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터 슬라이드·골프·댄스 파티…나는 지금 바다 위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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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가포르~르당 섬 크루즈
'2박3일' 꿈같은 선상 낭만
카지노·공연·탁구 즐기고
섬에 내려선 스노클링도
조용히 밝아오는 아침 햇살에 눈을 뜬다. 창문을 열고 발코니로 나가본다. 탁 트인 바다 저 너머 수평선 위로 붉은 태양이 뜬다. 몸이 가볍게 흔들린다. 물살을 가르는 소리가 시원하다. 크루즈 여행의 낭만은 바로 아침에 있다. 연인이나 가족과 함께 넘실거리는 푸른 바다 위에서 맞이하는 아침은 이색적이고 상쾌한 경험이다.
크루즈 여행이라면 지중해나 극지방 순회 또는 세계일주를 떠올리기 십상이다. 죽기 전에 한 번은 경험해봐야 할 버킷 리스트에 올려만 놓고 평생 꿈을 이루지 못하는 이들도 많다. 싱가포르 크루즈 여행은 이 같은 현실과 타협해야 하는 여행 마니아들에게 훌륭한 대안이다. 2~3박짜리 짧은 일정으로 푸껫(태국) 페낭 · 말라카 · 르당 섬(말레이시아) 등 동남아 일대 유명 관광지를 둘러보고 올 수 있다. 특히 르당 섬은 국내에는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때 묻지 않은 자연을 간직하고 있어 최근 관광객들로부터 인기를 끌고 있다. 에메랄드빛 바다를 떠다니며 형형색색의 물고기와 산호초를 구경하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싱가포르에서 출발하는 이 크루즈선의 이름은 '슈퍼스타 버고(Virgo)'호다. 버고는 12궁도 중 하나로 처녀성을 뜻한다. 총 7만6800t 규모로 길이 268m,폭 32m인 대형 크루즈선이다. 객실 수는 935개,최대 수용 인원은 1870명에 달한다.
지난달 27일 오후 4시 싱가포르항에 정박한 버고호에 승선했다. 오전 9시 싱가포르항공 직항편으로 인천을 출발한 지 7시간 만이다. 관광객들의 면면은 다양하다. 싱가포르는 물론 인도 호주 일본 한국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필리핀 등 세계 각지에서 모여들었다. 이탈리아 등 멀리 유럽 쪽에서 온 관광객도 눈에 띄었다. 버고는 대형 크루즈선답게 다양한 유흥 시설을 갖추고 있다. 야외 수영장과 피트니스센터,도서관,공연장,면세점,미니 골프장,탁구장 등 웬만한 스포츠와 레저를 한자리에서 즐길 수 있다. 슬롯머신 등 카지노도 관광객들의 인기를 끈다. 세계 각국의 요리를 맛볼 수 있는 레스토랑은 9개나 있다. 그 중 3곳은 무료로 식사할 수 있는 식당이다.
버고호의 결제 시스템은 독특하다. 일단 승선(체크인)할 때 호텔처럼 객실 문을 열 수 있는 카드키가 주어진다. 이 카드키는 선실 내에서 신분증과 현금 및 신용카드 역할까지 한다. 처음엔 싱가포르달러로 100달러가 기본으로 들어 있으며 유료 레스토랑이나 카페,바 등에서 사용할 수 있다. 이용금액이 100달러를 초과할 경우에만 체크아웃할 때 정산하면 된다.
르당 섬을 돌아보는 코스는 2박으로 짜여져 있다. 수~금요일과 금~일요일 등 두 가지 일정이 가능하다. 오후 8시에 싱가포르항을 출발,다음날 오후1시께 르당섬 인근에 닻을 내렸다. 이동 속도는 최대 25노트(시속 46㎞)다. 날씨가 좋아 물결이 잔잔한 데다 배가 커서 흔들림도 심하지 않다. 가만히 있으면 미끄러져 가는 느낌도 든다. 르당에 도착해 소형 보트로 갈아타고 해변에 닿았다. 2시간 정도 머물면서 스노클링이나 해수욕 등을 즐긴다. 배 안에서 즐길거리도 적지 않다. 매일 밤 쇼 라운지에선 화려한 라스베이거스 스타일의 공연이 펼쳐지고 디스코 댄스 경연대회나 초콜릿 파티도 열린다. 파티를 진행하는 전문 엔터테이너가 관광객들의 흥을 한껏 돋운다. 국적이 다양한 만큼 즉석에서 국가 간 대결도 벌어졌다. 이날 대결에서는 열정적인 춤솜씨를 선보인 '미스 인도'가 우승을 차지했다. 날마다 신문처럼 발행되는 선내 소식지 '스타 내비게이터'를 통해 배 안에서 진행되는 각종 행사나 프로그램 등을 소상히 알 수 있다. 한국어판도 따로 준비돼 있다.
싱가포르에 돌아와 인근 센토사 섬에 있는 유니버설 스튜디오도 둘러볼 만하다. 7개의 테마존으로 이뤄져 있으며 세계에서 가장 긴 롤러코스터 등 24개의 놀이시설을 보유하고 있다.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이 특수 제작한 허리케인이 뉴욕 도심을 휩쓰는 모습은 정말 실감난다. 4D영화관에선 영화 슈렉에 나오는 동키(당나귀)가 재채기를 하자 관객들의 얼굴에 물이 튀었다.
■ 여행팁싱가포르항공은 인천에서 싱가포르까지 직항편을 하루 3회 이상 운항하고 있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도 인천~싱가포르 직항편이 있다. 비행시간은 약 6시간.하나투어 모두투어 한진관광 등은 항공요금이 포함된 2박3일 일정의 크루즈 여행상품을 판매 중이다. 1인당 149만원(2인1실 인사이드 객실 기준)부터.4~5월에도 30도가 넘을 만큼 덥기 때문에 가벼운 옷차림이 좋다. 크루즈선 안은 냉방이 잘돼 있어 긴팔 셔츠 두어 벌 정도는 따로 준비하는 게 좋다. 선내 일부 레스토랑은 깃이 없는 셔츠와 반바지 등을 허용하지 않기 때문에 유의해야 한다. 햇살이 강렬한 만큼 선글라스와 자외선 차단제는 필수다. 물놀이를 위한 각종 장비도 챙겨가면 유용하다.
싱가포르=이호기 기자 hg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