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초파일에 떠오르는 생각

지난 10일 초파일 행사가 전국적으로 열렸다. 서울 견지동 조계사를 비롯해 전국 사찰엔 많은 정치인들이 참석해 부처님 오신날을 다 함께 축하했다. 필자도 지역구에 있는 절에 들러 '생명 존중'을 강조하는 스님의 말씀을 들으며 생각할 시간을 가졌다. 조계사에서 열린 불기 2555년 부처님 오신날 행사에서 총무원장 자승 스님은 "너와 내가 따로 없는 이웃이며,동반자이며,나를 존귀하게 여기듯이 남 또한 존귀한 존재임을 알아야 한다"는 말씀을 했다는 보도를 접했다. 나를 포함해 각자 믿는 종교가 다른 정치인들이지만 이날 만은 한 마음으로 부처님의 가르침을 되새기는 의미 있는 자리였을 것이다.

얼마 전 끝난 재보궐선거 영향으로 정치권에 변화를 요구하는 바람이 거세다. 그러나 역대 선거결과에 따른 변화의 움직임들이 용두사미로 끝나는 경우가 어디 한두 번인가. 매번 실망해 온 국민들로서 이번에도 별반 큰 기대를 갖지 않는 것은 이 때문일 것이다. 아무리 정치인들이 변화를 외쳐 보지만 자승 스님의 말씀처럼 서로 입장과 견해가 다르더라도 결국 한 이웃이고 동반자임을 인식하지 않는 한,지금의 반성과 변화에 대한 다짐이 주인공만 바뀐 결과가 뻔한 한 편의 리메이크 영화처럼 해프닝으로 끝날 수도 있다. '모든 종교는 존중돼야 한다'는 헌법정신에 입각한 정치인의 사찰 방문이라지만 일부 국민들은 표를 의식한 행위라는 곱지 않은 시선을 쉽게 거두지 않는 것도 같은 맥락일 게다. 그래서 자승 스님의 초파일 가르침을 깊이 새겼으면 하는 바람이다. 한발 더 나아가 실천을 위해 노력한다면 부처님도 좋아하시리라.

정치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 전반에 갈등이 심화되고 있다. 계층간,지역간,종교와 세대간 갈등과 대립이 중첩돼 우리들 마음엔 미움과 불안이 가득하다. 불교의 가르침에 세상 모든 이에게 불성이 있다고 하지 않는가. '불성'을 '인간의 존엄성'으로 바꾸면 세상 모든 이가 부귀와 빈천을 떠나 존엄성을 가진 존재라고 읽힌다. 그래서 나와 남의 구분이며,나와 다른 것에 대한 차별이 다 그릇된 것이다. 일체중생개유불성(一切衆生皆有佛性)이나 모든 사람에게 하나님의 사랑은 차별이 없다는 말씀이나 한가지 가르침이 아닐까.

사전적 의미의 종교는 '초인간적인 신을 숭배하고 신성하게 여겨 선악을 권계하고 행복을 얻고자 함'이라 한다. 종교의 가르침이 없다면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 멀리 찾을 것 없이 북한을 보면 쉽게 이해되리라 생각한다. 그러나 종교 간의 극심한 갈등과 이로 인한 전쟁과 테러 등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도 많다. 부처님이 이 땅에 오신 지 2555년.우리 모두에게 남을 탓하기 전에 자신을 탓하고,어떻게 남들과 더불어 살아갈지를 진지하게 고민하는 날들이 더욱 많아졌으면 한다.

정장선 < 국회의원 js21m@chol.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