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낙훈의 기업인 탐구] 지구 80바퀴 돌며 '안목' 키워…"제품 아닌 예술품 탄생했죠"
입력
수정
아토아트 장혜순 회장
장식예술의 '진정한 프로'
제품 '격' 높이려 해외 견학…새 트렌드 작품에 접목시켜
사업 영역 확대
구태의연한 제품구성 탈피…판매처도 갤러리로 넓혀
예술로 승화 시키려면
비즈니스 연연 말고 작품에 애정부터 쏟아야
서울 강남구 신사동 아토아트 갤러리,로데오거리 부근에 있는 이 갤러리에 들어서면 1층엔 유럽의 귀족들이 즐겨 찾는 장식품들이 전시돼 있다.은으로 된 말의 조각과 부조를 비롯해 그릇 액자 트로피 보석함 등이다.2층엔 소품류,지하엔 앤틱스타일의 고급 가구들이 전시 돼있다.아토아트(회장 장혜순)는 고품격 장식품과 선물용품을 취급하는 업체.신세계 현대 롯데 등 주요 백화점에 입점해 있고 최근 갤러리를 열었다.이 분야 업체들이 수없이 명멸한 가운데 15년째 이 분야에서 아성을 쌓고 있는 비결은 무엇일까.
장혜순 아토아트 회장의 여권에는 수없이 많은 국가의 스탬프가 찍혀 있다. 이탈리아 스페인 독일 영국 프랑스 중국 대만 홍콩 미국 싱가포르 인도네시아 태국 일본 등이다. 장 회장은 "그동안 비행거리가 줄잡아 200만마일에 이를 것"이라고 말했다. 지구를 80바퀴 정도 돈 셈이다. "이탈리아 방문 횟수만도 70~80회에 이른다"고 덧붙였다. 밀라노 피렌체 토스카나 베로나 등 주로 중북부 지방을 다녔다. 그는 발로 뛰는 기업인이다. 지난 4월 중순엔 밀라노전시장을 다리가 아플 정도로 다녔다. 가구 전시회를 참관한 것이다. 밀라노가구전은 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한 가구전시회다. 특히 가정용 가구분야에선 최고봉으로 꼽힌다. 이탈리아는 자타가 공인하는 가구 대국.불과 1주일간의 전시회를 통해 이 나라 가구업체들은 1년치 일감을 확보한다. 해외에서 마케팅을 할 필요가 없을 정도다. 전시회 참관은 고된 작업이다. 코엑스의 몇 배에 이를 정도로 넓은 전시장을 수많은 인파를 헤치고 다녀야 한다.
장 회장은 이런 전시회를 찾으면 구석구석을 세밀하게 살핀다. 새로운 트렌드는 무엇이고 어떤 게 품격있는 제품인지,이걸 사가면 국내에서 팔릴 수 있는지 등등을 파악해야 한다. 자칫 잘못 수입해서 안 팔리면 고스란히 부담으로 돌아오기 때문이다. 게다가 임직원을 대동하고 이들이 '안목'을 넓힐 수 있도록 현장 교육까지 시킨다. 몇사람 몫을 하는 셈이다.
그는 이 분야의 프로다. 아토아트의 주요 사업은 장식예술품 및 선물용품의 무역과 유통이다. 대표적인 게 은 장식품이고 목제가구나 시계 액자 등 소품류도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품격있는 제품'을 찾는 일이다. 그래야 안목있는 사람한테 팔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기 위해선 자신이 먼저 안목을 갖춰야 한다. "수십년에 걸친 훈련을 통해 비로소 얻어진 것"이라고 그는 설명했다. "이 비즈니스를 흉내내 몇몇 기업인들이 자본력만 믿고 창업했다가 속속 문을 닫은 것도 결국은 안목 부족 때문"이라고 해석했다. 같은 은장식품인데 안목이 있는 제품과 없는 제품의 차이는 무엇일까. "은 제품은 역사적으로 보면 그리스 · 로마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고 가깝게는 바로크 · 로코코 시대로 올라갈 수도 있습니다. 유럽의 왕족이나 귀족이 사랑한 제품들이지요. 은은하고 품격이 느껴지기 때문이지요. 거기에 시골집 풍경이나 보리 밀 그림이 그려져 있다고 해요. 그게 격에 맞겠습니까. " 그럼 어떤 제품을 다룰까. 그는 '헤븐(heaven)''왕가의 위엄' '봄의 제전(La Primavera)' 등 작품명이 있는 제품들을 일일이 설명했다.
장 회장은 "집안 환경이 좋아 다행히 어릴적부터 안목을 기르는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그는 잠실 일대의 많은 땅을 가진 부잣집에서 태어났다. 부친은 당시 그 지역에 모 백화점을 창업하기도 했다. 어릴 적 살던 저택에는 아름다운 그림과 장식품 및 조각 작품들로 채워져 있었다. 특히 이화여고 재학시절부터 친구들과 유럽 문화에 대한 스터디 활동을 해온 것이 안목을 키우는 데 많은 도움이 됐다. 그렇다고 온실 속의 화초는 아니었다. 대학에서 무역학을 전공한 그는 대한항공을 거쳐 남자직원들과 치열한 경쟁끝에 모 백화점 이사를 거쳐 웅진그룹에서 교육과 마케팅 분야를 담당하며 불과 37세에 전무로 진급하는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1990년대 중반 그에겐 일생일대의 변화가 찾아왔다. 자동차 사고로 왼쪽 팔을 다친 것이다. 이를 계기로 요양차 뉴질랜드를 찾은 그는 일요일마다 개인들이 소장한 물품을 파는 선데이마켓이 열리자 호기심에 옛날 램프와 은장식 제품 등 골동품을 한두개씩 사모으기 시작했다. 구경하는 재미와 소장의 기쁨을 동시에 느낄 수 있었다. 그때 번개처럼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골동품이나 장식품 비즈니스에 대한 아이디어다. 당초 6개월 요양할 생각으로 뉴질랜드에 갔으나 단축해 4개월 만에 귀국한 그는 비즈니스에 대한 생각을 가다듬고 이번엔 이탈리아로 날아갔다. 그곳에는 더욱 좋은 장식품과 예술품들이 있을 것으로 기대한 것이다. 이를 계기로 1996년 아토아트(AtoArt)를 창업했다. "아토는 우리말 고어로 '신이 주신 귀한 선물'이라는 뜻"이라고 장 회장은 설명했다. 그는 작품을 고를 때 5가지를 기준으로 삼는다. 사랑 풍요 성공 희망 행복이다. "작품을 갖다 놓는 사람에게 이 같은 가치를 선사할 수 있는지를 본다"고 설명했다.
"예컨대 탄탄한 근육에 힘줄이 불끈 솟아있는 말은 힘과 성공을 의미한다"고 덧붙인다. 독수리 역시 위엄과 성공의 상징이다. 데이지꽃은 희망을 뜻하고 예쁜 꽃은 사랑을 상징한다. 집안에는 사랑과 관련된 작품,회사 집무실에는 성공을 상징하는 작품을 권유한다. 동시에 작품이 예술성을 갖추고 있는지,해당 작가가 그 나라에서 차지하는 위상이 어떤지 등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들여온다. 하지만 이들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작품에 대한 사랑'이라고 덧붙인다.
이탈리아의 유명한 은작품을 만드는 예술가를 만났을 때 그는 장 회장에게 "내 작품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고 장 회장은 작품에 대한 느낌과 애정을 가감없이 표현했다. 그랬더니 그 작가는 "앞으로 한국의 경우 당신에게만 팔겠다"며 즉석에서 독점계약을 허용했다. 자신의 작품을 이해하고 사랑하는 사람에게 자식같은 작품을 기꺼이 보내겠다는 뜻이다. "이게 바로 비즈니스를 뛰어넘는 예술가의 세계를 보여주는 예"라고 장 회장은 해석한다. 아토아트 직원 중에 미술이나 미술사(史),디자인 등을 전공한 사람들이 많은 것도 이런 안목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다양한 맨파워를 바탕으로 작품을 구입하고 백화점을 통해 판다. 장 회장은 "고급제품은 이탈리아에서 만든 게 대부분이고 일부 제품은 이탈리아 디자이너와 중국이나 대만 홍콩의 기업이 협력해 생산한 제품들"이라고 설명했다. 그동안 유명 백화점을 통해서만 팔던 것을 작년 11월 서울 강남구 신사동에 아토아트 갤러리를 만들어 기업을 상대로 한 선물용품 사업에도 뛰어들었다. 기업에 대한 비즈니스로 영역을 확대한 것이다.
장 회장은 "기업인들이 창립 기념일에 직원이나 거래처에 줄 마땅한 선물을 고르지 못해 어려움을 겪는 것을 보고 뛰어들었다"며 "품격이 있으면서도 특이한 제품을 찾는 기업인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아토아트는 수천만원대의 작품에서 1만~2만원대의 선물 아이템까지 탄력적인 제품 구성으로 다양한 고객층을 만족시키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10만원짜리 시계라고 해도 예술성있는 작품을 제대로 골라 적소에 설치하면 실내 분위기가 한순간에 달라진다"며 "아름다운 작품을 통해 고객에게 기쁨을 줄 수 있는 회사를 만들어가겠다"고 강조했다.
김낙훈 중기전문기자 nh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