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품가격 폭락] "투기세력 이탈이 조정 촉발"…엇갈린 美 고용지표가 급등락 부채질

거래 증거금 인상에 銀 폭락…원유·금 투매 전염
美 4월 신규 일자리 급증에 빠르게 반등
국제 상품가격의 폭락은 투기세력 이탈에서 시작됐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은을 시작으로 당국이 거래 규제에 나서자 상품가격을 단기간에 빠르게 끌어올린 헤지펀드 등 투기세력이 앞다퉈 발을 뺀 게 가격 조정을 촉발했다는 것이다. 미 경기 둔화에 따른 상품 수요 감소 관측과 달러가치 급등이 여기에 기름을 얹었다. 그러나 미 4월 고용지표가 뚜렷이 개선된 것으로 나타나면서 상품가격은 다시 급등세로 돌아서는 등 롤러코스터 양상을 보이고 있다.

글로벌 유동성이 풍부한 상황에서 투기성 자금이 단기 수익을 좇아 움직이는 데다 미 경기지표가 엇갈린 신호를 보낼 만큼 글로벌 경제에 대한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상품시장 급등락 현상은 되풀이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전염 효과가 투매 초래2008년 말 금융위기와 함께 온 경기 후퇴로 폭락한 상품시장이 살아나기 시작한 것은 2009년 초부터다. 미국 유럽 등 주요국이 곤두박질치는 경기를 살리기 위해 시중에 유동성을 공급하자 뭉칫돈들이 상품시장으로 유입됐다. 2년여 동안 오름세를 보이던 국제 상품 시장에서 투매가 빚어진 것은 '전이 효과'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그동안 급등했던 은 시세가 선물환 거래 증거금의 잇단 인상으로 폭락하자 상당한 수익을 거둔 투자자들이 일시에 이익을 실현하기 위해 상품 매도에 나섰다. 5일(현지시간) 서부텍사스산(WTI) 원유 가격이 8.6% 하락하며 배럴당 100달러 밑으로 떨어진 것도 같은 맥락으로 해석할 수 있다. 미국 유가 선물가격은 4일 연속 하락하며 이번 주 들어서만 12.4% 급락했다. 2년여 만에 가장 가파른 유가 하락이다. 설탕 가격은 고점 대비 41% 급락했고 면화가격은 23% 떨어졌다.

선물 옵션 중계회사인 린드-왈독의 프랭크 콜리 선임 시장전략가는 월스트리트저널에 "일부 헤지펀드가 현금화에 나서자 겁에 질린 투자자들이 앞다퉈 상품 매도 주문을 내고 있다"고 말했다. 이 과정에서 시장 흐름을 반영한 컴퓨터 프로그램 매매가 투매를 더욱 촉발시키는 결과를 초래하기도 했다.

헤지펀드 등 일부 자산운용사들이 상품 자산 비중이 높아진 대차대조표에서 위험 요인을 줄이려는 노력도 상품 매도로 이어졌다. 투자자들이 위험 자산을 회피하면서 자연스럽게 안전자산 선호 현상이 빚어졌다. 이날 10년 만기 미 국채 금리는 0.06%포인트 하락하며 6일째 국채 가격이 올랐다. ◆엇갈린 미 경기지표에 상품가격 출렁

상품가격이 롤러코스터를 타는 것은 미국 경기지표 및 달러가치에 대한 분석 등이 엇갈리는 등 불확실성이 커진 데 따른 것이다.

상품가격 폭락을 부채질한 건 5일 미 노동부가 발표한 지난주 실업수당 청구 건수다. 47만4000건으로 4주 연속 40만건을 넘어 작년 8월 둘째주 이후 최대를 기록했다. 전날 민간 부문 고용증가세 둔화 소식에 이은 것으로 미 경기회복 둔화가 불거지며 수요 감소에 따른 상품가격 하락 우려를 이끌어냈다. 하지만 미 노동부가 6일 내놓은 지난달 고용지표는 개선된 것으로 나타나 상품시장 분위기를 바꿔놓았다. 4월 실업률이 지난해 11월 이후 처음으로 올라 9.0%를 기록했지만 신규 일자리 수는 24만4000개로 작년 5월 이후 가장 많은 것으로 나타난 것.정부 부문 고용이 줄었지만 민간 부문에서 일자리가 2006년 2월 이후 5년여 만에 가장 많이 늘어난 덕분이다. 이 소식이 전해지자 WTI 원유 가격은 전날 대비 1% 이상 반등세로 돌아섰다. 전날 상품가격 폭락에 급락했던 미 증시도 1% 이상 상승 출발했다. 그러나 패러시 우페타야 뱅크오브아메리카(BOA) 미국통화전략부문장은 "4월 고용지표를 보면 환호를 지르기도,경기가 둔화된다는 사인으로 해석하기도 어렵다"고 말했다. 상품가격 반등이 지속될지 방향을 점치기 어려울 만큼 미 경기지표가 엇갈린 신호를 보내고 있다는 설명이다.

달러가치의 움직임도 상품가격의 방향성을 가늠키 어렵게 만든다. 통상 달러가치와 상품가격은 반대로 움직인다. 미 통화당국의 6월 양적완화 종료 계획은 달러가치의 상승요인이지만 저금리 기조는 하향요인이다. 여기에 유럽중앙은행(ECB)의 금리 인상 시기와 중국 인도 필리핀 말레이시아 등 신흥국의 금리 인상 속도가 달러가치 변동에 영향을 주고 있다. 상품시장에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다.

뉴욕=이익원 특파원 ik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