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드 스토리] 금감원 출신 감사들 '가시방석'

신한銀 이어 메리츠·대신증권 '줄사퇴'

임기 2년 남기고 퇴출…내정 취소도 잇따라
"마녀사냥" 불만…"일단 버텨보자" 배짱族도
금융감독원 출신의 증권사 A감사는 요즘 고민이 많다. 임기가 끝나서가 아니다. 임기는 아직 1년 남아 있다. 하지만 최근 돌아가는 상황을 보면 마음이 편치 못하다. 금감원 출신이라는 이유로 사내외에서 받는 시선이 싸늘하기만 하다. 신뢰를 듬뿍 보냈던 최고경영자(CEO)마저 요즘 대하는 태도가 냉랭해졌다.

A감사의 마음을 더 불안하게 하는 건 다른 증권사의 '행동' 때문이다. 한 증권사는 이달 말 주주총회에서 선임할 감사를 내정했다가 "금감원 출신의 내정자가 사의를 표명했다"는 말로 없던 일로 해 버렸다. 또 다른 증권사는 감사 임기가 남아 있는데도 후임 감사를 새로 선임키로 하고 공모를 실시했다. 이런 식이라면 금감원 출신인 자신도 자리를 유지할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A감사가 지적한 증권사는 대신증권과 메리츠종금증권이다. 대신증권은 윤석남 전 금감원 회계서비스국장을 오는 27일 주총에서 감사로 선임키로 하고 공시까지 했다. 하지만 8일엔 "윤 전 국장이 사의를 표명했다"며 "새로운 감사 후보를 찾고 있다"고 밝혔다. 대신증권 관계자는 "금감원 출신을 금융회사 감사로 보내지 않겠다는 정부 방침에 감사내정자가 부담을 느낀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증권업계에서는 이 같은 상황을 의식해 내정자와 회사가 없던 일로 하자는 데 이심전심으로 합의했을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메리츠종금증권은 한발 더 나아갔다. 이 회사의 백수현 감사는 금감원 증권검사1국장을 지냈다. 2008년 5월 감사에 선임됐다. 작년 증권사와 종금이 통합하는 과정에서 재선임됐다. 임기는 2013년으로 아직 2년 남아 있다. 그런데도 메리츠증권은 후임감사 공모절차를 진행하고 있다. 이미 지난 3일부터 6일까지 신청자 접수를 받았다. 회사 관계자는 "백 감사가 이미 3년 동안 재직한 만큼 자진사퇴 형식으로 물러나기로 했다"고 말했다.

보험사들도 금감원 출신 감사의 신규 선임이나 연임을 배제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국내 보험사 가운데 올해 감사 임기가 만료되는 곳은 신한 · 알리안츠 · 흥국 · 녹십자 · 우리아비바 · PCA생명과 서울보증보험 그린손해보험 현대하이카다이렉트 등 9곳이다. 다음달 임기가 끝나는 금감원 출신 보험사 감사는 "지금 상황에서 연임을 생각이나 할 수 있겠느냐"며 "가능성도 없겠지만 회사 측에서 설사 연임을 요청하더라도 거절할 것"이라고 말했다. 내년에 임기가 만료되는 또 다른 회사의 감사는 "아직 임기가 남아 있기 때문에 자진해서 물러날 생각은 없다"면서도 "다음달 주주총회에서 이런저런 얘기가 나올 것 같아 가시방석에 앉아 있는 것 같다"고 토로했다.

시중은행 감사들도 여론의 따가운 눈총에 전전긍긍하고 있다. 이석근 신한은행 감사 내정자(전 금감원 부원장보)는 이 같은 부담을 견디지 못하고 결국 사퇴했다. 올해 선임된 한 금감원 출신 시중은행 감사는 "앞으로 금감원 후배들을 만나기가 더 어려워졌다"고 말했다.

SC제일은행은 이달 임기가 만료되는 고영준 감사(전 금감원 조사2국장)에 대해 조만간 이사회를 열고 비금감원 출신 인사로 교체할 것으로 알려졌다.

손성태/이호기/강동균 기자 mrhan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