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 Biz School] 위기 때마다 파격…베를린필, 공연 실황 세계 첫 인터넷 중계

Best Practice - 베를린필의 '사업 DNA'
세계 최초 교향곡 녹음…클래식 음악 상업화 개척
'고리타분' 깨고 디지털로 23만원 고액 불구 회원 급증

최근 세계 정상급 오케스트라인 베를린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다른 오케스트라의 연주를 무료 '미끼 상품'으로 만들어 고객 늘리기에 나섰다. 오는 15일까지 베를린필의 온라인 공연실황 사이트 '베를린필하모닉 디지털 콘서트홀(www.digitalconcerthall.com)'에서 네덜란드 로열콘체르트허바우 오케스트라 연주를 무료로 온라인 회원들에게 제공하고 나선 것이다. 마리스 얀손스가 지휘하는 이 오케스트라는 최근 베를린필하모니(베를린필 정기 공연장)에서 공연했다.

연간 150유로(23만원)의 고액회원들을 중심으로 운영하는 세계 최고 오케스트라가 온라인 고객을 확대하기 위해 '끼워팔기'와 '덤 판매'도 마다하지 않게 된 것이다. ◆'예술만을 위한 예술은 없다'

베를린필하모닉 오케스트라는 자타가 공인하는 클래식 음악계 최고 명성을 지닌 관현악단이다. 빈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함께 클래식 음악의 양대 산맥으로 꼽히며 고전음악 연주를 주도해 왔다.

베를린필과 다른 오케스트라의 차이는 고전음악이라는 예술을 하나의 사업으로 바꾸는 비즈니스 능력에서도 찾을 수 있다. 베를린필은 '사업 DNA'가 체화돼 있다는 평을 듣는다. 최초의 전업 지휘자 아르투르 니키시가 상임지휘자를 맡고 있던 1891년 세계 최초로 베토벤 교향곡을 녹음했다. 당시로서는 파격이었다. 194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빌헬름 푸르트벵글러와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의 지휘봉 아래 고전음악 음반화 사업을 주도했다. 클래식 음악을 상업화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특히 지휘자로서의 탁월한 재능과 사업 능력을 겸비한 카라얀이 상임 지휘자로 있던 시절에는 1000여종의 음반을 전 세계에 1억2000만장이나 판매하기도 했다. 하지만 정보기술(IT)의 발달 등으로 음악환경이 급격히 변화하자 기존 오케스트라의 사업구조로는 수익을 내기 어려워졌다. 오케스트라의 주 수입원이던 공연수익과 음반 판매가 온라인 음원시장이 활성화되면서 크게 위축됐기 때문이다. 정부 후원도 줄었고,기업과 개인의 후원도 감소했다. 과거 클래식 공연티켓을 대량 매입해줬던 기업과 거부들은 프로축구 경기장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그 결과 110년 역사를 자랑하던 미국 5대 오케스트라 중 하나인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가 지난달 파산보호를 신청했다.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의 2009년 수입은 2940만달러로 전년(5310만달러)보다 2370만달러 감소했다.

◆디지털로 새로운 고객 창출

음악산업을 둘러싼 환경이 급속히 악화되면서 베를린필도 변화를 모색하기 시작했다. 베를린필은 도이체방크의 재정 지원을 받는 베를린필하모니재단 소속이어서 다른 관현악단에 비해 상대적으로 재정압박이 적었다. 하지만 생존을 위해선 변화가 불가피하다고 판단했다. 베를린필 변화의 키워드는 '디지털'이었다. 보수적이고 고리타분하다는 클래식 음악에 대한 편견을 깨고 온라인 공연 중계 같은 디지털 기술을 적극 도입했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최신 디지털 기술을 빠르게 흡수한 베를린필이 클래식 음악 산업의 미래를 보여주는 시금석이 되고 있다"고 평가했다.

베를린필은 2008년 인터넷을 통해 오케스트라 공연 실황을 중계하는 시스템을 세계 최초로 도입했다. '디지털 콘서트 홀'이라는 이름의 이 서비스는 연간 150유로(23만원)를 내면 32회에 이르는 베를린필 정기 공연과 2008년 이후 축적된 각종 연주 데이터베이스(DB)를 즐길 수 있도록 했다. 상임지휘자인 사이먼 래틀이 지휘하는 정상급 연주를 안방에서 고화질(HD) 화면으로 즐길 수 있게 한 것이다. 서비스 도입 2년 만에 적지 않은 가입비에도 불구하고 유료 가입자가 5000명을 넘어섰다.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에 음악을 감상할 수 있고,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는다는 장점이 비유럽 지역 음악 애호가들을 끌어모으고 있는 것이다. 국내에서 베를린필 내한공연을 보려면 40만~50만원을 줘야 한다. 베를린필은 수요가 많은 일본을 겨냥,디지털 콘서트 홀 초기화면을 일본어로도 살펴볼 수 있도록 했다.

베를린필 관계자는 "30년 전만 해도 1년에 20~25장의 앨범을 냈지만 요즘은 한 해에 많아야 다섯 장을 내기도 힘든 상황에서 새 수익원을 모색한 결과"라고 설명했다. 베를린필은 연간 40회의 해외 공연을 비롯해 130회 정도 연주를 한다. 이를 더 많은 사람들이 관람할 수 있도록 디지털 기술을 활용했다는 것이다.

◆3D · 소셜네트워크와 클래식의 결합

베를린필은 마케팅에서도 IT 분야 신기술을 적극 활용한다. '가만히 앉아 있어도' 전 세계에서 청중이 몰리는 베를린필이지만 미래 고객인 젊은층 공략을 위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적극 활용하고 있다. 베를린필의 페이스북 페이지엔 친구가 16만여명 등록돼 있다. 트위터 팔로어도 1만여명에 이르고 유튜브엔 주요 연주 동영상과 과거 명지휘자와 협연자들의 인터뷰 장면이 200여개나 올려져 있다.

3D 기술을 클래식 음악에 접목하는 데도 적극적이다.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는 "소파 위에서 연주를 감상할 때마다 돈을 지급하는 시스템을 갖춘 베를린필이 이제 전 세계를 상대로 3D 영화처럼 만들어진 오페라 공연을 준비 중"이라고 보도했다.

베를린필의 정보화는 최근 일본 도호쿠 대지진 때 빛을 발했다. 베를린필은 지진 발생 1주일 뒤 위문 공연을 전 세계에 온라인으로 중계하면서 마케팅 효과를 톡톡히 봤다. 폴란드 작곡가 비톨트 루토스와브스키의 '현을 위한 장송곡'은 CNN과 NHK 등에도 소개되며 세계적인 주목을 모았다. 곧이어 베를린필은 베를린 슈타츠카펠레와 공동으로 대지진 희생자를 돕기 위한 합동 자선 연주회도 가졌다. 당시 공연 수익금은 모두 유니세프를 통해 일본에 전달됐고,연주회는 역시 인터넷 방송을 통해 전 세계로 생중계됐다. 베를린필의 IT 접목은 다른 오케스트라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런던필하모닉 등 유럽 오케스트라들과 보스턴심포니,샌프란시스코필하모닉 같은 미국 관현악단들도 온라인 서비스를 준비 중이거나 검토하고 있다.

김동욱 기자 kimd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