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한식의 세계화

지난해 미국 로스앤젤레스(LA)에 출장을 갔다. '2010 LA와인&푸드 페스티벌'에 초청받아 우리 전통주를 소개하기 위해서였다. 태평양을 건너 미국으로 가는 동안 10여년 전 LA에서 진행했던 막걸리 시음회가 기억났다. 당시 막걸리를 시음한 후 그들의 반응은 싸늘했었다. 막걸리를 주면 웃으면서 한 모금 입에 대긴 했지만 뒤돌아서 뱉는 경우도 있었다. 쌀로 만든 술이라고 설명했을 때 어떤 사람은 손사래를 치며 거들떠 보지도 않고 무관심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미국의 유명 와이너리에서 생산된 와인과 프리미엄 맥주들이 즐비한 이번 행사에서 막걸리 시음회를 한다고 해 걱정이 앞섰다. 그래서 함께 행사를 준비한 직원들에게도 이번 행사에서는 무조건 맛을 우선적으로 하는 시음보다 유산균과 효모 등이 풍부하고 낮은 도수의 부드러운 웰빙술이라는 점을 알리는 데 초점을 맞추라고 했다. 그런데 막상 막걸리 시음회를 시작해 보니 나의 생각은 기우였다. 막걸리를 맛보기 위해 미국 현지인들이 길게 줄을 서서 대기하는 장관이 연출되는 것은 물론이고 한 번 맛을 본 사람들이 두 번 세 번씩 시음하기 위해 다시 시음 부스를 찾는 경우도 많았다. 하도 신기해 몇몇 사람에게 막걸리 맛을 물어보니 어떤 사람은 '쌀의 향이 무척 매력적'이라고 말하고,'맥주처럼 시원하고 밀키한(부드러운) 느낌이 좋다'고 한 이도 있다. 또 어떤 사람은 말없이 엄지 손가락을 치켜세웠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 우리나라도 와인이나 사케를 비롯한 많은 외국 술을 경험했듯이 우리 전통주들도 지속적인 해외시장 공략과 국제 주류 콘테스트에서 입상하며 쌀과 누룩으로 만든 술이 많이 알려졌고,일본의 스시와 태국 음식 같은 아시안 푸드의 유행으로 주식인 쌀 특유의 맛과 향에 대한 경험과 익숙함이 긍정적인 영향을 미쳐 막걸리 맛에도 친근감을 준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의 놀라움을 준 것은 한식당의 비약적인 발전이었다. 몇 년 전만 하더라도 한식을 먹기 위해선 한인타운에 가야 했다. 그러나 이제는 뉴욕의 주요 거리에서,상하이의 중심가 등 세계 어디에서든 쉽게 한식당을 찾을 수 있다. 게다가 과거에는 코리아 타운에 있는 한식당은 우리 교민이 손님의 전부였지만 이번에 가보니 뉴욕의 번화가에 위치한 한식당에서 식사하는 손님의 절반 이상이 미국 현지인이라는 점에 놀랍기만 했다. 일식도 세계화에 50년이 걸렸다. 한식 세계화는 이제 첫걸음을 시작했다. 조금 늦더라도,조금 힘들더라도 한식이 세계화하기 위해 현재 가장 필요한 것은 한식을 팔고 알릴 수 있는 인프라 즉,한식당이라는 콘텐츠와 네트워크를 제대로 구축하는 것이 최우선 과제다. 한식당은 한국의 음식만을 파는 곳이 아니다. 우리의 식문화를 즐기는 자리여야 한다. 음식은 그에 걸맞은 술과 함께 즐길 때 완성되는 것이다. 세계인들이 우리술과 음식으로 우리의 식문화를 즐기는 것이 또 하나의 한류가 되길 기원해 본다.

배중호 < 국순당 사장 jungho@ksdb.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