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문학지 종잣돈 20억 출연…최고 문예지 만들 것"

● '시인수첩' 창간한 김종철 대표
"열정으로 문학잡지를 만들 순 있지만 경제적인 뒷받침이 없으면 10년,20년을 끌고 갈 수 없어요. 그래서 사재 20억원을 출연해 유명 투자자문사에 맡기고 여기서 나오는 수익금으로 문학지를 만들기로 했죠."

새로운 시(詩) 전문지 '시인수첩'을 창간한 출판사 문학수첩의 김종철 대표(64 · 사진).시인이기도 한 그는 20년간 출판사를 운영하면서 많은 시 문예지들의 부침을 지켜봤다. 돈도 안 되는 문예지를 위해 20억원을 선뜻 내놓은 이유는 무엇일까. 일각에서는 그가 1999년 이후 총 7편의 '해리포터' 시리즈 번역 출간으로 번 돈을 한국 시문학 발전을 위해 내놓았다고 해석한다. "늘 꿈꿨던 일이라 가족들과 상의하면서 용기를 냈죠.문예지는 내면 낼수록 적자예요. 다들 공짜로 보내주기만 바라죠.그래도 우리 시의 100년 앞을 내다보고 시작한 겁니다. "

그는 시인과 비평가들만이 아닌 일반인들에게 다가가는 잡지,외부 기관의 도움이나 광고 없이 자율성을 지켜나가는 문예지를 꿈꾼다. 또 시인들에게 정당한 원고료를 지급하고 싶다고 말한다. 당연히 경제적 자립도가 잡지 창간의 핵심 요소다. 그가 문학과는 다소 거리감이 있어 보이는 투자자문사의 문을 두드린 이유도 여기에 있다.

"B,R,H,K 같은 유명 투자자문사 아시죠? 그 중 한 곳에 작년 9월 돈을 맡겼어요. 자문사 대표가 '몇%까지 깨질 각오가 돼 있냐'고 묻기에 '50%'라고 했죠.그런데 최근에 보니까 40~50% 수익이 났더군요. 적어도 몇 년간 잡지 발행은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습니다. "그는 올해 안에 자본금을 관리할 집단 시스템을 구축하겠다고 했다. 믿을 만한 3~5명의 관리위원을 선정할 예정이다. 그의 철학은 단순하다. 아무리 뛰어난 편집인과 시인들이 모여 좋은 콘텐츠로 잡지를 만들어도 세상이 알아줄 때까지는 시간이 많이 걸리기 때문에 그 사이 말라 비틀어지기 십상이란 것이다.

그는 "종이값 인쇄비 원고료 인건비 등을 포함해 300~400쪽짜리 계간 문예지를 발행하는데 연간 1억원 가까이 든다"며 "관련된 문학상까지 제정하면 1억2000만원이 넘는다"고 얘기했다. 시인들의 원고료도 제대로 지급할 생각이다.

"시인들은 자존심 때문에 원고료를 받지 않았다는 말도 안 해요. 시 한편을 잡지에 기고하고 적게는 2만~3만원,많으면 5만~7만원 받는 게 현실입니다. 시인의 연차와 경력 등을 고려해 좀 더 현실적인 대우를 해주고 싶어요. 시의 수준도 분명 높아질 겁니다. "그는 올 가을쯤 시 작품상을 제정할 계획이다. 또 좋은 작품을 충분히 확보하기 위해 계간지로 출발한 '시인수첩'을 월간지로 전환할 예정이다. 2009년 겨울호(통권 28호)를 끝으로 무기한 휴간에 들어간 종합 문학 계간지 '문학수첩'에 대해서는 "시 소설 평론 아동문학 등을 다 아우르는 종합 문예지는 1960년대 잡지의 관행으로,이제는 별 의미가 없다"며 "소설 전문지 '작가수첩'도 만들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시인수첩' 창간호에는 시 이외에도 회화와 만화,사진이 담겼다. 그는 "그동안 시인들 스스로 시를 외면하게 만든 측면도 있습니다. 그래서 시만 덜렁 내는 것이 아니라 우리 문화 전반에 녹아있는 시혼(詩魂)을 함께 일깨우면서 독자들에게 가까이 다가가려고 하지요. "

문혜정 기자 selenm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