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류강국을 향해…한국판 DHL 키우자] (5ㆍ끝) "물류전담 정부기구 설립 시급…저금리 정책자금 지원도 절실"
입력
수정
● (5ㆍ끝) 좌담회
< 참석자 >
김학소 한국해양수산개발원장
여성구 범한판토스 사장
이원우 한진해운 부사장
김영무 한국선주협회 전무
사회=김동민 한국경제신문 차장
국내 물류기업 16만개 중 1인 1트럭 기업만 15만개
정부차원 종합지원 없으면 글로벌 기업 육성 불가능
日, 중앙銀서 '0% 금리' 지원…싱가포르, 테마섹 통해 투자
한국은 아직도 담보 요구…손실 땐 세금 유예만이라도…물류-제조업 어엿한 파트너…'종속산업'이란 인식 바꿔야
제조업은 전기료 깎아주는데 물류기업엔 전혀 혜택 없어
"글로벌 물류 전문기업을 육성해 물류강국으로 거듭나기 위해선 국내 물류기업의 해외 진출을 지원하는 글로벌 물류전담기구를 설립해야 합니다. " "물류비용을 줄일 생각만 하지 말고 물류산업에서 부가가치를 창출하겠다는 정책의 인식 전환이 필요합니다. "
한국경제신문이 최근 한국해양수산개발원(KMI)과 함께 '물류강국을 향해…한국판 DHL을 키우자'를 주제로 연 좌담회에서 참석자들은 이렇게 입을 모았다. 이번 좌담회에는 김학소 KMI 원장과 여성구 범한판토스 사장,이원우 한진해운 부사장,김영무 한국선주협회 전무가 참석해 국내 물류산업 육성방안을 논의했다. 사회는 김동민 한국경제신문 차장이 맡았다. ▼사회=세계 경제에서 물류의 중요성이 갈수록 커지고 있습니다.
▼김학소 KMI 원장=글로벌 물류시장이 연 평균 8% 이상 성장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세계 물류시장은 3조7000억달러 규모였는데 우리나라 국내총생산(GDP)의 3배가 넘습니다. 2020년에 가면 8조2000억달러가 될 것으로 전망됩니다. 세계 1위 물류기업인 독일 DP DHL의 연간 매출은 371억달러입니다. 첨단 정보기술(IT) 기업인 삼성전자와 별 차이가 없어요. 돈을 갈퀴로 긁는 것이죠.
▼이원우 한진해운 부사장=물류산업의 부가가치가 굉장히 높습니다. 제조업에 비해 원가가 많이 들어가지 않거든요. 삼성전자 영업이익률이 15% 내외인데 독일 쉥커나 DP DHL 같은 물류기업은 30% 수준입니다. ▼사회=한국의 물류산업 현황은 어떻습니까.
▼김 원장=한국을 오가는 물동량이 세계 전체 물동량의 9% 수준입니다. 그런데 세계 물류시장에서 국내 기업들의 점유율은 2% 선에 불과합니다. 물동량을 기준으로 해도 물류시장에서 1600억달러를 더 벌어야 하는데 그렇게 못하고 있습니다. 물류시장 성장에 따라 2020년에 한국의 점유율을 10% 점유로 끌어올려 8200억달러를 번다면 '1인당 국민소득 4만달러'는 그리 어렵지 않을 겁니다.
▼김영무 한국선주협회 전무=국내에 16만개의 물류기업이 있는데,이 가운데 '1인 1트럭' 기업이 15만개입니다. 나머지도 대부분 소규모이고요. ▼사회=한국의 물류산업을 키우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여성구 범한판토스 사장=DP DHL과 맞짱 뜰 수 있는 기업이 나와야 합니다. 한국이 세계 9대 무역국인데,물류에서는 내세울 만한 기업이 없습니다. 정부가 대상기업을 정해 육성해야죠.
▼이 부사장=DP DHL의 주인이 독일 우체국인 도이치포스트(DP)인데,정부가 이곳을 민영화하면서 전략적으로 지원했습니다. 민영화에 앞서 우편가격을 두 배로 인상시켜 자본금을 확 늘려줬습니다. 덕분에 도이치포스트는 강력한 공기업이 돼서 당시 미국의 DHL과 폴란드 철도청까지 인수했습니다. 쉥커의 주인도 독일의 코레일 격인 도이치반입니다. 세계 최고의 물류회사가 되는데 정부가 지대한 역할을 한 것이죠.아랍에미리트의 두바이도 항만당국 겸 물류회사인 포트월드가 취급하는 세계 물동량이 연간 3000만TEU(1TEU는 20피트 컨테이너 1개)가 넘습니다.
▼김 전무=국내에서도 해운산업은 박정희 대통령 시절,정부가 정책적으로 육성했습니다. 포스코나 한국전력,한국가스공사 등 대형 화주들은 해운산업을 못하게 했기 때문에 외부 전문기업이 맡는 '3자 물류' 형태로 발전했습니다. 그래서 국내 해운산업이 태동한 지 얼마 안 돼 세계 5등이 된 겁니다. 3자 물류로 해야 물류기업들이 경쟁력을 키우기 위해 '피 터지게' 노력합니다. 한국에서 3자 물류를 이용하는 비율은 30%가 안되는 실정입니다.
▼여 사장=중요한 것은 국내 물류기업의 세계화입니다. 일본 기업들도 해외에 진출할 때 같은 그룹에 있는 기업이 관련 물류를 독점적인 형태로 맡다가 점차 다른 기업들의 물류를 취급하는 3자 물류로 전환했습니다. 정부가 물류 가운데서도 해운,항공,종합물류 등 각 분야에 대한 구체적인 지원책을 마련해야 합니다. DP DHL 같은 글로벌 물류기업을 만들자고 대기업만 지원해달라는 것은 아닙니다. 중소기업과 대기업의 역할이 다른 만큼,양쪽을 함께 육성하는 정책을 충분히 시행할 수 있습니다.
▼김 원장=2007년 해양수산부가 있던 시절에 '글로벌 물류 투자펀드'를 만들었는데,부산항만공사 인천항만공사 등의 공기업들이 돈이 없다며 지분을 넣지 않았습니다. 은행으로만 펀드가 형성되니까 사업 리스크를 고려해 이자율을 10% 수준으로 책정했습니다. 범한판토스 같은 우량기업들은 오히려 시중에서 더 낮은 금리로 차입을 할 수 있으니 쓸 이유가 없었죠.일본은 중앙은행에서 '0% 금리'로 물류기업에 지원하고 있습니다. 싱가포르는 테마섹(싱가포르 국영 투자회사)의 100% 자회사인 PSA가 세계 50개국 항만에 투자하도록 600억달러를 지원하고 있습니다.
▼여 사장=0% 금리는 바라지도 않습니다. 일반 금리라도 프로젝트파이낸싱(PF)을 받을 수 있는 재원만 확보해 줬으면 합니다. 담보를 요구하는 대신 사업 타당성이 있으면 정부가 정책적으로 지원해달라는 거죠.또 1970년대 초창기 '수출 드라이브' 정책을 펼 때 수출손실 분담금이란 게 있었습니다. 수출에 따른 손실이 났을 때 보험공사에서 보전을 해주는 것인데,이를 해외시장에 진출한 물류기업에 적용하면 어떨까 싶습니다. 대손충당금이나 손실충당금을 설정하면 세금을 유예하거나 감면해주는 방안도 검토해볼 만합니다.
▼김 원장=정부에서 대통령이나 국무총리 직속으로 '글로벌 물류 전담기구'를 만들어야 합니다. 해외 시장에 대한 타당성 조사도 하고,경우에 따라 초기 투자를 해서 운영이 정상화되면 물류기업에 이전을 해 주는 역할을 맡는 겁니다. 물류기금을 만들어서 대출도 해주고요. 과거 정권에서는 물류 전담기구를 반대했었는데,이제 바뀌어야 합니다. 물류산업이 국가 신성장동력의 주축이 될 것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결코 특혜가 아니라는 점을 알아야 합니다.
▼사회=물류산업에 대한 인식전환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김 전무=화주인 기업뿐만 아니라 국가도 물류비용을 무조건 절감해야 할 대상으로만 보고 있습니다. 10년 전만 해도 컨테이너 운임이 올라가면 당시 산업자원부 장관이 회의를 소집했습니다. 해운사한테 왜 운임을 올리느냐,공격을 하는 것이죠.그래서 부산항이 중국 상하이항보다 요금이 싸기도 했습니다. 물류산업을 키워서 부가가치를 높일 생각을 안합니다. 제조업의 종속산업으로만 보는 거예요. 사실은 파트너 관계인데 말이죠.
▼여 사장=산업단지에 가보면 제조기업들은 전기요금을 싸게 해 주는데,물류기업들은 전혀 혜택이 없습니다. 서비스 업종이라며 이 · 미용 시설과 같은 요금을 적용받습니다.
▼이 부사장=금융사들도 인식전환을 했으면 합니다. 한진해운이 세계 4위였다가 현재 9~10위로 처졌는데,이게 선박금융과 관계가 있습니다. 금융사들이 해운 불황기 때 투자하고 호황기 때 회수할 생각을 해야 하는데,그 반대로 하려고 합니다. 호황기 때는 이미 시장이 피크 상황이어서 투자의 필요성이 적은데 말이죠.중국 금융사들은 불황일 때 호황을 바라보고 50억달러,100억달러씩 투자합니다. 그게 상생입니다.
▼김 원장=제조기업들도 바뀌어야 합니다. 물류기업과의 동반진출을 안하고 있어요. 삼성전자가 세계 52개 공장이 있는데 한국 물류기업과 동반 진출한 곳이 27곳이고,현대자동차 24개 공장 가운데 동반진출은 10개도 안됩니다. 심지어 광물자원공사나 석탄공사 같은 공기업이 해외 자원개발을 하면서도 동반진출을 안합니다. ▼여 사장=물류에서 경쟁력을 키우지 않으면 앞으로 몇 년 안에 중국한테 질 수 있습니다. 중국이 몇 년 뒤 비행기를 대거 늘리고 노선을 개발하면 한국 항공산업도 어떻게 될지 모릅니다. 물류가 안되면 수출대국도 유지하기 힘듭니다. 정부가 이런 인식에서 정책을 짜야 합니다.
정리=임도원 기자 van7691@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