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인터뷰] 윤석민 서울대 교수 "남의 말에 귀닫는 세태…'不通사회' 만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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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회 소통…' 펴낸 윤석민 서울대 교수가히 '소통의 위기'라고 할 만하다. 말들은 많은데 합리적 토론은 없다. 편을 갈라 물러서지 않고 싸우는 양극화의 갈등만 폭발할 뿐이다. 날선 이념 및 세력대결 양상으로 치닫기 일쑤다. 소통부재에서 비롯된 갈등의 해소는 늘 기대난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방송 사태,황우석 사태,광우병 촛불시위에 나라가 휘청거렸다. 천안함 사태,타블로 학력위조 논란에,최근의 카이스트 사태도 마찬가지다. 2000년대 들어 불거진 사회적 논란들이 다 그랬다.
합리적 토론 없이 날선 비판만
방송미디어 '과잉 개인화' 증폭
우리 사회가 이런 소통의 위기에 만성적으로 시달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정권의 폐쇄적인 권력운용 방식과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는 리더십 스타일에서 야기된 문제일까. 사분오열된 미디어가 파당화된 메시지로 부추긴 탓은 아닐까. 윤석민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49)는 《한국사회 소통의 위기와 미디어》(나남,656쪽,3만2000원)에서 우리 사회 소통의 위기를 구조적인 문제라고 진단한다. 그는 한국사회 구성원들에게서 1차적 원인을 찾아야 한다고 말한다. "국민들이 충분히 대화할 수 있는 능력이 부족하다"는 게 그의 판단이다.
"지난 100여 년간 한국사회 구성원의 특성 변화를 짚어보죠.19세기 말까지는 공동체의 구성원이었던 것 같습니다. 20세기 초반엔 식민체제이기는 했지만 개인화 특성이 강하게 드러납니다. 남들이 하는 대로 하던 여성들의 머리모양새가 달라지고,패션도 개인화됐죠.각자 주의주장을 따라가는 성향이 짙어진 겁니다. "
1960~1970년대는 국가주의 이념이 강화됐다. '나는 대한민국 국민이다'는 국가 구성원으로서의 정체성이 다져졌다는 설명이다. 이 과정에서 개인이 다른 개인과 만나는 시민적 삶의 영역이 과도하게 위축돼 개개인의 교류능력이 약화됐다는 것이다. "근대화의 조류 속에서 개인성이 강화되고,또 다른 개성을 지닌 타인과의 교류능력이 커지면서 국민으로서의 정체성도 강화되는 게 정상적인 발전과정입니다. 우리는 그렇지 못했어요. 함께 나누며 공동의 이익을 추구하는 시민사회 영역이 상실된 가운데 개인이 사회정치 영역이나 국가와 곧바로 연결된 거죠."
그는 이를 "물질적 성장 중심의 '압축근대화'에 따른 현상"이라고 말한다. 거기서 비롯된 행동양태들을 우리 사회 곳곳에서 볼 수 있다. 국가대항 축구경기장에서의 응원열기가 아파트단지 안에서 이루어지는 활동에는 이어지지 않는다. 휴대전화 등 개인미디어는 빨리 받아들이지만 지역커뮤니티 활동에는 무관심한 세태도 그렇다.
"이기심에 치우친 사적 주체로서의 소통은 폭발적입니다. 국가성원으로서의 정치영역 소통도 활발합니다. 그러나 개인의 거칠고 사사로운 생각이 곧바로 사회에 투사되는 게 문제죠.타인의 의견과 섞여 수정되며 공론으로 수렴되고 있지 않습니다. 시민사회 영역에서 걸러내지 못해 '과잉 개인화'와 '과잉 정치화'로 이어지는 겁니다. "윤 교수는 이같은 현상을 방송미디어가 증폭시키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한다. 예능프로그램은 공적 부분을 배제한 채 프라이버시 까발리기로 시청률을 올리고,다른 한편에서는 이념과 정치 영역 프로그램을 쏟아내고 있다는 것이다. 프로그램의 개인화,즉 방송 노조관점에서 또는 작가의 사적 시각에서 프로그램이 만들어지는 것도 문제점으로 지적한다.
그는 국가권력도 소통의 위기를 초래한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고 말한다. 노무현 정부나 이명박 정부나 개인성과 이념성이라는 사회성원의 복합적 상태를 충분히 고려하지 않고,각 정권의 이념적 강조점에 따라 한 측면으로만 접근,'정권의 실패'를 초래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윤 교수는 지금의 소통의 위기에 대해 긍정적인 생각을 갖고 있다. 소통의 위기는 선진 사회의 문턱을 넘는 마지막 단계의 위기란 판단에서다. "국민소득 4만달러의 고도화된 시민사회로 진입하기 위한 진통이라고 생각합니다. 주체적 개인과 국가 성원으로서의 국민은 이미 형성돼 있습니다. 그 중간의 시민사회 영역이 성숙되기를 기다리면 되지요. 긴 고민이 필요하긴 합니다. 미디어 등 사회 각 부분별로 지원하고 규제도 해야죠.영합하려 들지 말고 때로는 맞서는 것도 필요하고요. "
김재일 기자 kji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