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여록] '정보공개법' 악용하는 행안부

지난 11일 오전 국무회의에 일부 장관들이 지각하거나 아예 불참해 개회가 10여분 늦어지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행정안전부 장관은 사전 통보 없이 차관을 대신 보내 총리실을 헷갈리게 했다. 국무회의는 법률을 공포하기 전에 최종적으로 심의 · 의결하는 자리다.

불참한 장관들의 해명이 필요해 보였다. 기자는 행안부 장관의 불참사유를 취재하기 위해 행안부 담당 부서에 연락했다. 예상 밖의 답변이 돌아왔다. "정보공개를 청구하세요. "'정보공개를 청구하면 얼마 뒤에 결과를 받을 수 있느냐'고 물었더니 행안부 측은 "사안에 따라 며칠 걸릴 수 있고,공개가 거절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유를 묻자 담당자는 "우리한테 득 되는 정보도 아니지 않느냐"고 퉁명스럽게 말했다. 정보공개 제도 뒤에 숨어 아무 것도 공개하지 않겠다는 얘기나 다름없었다. 국무회의 담당 부처인 국무총리실도 책임 떠넘기기에 급급했다. 총리실 관계자는 "행안부 소관 업무라 아무것도 알려줄 수 없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전문가들은 정부의 대응이 매우 부적절하다고 지적했다. 정보공개 청구가 당초 취지와는 달리 정보를 숨기거나 공개를 늦추는 목적으로 악용된 지 이미 오래됐다고 했다. 장영수 고려대 법대 교수는 "국무회의라는 공공업무에 공인인 고위 공직자가 연관됐다면 국민들은 당연히 알 권리가 있다"며 "정보공개 청구는 공개 여부에 대해 판단이 어렵거나 자료취합에 시간이 걸릴 때나 해당되지,이 같은 사건에 적용하는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그는 "관련 정보를 신속하게 공개하고 관계자가 해명하면 끝날 일을 공무원들의 불필요한 보신(保身)주의 때문에 불필요하게 키우는 경우가 많다"고 비판했다.

이날 국무회의 '지각 개의'에 대한 본지의 보도가 나간 뒤에야 행안부는 "서울시 방이동에 거주하는 장관은 올림픽대로의 극심한 출근길 정체 때문에 출석을 못했다"는 내용의 지각 사유와 국무회의 자리배치도 등을 슬그머니 내놓았다. 자료에는 '비공식적'이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최근 터진 고위 공직자들의 비리 척결을 위해 '투명한 정부'를 만들겠다던 정부의 약속은 공허한 메아리였다.

남윤선 정치부 기자 inkling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