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금감원] 권혁세 원장의 '뼈깎는' 개혁안, 대통령조차 설득 못시켰다

재산공개 4급까지 확대…감사 추천도 철폐
노조案보다 강도 약해
권혁세 금융감독원장은 4일 오전 여의도 금감원 건물을 불시에 방문한 이명박 대통령에게 5분여간 현안 및 쇄신 방안을 보고했다. 권 원장은 "앞으로 뼈를 깎는 자세로 철저히 쇄신하겠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그러나 금감원의 자체 쇄신 방안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별도의 태스크포스(TF)를 만들어서 이 기회에 관습과 제도를 버리고 위기를 극복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권 원장은 쇄신 방안을 직접 브리핑하려던 계획을 취소했다.
◆'공직자 재산등록 4급 이상'

금감원은 이날 업계와의 유착 방지를 위해 제도 및 관행을 근본적으로 바꾸고 내부통제를 강화해 비리를 근절하겠다는 내용의 쇄신 방안을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청렴도가 낮은 직원은 인 · 허가 공시 조사 등 비리 발생 위험 부서 근무에서 배제하기로 했다. 또 공직자 재산등록 대상을 현재의 2급 이상에서 4급 이상(전체 직원의 77%)으로 확대하는 방안도 검토하기로 했다.

직원들의 재량권도 대폭 제한할 방침이라고 설명했다. 지금까지 직원 한 명이 담당했던 인 · 허가와 공시 업무에 복수심사 제도를 도입한다는 것이다. 담당자의 업무 수행 내용을 상급자가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하는 시스템을 구축하기로 했다. 그동안 '금융회사와의 유착 고리'라는 비판을 받아온 감사추천제는 완전 폐지하기로 했다. 퇴직하는 직원이 감사로 재취업하는 것은 물론 금융회사의 감사 추천 요청이 있더라도 일체 거절하겠다는 것이다.

금감원은 또 내부 감찰과 비리 직원 처벌을 강화해 조직 내 만연한 온정주의를 뿌리뽑는 작업도 진행하기로 했다. 금감원은 금품수수 등 죄질이 나쁜 직원에 대해서는 기본적으로 면직 등 중징계가 내려지도록 직원윤리강령을 전면 개정할 예정이다. 직무 관련자와의 접촉을 금지하고,불가피하게 접촉한 경우엔 신고하도록 했다.

금감원은 직원들이 부당한 청탁과 압력을 받을 경우 즉각 신고하도록 제도화하는 한편 내부고발 직원에 대한 신변보호와 인사에서 우대하는 방향으로 내부고발제도(whistle blower)를 활성화하기로 했다. 금감원 관계자는 "앞으로 조직 내에서 온정주의가 발을 붙이지 못하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국무총리실이 쇄신안 마련

이 같은 금감원의 자체 쇄신 방안에 대해 청와대는 '의미는 있지만 부족하다'고 평가했다. 김희정 청와대 대변인은 "금감원이 내놓은 몇 가지 개혁 방안도 내부적으로는 의미있는 일"이라며 "하지만 제3자적 관점에서 더 강도 높게 기존의 잘못된 제도와 관행을 제대로 고쳐야 하는 만큼 국무총리실 중심으로 관계 부처와 외부 전문가들로 구성한 TF가 근본적인 개혁안을 추가로 만들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앞으로 금감원에 강력한 외부 충격이 가해질 것을 암시한 대목이다.

실제로 금감원의 쇄신 방안은 금감원 노조가 이날 요구한 '4가지 변화의 방향'과 비교해도 그 강도가 약하다. 금감원 노조는 경영진의 금융권 재취업과 관련,"'나까지만'이라는 무책임한 변명을 하지 말고,뼈를 묻겠다는 각오로 전 직원에게 서면으로 분명히 밝히는 게 도리"라고 촉구했다.

류시훈/홍영식 기자 bad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