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대한민국 지식인이여, 반성하라

지배층 몰염치·윤리의식 결여…구습·당쟁 벗고 미래 생각해야
아담 스미스(1723~1790)는 경제학의 아버지로 불린다. '보이지 않는 손'으로 상징되는 그의 경제사상은 자유방임을 기초로 한 고전학파 경제학으로 발전했다. 고전학파 경제학은 현대 자본주의의 맹아를 키운 이론적 기초였다. 요즘 그토록 참시되고 있는 신자유주의의 원조이기도 하다. 그러나 고전학파 경제학은 위기를 설명하는 데 무력했다. 지금의 상황도 그렇지만 1930년대의 대공황을 고전학파 경제학이 설명하지도,해결하지도 못했기 때문에 케인스의 수정자본주의가 등장하게 된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다.

아담 스미스가 자유방임을 주장했다고 해서 그가 윤리적인 문제를 등한시했다고 판단한다면 잘못된 인식이다. 아담 스미스의 첫 저서는 '도덕 감정론'인데 그 주된 명제는 이기적인 개인이 어떻게 타인과 조화로운 사회를 형성할 수 있는가라는 매우 도덕적인 것이었다. 그에 따르면 개인은 이기적이지만 타인에 대한 판단을 하게 되는 경우에는 '불편부당한 조언자'가 마음에 있어 그 조언자의 충고에 따른다. 그리고 이 상상의 조언자가 하는 충고의 기초가 되는 것은 이기심이 아니라 동정심이다. 아담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의 뒤에는 동정심이라는 보이지 않는 윤리가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대한민국에서 명색이 경제학자로서 살아가면서 가장 힘든 것은 과장해서 말한다면 경제학으로 할 수 있는 것이 하나도 없다는 것이다. 아무리 학문적으로 옳고 현실적으로 이 나라에 큰 보탬이 될 것이 명약관화한 제안도 결국은 파당의 정치,잘못된 법 혹은 자의적인 법 해석,기득권과 강자의 논리,그리고 때로는 여론 지도층에 의해 무시되거나 왜곡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지역,종교,여성의 문제와 같이 금기시되는 토론의 영역까지 존재한다. 법으로 규정되어 있는 것조차도 담당자가 뭉개고 적당히 포장하면 용서되고 정치,경제,사법,교육,언론의 잘못된 제도는 너무나 많은 억울한 사람들을 만들어내고 있다.

심하게 말하자면 이 나라는 아무것 하나 제대로 되는 것이 없는 불모의 땅으로 변해가고 있다. 지금 우리가 이룬 민주주의와 경제적 성과가 어떤 희생 위에 이루어진 것인가를 상고(相考)한 다음,한 발짝 뒤로 물러나 지금의 우리 현실을 바라볼 때 독자의 눈에 보이는 우리의 미래는 무엇인가? 1800년 정조가 붕어(崩御)한 다음 조선의 지배계층이 택한 사색당쟁이라는 역사의 뒤안길을 지금의 지배계층이 답습하고 있다고 한다면 지나친 것일까? 19세기 이 나라의 지배계층이 개혁의 기회가 여러 번 존재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은 망국으로 이끈 과정은 두고두고,정말 두고두고 통탄스럽지 않은가?

지금 이 나라가 당면한 많은 문제는 지식인으로 대별되는 지배계층의 몰염치와 윤리의식 결여 때문에 발생하고 있다. 물론 이 나라의 정치,경제,종교,사회,사법,교육,언론의 모든 분야에서 존경할 만한 훌륭한 선각이 어디 한두 분이겠는가? 그러나 전체로 보았을 때 이 나라의 지식인 집단은 썩어 있거나 아담 스미스의 '불편부당한 조언자'를 상실하고 있다. 대기업은 반성하라.이 나라의 경제발전을 위해 모든 고통을 감내한 중소기업과 근로자를 배려해야 한다. 그렇다고 국민연금을 이용하여 대기업을 길들이겠다며 화만 내는 정부도 반성하라.그동안 많은 전문가들이 금융감독 권력의 독점적 집중의 폐해를 여러 번 지적했음에도 마이동풍이지 않았는가? 전관예우라는 부패한 관행 때문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억울해 했는가를 상상해 보았는가? 법조계도 반성하라.제대로 된 법 하나 만들어 내는 데 인색하고 차기 총선과 대선에만 몰두하는 의회,정치인들도 반성하라.언론과 종교에 족벌이나 재벌이라는 접미어가 달린다는 것도 부끄러운 일이다. 교육자가 이 나라의 미래와 꿈보다는 현실을 위하여 싸운다는 것도 창피한 노릇이다. 모두 반성하라.

조장옥 < 서강대 경제학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