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관료의 자격

'스스로를 없어서는 안될 인물이나 절대적으로 옳다고 생각하지 말라.모든 사람을 만족시키려 해도 누군가는 불만을 가질 것이다. 비난 받지 않는다면 많은 일을 하고 있는 게 아니다. 주변을 그들과 우리로 나누어선 안된다…' 두차례의 국방장관,대통령 비서실장 등을 지낸 도널드 럼즈펠드가 고위 관료가 갖춰야할 덕목으로 꼽은 '럼즈펠드 규칙'이다.

우리도 노무현 정부 시절 만든 '장관 매뉴얼'이란 게 있다. 취임 즉시 인사를 하면 잡음 소지가 많으니 피할 것,국회의원들과의 관계에선 무조건 머리를 숙일 것,당황하는 모습을 보이면 언론에 크게 보도될 수 있으니 차분할 것 등을 권했다. 좋은 관료 되기가 간단치 않다는 걸 보여주는 사례들이다. 걸핏하면 여론의 뭇매를 맞고,본인 잘못이 아니지만 책임을 져야하는 경우도 생긴다. 그런데도 관료가 되겠다는 사람들이 줄을 섰다. 신분이 보장되는데다 각종 인허가권과 예산 집행권을 틀어 쥐고 있기 때문일 게다. 하지만 변화를 싫어하다 보니 선례 답습이나 형식에 사로잡히는 경우가 많다. 더 나쁜 건 직위의 악용이다. 법망을 교묘하게 피해가며 곳곳에 누울 자리를 마련해 놓고 사욕 채우기에 혈안이 되기도 한다. 이른바 관료주의 폐해다. 학자들도 이를 경고한다. 에리히 프롬은 "공무원은 살아있는 존재의 반응보다는 통계자료에 의해 만들어진 고정적인 규칙에 의해 어떤 일을 결정한다"고 꼬집었다.

미국 현상학자 랠프 험멜은 더 직설적이다. '관료제의 경험'이란 책에서 "생김새가 인간과 비슷해도 머리와 영혼이 없는 존재"라고 질타했다. 정의와 자유를 걱정하는 척하면서 통제와 능률만 생각하고,국민에 봉사하는 게 아니라 군림한다는 거다. 심지어 "공무원과 정상인의 의사소통은 불가능하다"고도 했다.

요즘 일부 관료들의 행태를 보면 이런 비판이 과장만은 아니란 생각이 든다. '상하이 스캔들'로 외교관들이 줄줄이 체면을 구기더니 전 코트디부아르 대사는 상아를 들여오다 덜컥 걸렸다. 반민 반관이긴 하지만 금감원의 감독소홀과 부정부패가 맞물리면서 저축은행이 초토화되고 있다. 장관들이 지각하는 바람에 국무회의가 예정보다 늦게 열리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시시콜콜 챙기는 대통령과 그 눈치 보는데 길들여진 관료들이 빚어낸 합작품이다. 기업과 사회는 급변하는데 관료들은 언제나 제 역할을 할 지 답답하다.

이정환 논설위원 jh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