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선생과 스승

굴곡 없는 인생이 어디 있을까마는 필자도 나름 곡절 많은 청소년기를 보냈다. 아버지의 사업이 두 번이나 기울었고,초등학교 때는 어머님이 몸져누워 힘든 학교 생활을 보내야 했다. 당시는 치맛바람과 촌지문화가 성행하던 시절이었다. 초등학교 때 힘 있는 기관에 다니는 아버지를 둔 친구에게 당선되다시피했던 학생회장 자리를 뺏기는 아픈 경험도 있었다. 대학은 전공을 바꿔 두 번을 다녔다. 한 학기 등록금만 갖고 유학을 떠나는 모험도 했다.

고비마다 방황도 했지만 그때마다 인생의 멘토가 되어준 스승들이 있었기에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었다. 이가 가지런해 웃는 모습이 한없이 자상해 보였던 초등학교 4학년 때 선생님과 부모님이 한 번도 학교를 찾아가지 않았어도 편애하거나 차별하지 않으셨던 중학교 3학년 담임 선생님이 특별히 기억난다. 두 분 모두 공부보다는 인성을 강조하고 학생 각자가 가진 장점을 찾아 격려해주셨던 분이었다. 유학 시절의 스승들도 당시 아이를 키우며 어렵게 공부하는 필자에게 특별한 배려와 지도를 해주셨다. 노벨 경제학상을 탄 이분의 지성과 인품을 닮고자 지금도 노력하고 있다. 귀국해 고달픈 시간강사 시절에 모교 은사가 당신의 연구실을 흔쾌히 제공해 주셔서 편하게 강의와 연구활동을 할 수 있었다. 대학에 자리잡지 못해 연구소로,국회로 여러 차례 직장을 옮길 때마다 흔쾌히 추천서를 써주셨다. 후에 연구실 혜택을 받은 제자들이 모여 보답하는 의미에서 교수님의 방을 예쁘게 꾸며 드렸다. 지금도 1년에 두 차례는 은사님을 모시고 세상 사는 지혜를 배우고 있다.

요즘엔 선생은 있지만 스승은 없는 시대라고 한다.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않는다는 얘기는 옛말이 된 지 오래일 정도로 교사의 권위가 떨어지고 있다. 학생들은 학교 선생님들과는 고민 상담도 안 한다. 통계청의 2011 사회조사에 따르면 우리 청소년(15~24세)들은 고민을 부모나 스승이 아닌 주로 친구(51.1%)와 상담하는 걸로 나타났다. '선생님'이라는 응답은 1.4%에 불과했다. 그럼에도 교사가 가장 선호하는 인기직업 중 하나라는 사실은 아이러니하다. 선생님이 인생의 사표가 아니라 단순한 지식전달자 또는 샐러리맨으로 인식되는 세태가 안타깝다.

스승의 권위가 떨어진 건 취업만을 위한 스펙을 강조하는 세태와도 무관치 않을 것이다. 스펙을 쌓는 데 도움이 되는 단순한 지식 전달자라면 선생님들은 방대한 지식의 창고인 인터넷을 따라갈 수 없을 것이다. 사람됨이라는 그릇의 크기를 결정하는 문(文) 사(史) 철(哲)과 인성을 강조하고 가르치는 스승이 이 시대에 더 필요한 이유다. 스승의 날을 맞아 내 젊은 날의 스승들에 대한 고마움을 되새기고 대학교수 시절 제자들에게 어떻게 기억될까 생각해 본다.

이인실 < 통계청장 insill723@korea.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