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국격 갉아먹는 통ㆍ번역 오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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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실수가 국가간 협정 걸림돌우리나라가 올해 주최하는 국제행사 중 가장 큰 것은 6월 말의 세계검사연맹총회(IAP) 겸 검찰정상회의(WS)와 8월 말의 대구 세계육상선수권 대회다. 특히 IAP · WS는 유엔의 공식언어 6개에 우리말을 더한 7개 국어로 동시통역을 하게 되는 중요한 행사이다.
우리말ㆍ한자ㆍ영어 함께 가르쳐야
국제행사에서 원활한 통번역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은 행사의 격을 한 단계 끌어올리는 일이다. 반대로 국제행사 준비에 아무리 많은 투자를 해도 통역이 잘 되지 않으면 회의 전체 평가는 낮아진다. 때로는 치명적인 오류가 나올 수도 있는데,최근의 한 · 유럽연합(EU) 자유무역협정(FTA) 협정문 오역 소동도 평소 번역에 관심을 가지고 적절한 투자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흔히들 국제회의 통역을 의뢰하는 이들은 통역사들이 그 많고 어려운 전문용어를 어떻게 알지 염려한다. 물론 전문용어는 어렵고 복잡할 때도 있지만 전문 통역사란 단기간에 그런 용어들을 이해하고 활용하는 능력과 경험을 가진 사람들이다. 훌륭한 통역의 관건은 그런 용어 자체가 아니라 회의 내용을 이해하는 능력과 그 내용을 다른 언어로 옮겨 전달할 수 있는 기초 언어 및 소통 능력의 유무이다.
그런데 최근 세계에서는 3개 언어 이상이 쓰이는 다국어 국제회의는 점점 줄어들고 있는 추세다. 영어가 국제공용어가 돼 많은 행사가 영어라는 단일언어로 진행되는 경우가 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이지만 세계적으로 영어를 하는 사람이 많아지면서 통역의 필요성이 적어지고 궁극적으로 통역이란 직업도 사라질 수 있다는 주장까지 나오는 실정이다.
몇 년 전부터 통번역대학원 지원자들 사이에 "통역이 없어지는 마당에 통번역대학원에 장래가 있나?"라는 질문이 나오는 것도 그런 연장선상에 있다. 하지만 로봇이 한정된 기능을 완벽히 수행할 수는 있어도 인간을 완전히 대신할 수는 없듯이 통역도 마찬가지이다. 설령 아무리 탁월한 통역기가 나온다해도 한정된 분야나 일정한 어역은 몰라도 변화무쌍하고 미묘한 인간의 마음을 표현하는 말을 온전히 옮기는 일은 결국 통역사의 몫이다. 그런 점에서 모국어와 외국어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와 풍부한 표현능력을 갖춘 우수한 통번역사를 양성하는 일은 지속적으로 확대돼야 할 것이다. 인터넷 시대에 통역에 가장 중요한 모국어보다 영어 교육이 우선시되고,우리말의 근원이 되는 한자도 제대로 가르치지 않아 그런지 몰라도 우수한 통번역 인재가 점점 더 줄어드는 것 같아 안타깝다. 우리 정부 외교문서의 한국어 번역 실수도 영어 중시,모국어 경시 풍조 때문에 일어난 일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훌륭한 통번역으로 세계와 소통의 다리를 놓는 것은 국격을 높이는 일이다. 통번역은 언어 · 문화적 능력 외에 진정으로 손님을 위하는 주인의 마음가짐을 필요로 한다. 대구 세계육상선수권대회 같은 스포츠 행사에서 스포츠 기구의 회의 동시통역이야 전문가들한테 맡기면 되지만 각국 선수와 임원,외국 관광객들의 통역의 경우 더 그렇다. 특히 통역 자원봉사자는 많을수록 좋긴 하겠지만 그 이상의 것이 필요하다. 언어 능력이 다소 떨어지더라도 진정으로 손님들을 위하는 마음이 있으면 손짓 발짓으로라도 그들을 감동시킬 수 있으며 그런 태도가 더 오래 기억에 남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2014년 인천 아시안 게임,2015년 광주 유니버시아드,아직은 확정되지 않았지만 2018년의 평창 동계올림픽 대회를 준비하면서 회의 동시통역을 포함해 최소 인원으로 최대의 효과를 거두는 길을 찾아야 한다. 그것은 가능하다. 1988년 서울올림픽 이후 수많은 스포츠 행사를 주최한 우리나라 국민들은 이제 외국인을 두려워하지 않고 좀 모자라는 영어로나마 웃으며 안내할 수 있는 능력을 갖췄기 때문이다.
곽중철 < 한국외대 통번역대학원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