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금감원] (4ㆍ끝) 전문가들 "중복검사 비용보다 감독권 독점 폐해가 더 크다"
입력
수정
감독권 독점 이대론 안된다예금보험공사(예보)는 금융감독원과 2006년 11회,2007년 12회에 걸쳐 저축은행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대출 문제를 조사했다. PF 대출이 과열됐다는 판단에 따라 이뤄진 공동검사였다. 하지만 저축은행발 PF 대출 부실 사태를 막는 데 실패했다.
허울 좋은 공동검사
韓銀, 농협 전산망 마비때 일주일 지나서야 조사 착수
금융 선진국 감독권 분산
獨, 중앙銀·금융감독청 이원화
美, FRB·예보 등이 나눠 맡아
한 시중은행 부행장은 "금감원과 한국은행 · 예보가 공동검사를 하는 일이 종종 있지만 한은 · 예보가 요구하는 자료는 대부분 금융회사의 '핵심'과 관련 없는 지엽적인 것들"이라며 "그것만 가지고는 실상을 제대로 파악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수박 겉핥기 공동검사 제도
한국은행이나 예보와 달리 금감원은 금융회사에 대한 단독검사권과 제재권을 갖고 있다. 금감원이 무소불위의 권한을 휘두를 수 있었던 배경에는 3366개 금융회사에 대한 감독권한 독점이 자리잡고 있다. 그러나 저축은행 부실 감독 문제가 불거지면서 금감원의 감독권한을 한은 · 예보 등에 분산시켜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금감원의 감독권을 분산시키려는 시도는 예전에도 있었다. 대표적인 사례가 한은 · 예보의 '공동검사권'이다. 금감원과 함께 금융회사를 공동검사할 수 있는 권한이다. 문제는 이 제도가 제 역할을 못한다는 것이다. 예보와 금감원이 저축은행 PF 대출을 함께 조사하고도 별다른 행동을 취하지 못한 게 대표적 사례다. 이유는 간단하다. 금감원은 해당 금융회사를 전담하는 검사역(RM)들을 통해 개별 금융회사의 경영 관련 자료를 수시로 받아본다. 저축은행처럼 수가 많은 경우를 제외하면 대부분 '실시간 현미경'이 작동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반면 한은 · 예보는 금융회사의 건전성에 관한 자료들만 받는다. 대부분은 언론을 통해 공개됐거나,공개될 수 있는 수준의 자료들이다. '수박 겉핥기 공동검사'가 될 수밖에 없는 셈이다.
금감원과 한은의 공동검사 실적은 줄어드는 추세였다. 2006년 양 기관은 14번 공동검사를 나갔지만 2007년엔 8번,2008년 5번,2009년 7번,2010년(10월 말까지)엔 5번에 불과했다. 공동검사 제도만으로는 적시에 대응하기가 어렵다. 지난달 12일 농협 전산망 마비 사고가 일어났을 때 금감원은 바로 다음날 검사역과 정보기술(IT) 담당자들을 보내 사고 원인을 조사하도록 했지만 한은과의 공동검사는 18일에나 이뤄졌다. 한은이 금감원에 공동검사를 요청하기 위해서는 금융통화위원회를 여는 등 절차가 복잡했던 탓이다. ◆"감독권 분산은 세계적 추세"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이제부터라도 금감원의 감독권을 여러 곳에 분산시켜야 한다고 주장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금감원 설립의 모델이 됐던 영국 금융감독청(FSA)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중앙은행에 흡수됐다. 독일 역시 감독기능을 중앙은행(검사 및 자료요청권)과 금융감독청(인허가 및 소비자보호)으로 이원화했다. 미국은 예전부터 중앙은행과 예금보험기구,주정부 등으로 감독권을 분산해 놓고 있다. 김중수 한은 총재는 지난달 "중앙은행이 검사권을 갖지 못한 나라는 한국을 포함해 전 세계 세 나라뿐"이라며 이 같은 흐름이 세계적 추세임을 강조했다.
민경국 강원대 교수는 "과거에는 금융회사들이 여러 곳에서 중복으로 검사를 받을 경우 시간 · 인력 낭비 등 폐해가 크다는 주장이 많았지만 이번 저축은행 사태를 계기로 '아무리 폐해가 있어도 부실이 커지는 것보다 낫다'는 인식이 힘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부실이 심각한 저축은행업권의 경우 금감원과 예보가 중복으로 검사권을 갖고 감독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감독권 분산해야 '전관예우'도 사라져금감원 출신이 감사로 자리를 옮기는 게 문제가 되는 것이 '규제 독점' 때문이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금융감독을 맡는 기관들이 분산돼 견제해야 전관예우 문제도 발생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종욱 서울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여러 기관이 감독권을 공동 행사할 경우 각 기관 출신자들이 감사로 가더라도 서로 견제하는 효과가 자연스럽게 생긴다"며 "일률적으로 감사 취업을 금지하는 것보다는 건전한 경쟁을 유도하는 것이 맞다"고 말했다.
안대규 기자 powerzani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