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연금, 자사상품 운용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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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금보장 예금ㆍELS운용 불허…보험사는 제외 '형평성 논란'하반기부터 은행과 증권사는 자사 금융상품을 통해 퇴직연금을 운용하는 것이 금지된다.금융당국은 보험업계는 이 같은 규제에서 예외를 인정할 방침이어서 은행과 증권사들이 반발하고 있다.금융당국의 규제로 퇴직연금 가입자들의 선택권이 침해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가입자 선택권 침해·소비자 피해도 예상
16일 금융계에 따르면 금융위원회는 최근 이 같은 방안을 마련하고 자본시장법 시행령과 근로자퇴직급여보장법의 퇴직연금 감독규정을 고쳐 하반기 중 시행할 예정이다.금융위는 퇴직연금 감독규정 개정을 위해 지난달부터 ‘민 · 관 합동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하고 업계 의견을 수렴해 왔다. 금융위 관계자는 “퇴직연금 유치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혼탁 양상까지 빚어지고 있다”며 규제 도입의 필요성을 설명했다. 금융당국에 따르면 일부 퇴직연금 사업자는 자사 원금보장 상품을 동원해 경쟁사보다 0.5~0.7%포인트 높은 수익률을 제시하고 있다. 또 연 5~6%에 가까운 수익률을 보장하는 등 ‘역마진’에 가까운 영업도 벌여왔다.
이 방안이 시행되면 A은행 퇴직연금 가입자의 원금보장 상품 운용처는 기존 A은행 정기예금에서 B은행 또는 C은행 예 · 적금,증권사나 보험사의 원금보장 상품 등으로 바뀐다. 증권사도 자사 원금보장 주가연계증권(ELS)으로 운용할 수 없다. 확정급여형(DB) 상품의 경우에는 퇴직연금 사업자가,확정기여형(DC)은 개별 가입자가 바꿔야 한다.
◆금융당국,보험사에만 특혜다만 보험사는 자사 원금보장 상품 판매가 허용된다. 금융위 관계자는 “보험사들은 별도로 분리된 특별계정으로 퇴직연금을 운용하기 때문에 자사 상품 판매가 퇴직연금 운용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말했다.이에 대해 은행과 증권업계는 형평성에 어긋난다고 지적하고 있다.한 은행 관계자는 “보험사의 특별계정처럼 별도의 신탁계정이 있는 은행권에도 자사 상품 운용을 허가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이러한 정부의 방침으로 가장 타격을 받는 곳은 은행이다.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 3월말 현재 은행권은 퇴직연금 자산 15조4452억원 가운데 92%인 14조2510억원을 모두 자사 예적금으로 예치시켜 운용하고 있다.은행들이 이 예적금(14조2510억원)을 모두 타 은행 혹은 증권,보험업권으로 이동시킬 경우 퇴직연금시장 1위인 은행권의 지위도 흔들릴 것으로 보인다.현재 퇴직연금 시장 점유율은 은행권이 48.6%로 1위를 고수하고 있고, 생명보험업권이 25.7% 손해보험업권 8.0% 증권업권 17.7% 등이다.퇴직연금시장 규모는 지난해말 29조원대에서 올해말까지 50조원대로 확대될 예정이어서 이번 퇴직연금감독규정 변경의 최대 수혜자인 보험업권을 중심으로 시장 판도가 재편될 가능성이 있다.
현재 퇴직연금 사업자별 시장 점유율은 삼성생명이 15.0%로 1위다. 국민은행(9.5%) 신한은행(8.8%) 우리은행(8.1%) 기업은행(6.0%) 교보생명(4.7%) HMC투자증권(4.7%) 하나은행(4.3%) 농협(4.2%) 등이 뒤를 잇고 있다. ◆가입자 선택권 침해·소비자 피해도 예상
자사상품 운용 금지에 따른 소비자의 혼란도 예상된다.금융권 관계자는 “고객에 대한 적절한 홍보나 공감대 형성없이 자사상품 운용을 일방적으로 제한할 경우 고객의 반발과 혼란이 불가피할 것”이라고 말했다.시중은행 관계자도 “자사상품 운용 금지는 경쟁 가능성을 원천 금지하면서 사업자의 상품 개발 의지를 없앨 수 있다”며 “원금 보장 상품을 보고 퇴직연금사업자를 선택하는 경우가 많은 데 이러한 선택권이 없어지면 고객들의 불편이 예상된다”고 말했다.
한편 금융당국은 퇴직연금 사업자가 가입자에게 여수신 금리를 우대해주고 수수료를 면제해주거나 우대환율을 적용하는 것도 금지시킬 계획이다.건강검진 서비스 제공,콘도 이용권,상품권 제공 등도 금지된다.그러나 금융권은 콘도 이용권 제공 등을 금지시키는 것에는 동의하지만 합리적인 고객 우대 마케팅은 허용해야한다는 입장이다.시중은행 관계자는 “은행에 급여이체를 할 경우 고객의 기여도를 합리적으로 평가해서 송금 수수료 면제 등의 혜택을 주고 있는 데 유독 퇴직연금 가입자에 대해서만 고객 우대 방안을 금지하라는 것은 퇴직연금 가입 고객의 반발만 불러올 뿐”이라고 말했다.
안대규 기자 powerzani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