하도록 작용한 나라도 많다. 일본은 1950~1970년대 강력한 기업 합리화 정책에 반대하는 노조의 쟁의과정에서 복수노조가 기업에 유리하게 작용한 대표적 사례다. 이때 좌파 노동단체인 총평소속 노조는 강경투쟁을 주도했고 온건노선의 제2 노조는 회사 입장을 대변하면서 대립하는 등 노노갈등이 심했다. 그러나 조합원들은 결국 온건노조를 지지하는 쪽으로 분위기가 바뀌었고 복수노조로 인한 노사갈등은 쉽게 가라앉았다.
복수노조 체제 아래 위기에 몰렸다가 여러 개 노조가 하나로 통합해 회생한 기업도 있다. 일본 제너럴 석유정제는 노노 및 노사갈등이 심해 1970년에는 100일간 파업을 벌인 적이 있다. 경영 손실이 늘어나면서 노조원들 사이에 회사가 망할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이 확산됐고 결국 여러 개 노조 지도부가 단일화를 결의,노사안정을 찾았다. 일본 미쓰비시중공업 나가사키조선소에는 1950년대만 해도 무려 32개의 노조가 난립해 있었으나 1968년 단일화되며 노사안정을 찾았다.
많은 전문가들은 일본의 사례를 들어 우리나라도 복수노조가 시행될 경우 노사관계가 좋아질 것으로 예측한다. 힘의 균형이 사용자에게 유리하게 돌아갈 수밖에 없고 투쟁에 싫증을 느끼는 일선 조합원들은 합리적 노동운동을 지지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윤기설 노동전문기자 upyk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