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금감원] (1) "A저축銀 회장은 금감원 B간부의 스폰서"…비리에 무감각

(1) 구조적 비리 왜

10여년 같은 업무 하다보니…유혹에 취약
은행·증권·보험·저축은행 감사자리 독차지
'퇴직 후 자리' 차지 위해 경력 세탁에만 골몰

국내 금융회사에 막강한 검사 · 감독권을 휘두르는 '금융검찰'인 금융감독원이 1999년 설립 이래 최대 위기를 맞았다. 최근 잇따른 직원 비리와 저축은행 검사 부실이 검찰 수사 등을 통해 드러나면서 질타를 받고 있다. 그동안 누적돼온 병폐가 저축은행 사태를 계기로 한꺼번에 곪아 터져 나왔다는 지적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4일 금감원을 직접 찾아 금감원장이 보고한 쇄신안에 '퇴짜'를 놓은 것도 금감원의 자업자득이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금감원 개혁은 이제 외부의 손에 넘겨지게 됐다. ◆수십년 한우물…유착 구조화

금감원 조직은 크게 은행 증권 보험 저축은행 등 4개 권역으로 구분돼 있다. 1999년 은행감독원,증권감독원,보험감독원,신용관리기금 등 4개 감독기관이 통합됐지만 10년간 4개 권역의 구성원들은 거의 바뀌지 않았다. 길게는 20여년 한 권역에서 근무한 셈이다.

그러다 보니 업계와의 유착'유혹'이 늘 존재했다. 금감원 설립 이후 이런 환경은 바뀌지 않았다. 각 권역의 벽을 넘는 인사 교류나 화학적 결합을 위한 시도는 '전문성을 훼손할 수 있다'는 조직 내부의 논리에 밀려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상당수 금감원 직원들은 "인적 네트워크가 있어야 업계의 정보를 얻고,정보사항을 기반으로 검사와 감독을 제대로 할 수 있다"고 주장해 왔다. 고인물이 썩는 것처럼 한 곳에 오래 있다 보면 유착이 심해지고,감독기관의 칼날은 무뎌진다. 웬만한 편법에는 인정상 눈감아주는 관행이 생긴다. 항간에서는 "A저축은행 회장은 금감원 간부 B씨의 스폰서"라는 루머까지 돌고 있다.

저축은행에서 나타난 문제는 과거 신용관리기금 시절부터 업무 전문성을 위해 계속 저축은행 분야에서 근무한 데 따른 결과라는 지적도 많다. 금감원의 한 관계자는 "과거 상호신용금고에서 출발한 저축은행 오너의 경우 대부분 지방의 토호세력이나 졸부들이 많아 금감원 직원들이 이들의 유혹에 쉽게 넘어간 것 같다"고 말했다.

최근 영업정지를 당한 부산저축은행그룹의 사례는 업계와의 유착이 얼마나 구조화돼 있는지 여실히 보여준다. 대주주 경영진의 불법을 감독원 출신 감사들이 방조했다. 검사인력들은 수차례 검사를 벌이고도 불법과 부실을 적발하지 못했다. 사실상 동조했다는 것이 검찰의 지적이다. ◆금융회사 감사 독차지

금감원은 전 · 현직 간부를 금융회사 감사로 내려보냈다. 부산저축은행 계열인 부산2 · 중앙부산 · 대전 · 전주저축은행 등 4개 계열사 감사는 모두 금감원 출신이었다. 다른 저축은행들도 감사 자리엔 어김없이 금감원 출신들을 앉혔다.

은행들도 비슷하다. 국민은행은 박동순 전 금감원 거시감독국장을 임기 3년의 상근 감사로 선임했다. 한국씨티은행은 김종건 전 금감원 리스크검사지원국장을 감사로 영입하기 위해 주총을 두 차례 열었다. 공직자윤리법에 걸려 정기 주총에서 선임하지 못한 인물을 뽑기 위해 임시 주총을 연 것이다. 증권 · 보험사에서도 금감원 출신들이 돌아가며 감사 자리를 맡고 있다. 40개 증권사 가운데 31개사에서 금감원 또는 옛 증권감독원 출신 인사들이 감사직을 수행하고 있다. 나머지 9개사 감사도 한국거래소와 예금보험공사 등 소위 '힘 있는 기관' 출신이다. 보험업계에서도 대부분 금감원 출신들이 감사 자리를 꿰차고 있다.

금융권 관계자는 "금융회사의 감사는 일상적으로 수행해야 할 업무가 많지 않은 데다 연봉은 최대 4억~5억원에 달할 만큼 대우가 좋다"며 "최고경영자(CEO)의 잘못을 적당히 눈감아 주면서 동고동락하는 것에 만족하는 감사들이 적지 않다"고 지적했다.

◆퇴직 후 자리에만 관심…경력세탁도

공직자윤리법(17조)은 감독당국 직원들이 업무와 연관된 감사 자리로 옮기는 것을 막기 위해 퇴직 전 3년간 맡은 업무와 관련된 업체에는 2년 동안 취업할 수 없도록 하고 있다. 사전에 영향력을 행사해 자리를 만드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조치다.

하지만 실상은 다르다. 편법 '경력세탁'을 통해 자리를 만들어서 가고 있다. 금감원 임원들은 자신이 속한 은행 · 보험 · 증권 · 저축은행 등의 '권역'에서 나중에 감사 자리 등을 따내기 위해 미리 공을 들인다. 예컨대 증권 부문의 전문가라면 응당 증권 쪽 임원을 맡아야 하지만,실상은 보험 담당이나 은행 담당 등을 선호한다. 퇴임 후 자리 옮기기가 쉬워서다.

총무 담당,경영지원 · 기획 담당,소비자보호 담당,국제화 담당 등은 기피 대상이다. 어떤 권역에 가더라도 전부 조금씩 직무 관련성이 있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11 · 11 옵션쇼크'사건과 관련이 있는 업무를 담당한 것으로 알려진 모 금감원 국장이 이 사건을 일으킨 도이치증권의 변호를 맡은 모 로펌으로 옮기려다 반대여론에 밀려 실행하지 못했다. 그는 "문제의 옵션사태와 관련한 업무에 관여하지 않겠다"고 했지만 이 말을 믿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류시훈/이상은 기자 bad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