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파국 직면한 일본의 국민연금, 남의 일이 아니다

청년층 납부 거부 확산…日 베낀 한국 연금도 불안
일본의 국민연금 제도가 무너지고 있다. 젊은이들이 연금 납부를 사실상 거부하고 있다. 자신이 내는 돈이 지금의 노인층을 먹여살릴 뿐 나중에는 낸 만큼도 되돌려받지 못한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일본경제신문 보도에 따르면 일본의 국민연금 납부율은 2010년 2월 말 58.2%로 전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1년 만에 2%포인트가 또 낮아졌다. 이런 추세는 매년 지속되고 있다. 20대 납부율은 30%에도 미치지 못한다. 젊은이 4명 중 1명만 연금을 납부하고 있다. 사실상 연금제도의 붕괴다.

회사원들이 가입하는 후생연금도 실질 납부율은 40%에 그친다. 물론 사상 최저치다. 미납액만도 5442억엔이다. 2008년 세계금융위기 때보다 악화됐다. 소득비례 연금인 후생연금은 본인과 사업주가 공동부담하지만 역시 체납이 많다. 일본 정부는 체납 기업을 공개하고 재산을 차압하는 등 강수를 두고 있다. 그러나 사정은 개선되지 않고 있다. 금융피라미드 비슷한 현행 연금 구조를 개혁해야 한다는 목소리만 높아간다. 연금에 대한 불안과 공포는 일본 사회의 저출산 고령화가 급진전되면서 나타난 것이다. 일본 인구는 지금 본격적인 감소세다. 지난해 3월 말 기준으로 1억2705만명이다. 1년 새 1만8300여명이 줄었다. 65세 이상 고령인구는 23%를 넘는다. 문제는 저출산 고령화를 견딜 수 없도록 설계된 연금 구조다. 60대 이상 세대는 1억4700만엔의 연금을 내고 1억8700만엔을 연금으로 받는다. 4000만엔의 흑자다. 지금 20대 미만인 젊은이들은 2억100만엔을 내고 1억1800만엔을 돌려받는다. 부담은 늘어나고 돌려받는 돈은 줄어든다. 나중에 가입한 사람의 돈으로 앞선 가입자에게 많이 지급하는 일종의 금융피라미드와 비슷하다. 나중에는 세금으로 연금을 줘야 하지만 재정적자가 이를 가로막고 있다. 연금 불신이 일본 사회를 갉아먹고 있다.

한국의 국민연금은 일본을 베꼈지만 그 구조는 더 나쁘다. 아직 국내에선 일본처럼 젊은층의 반란은 일어나지 않고 있다. 오히려 나이를 먹은 중장년 계층은 국민연금을 서로 더 내기위해 아우성이다. 국민연금 미납률이 50대는 5.4%에 불과하다. 임의가입자는 2009년 말까지 3만6000명에 불과했지만 2010년 들어 불과 1년 만에 10만명을 돌파했다. 올 들어서도 3월까지 이미 3만3000명을 넘었다. 연금을 중단했던 사람들도 이를 회복시키느라 분주하다. 모두 은퇴를 앞둔 장년 세대다. 이들은 지금 내는 돈보다 훤씬 더 많이 받는다는 것을 잘 안다. 결국 노인들이 청년들의 밥그릇을 빼앗는 구조 속에서 연금 가입 열풍이 불고 있는 것이다. 미래세대의 부를 지금의 세대가 갉아먹는 것과 같다. 부도덕한 일이지만 정부는 정보공개도 않고 고칠 생각도 없다.

우리나라 30대의 연금 미납률은 20% 내외다. 이 비율은 급격하게 높아질 수 있다. 장년층에서 연금 가입을 서두르고 있는 진짜 이유를 알게 되면 한국의 젊은이들도 점차 연금 내기를 거부할 수 있다. 일본의 파국적 상황은 한국의 국민연금 개혁도 화급한 과제라는 점을 일깨워준다. 청와대는 금융 피라미드식으로 모은 연금으로 기업 경영에 개입할 생각만 하고 있다. 딱한 일이다. 발밑이 무너지는 줄도 모르고 엉뚱한 일에 매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