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금융위기, 한국ㆍ아시아 새시대 열어"

● 서머스 前 美재무장관, 서울국제포럼 강연

미국의 과도한 자신감이 금융위기 초래…中성장으로 세계 각국 거센 도전에 직면
"30년 후에 이번 글로벌 금융위기를 돌아본다면 위기 그 자체보다 한국을 비롯한 국가들이 주요 20개국(G20)으로 부상했다는 점이 훨씬 중요하게 평가될 것입니다. "

미국 하버드대 총장과 재무장관,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자문기구인 국가경제위원회(NEC) 위원장을 지낸 로렌스 서머스 하버드대 교수(57 · 사진)는 16일 오전 서울 소공동 웨스틴조선호텔에서 열린 서울국제포럼(이사장 이홍구 전 국무총리)에 강연자로 나서 이같이 말했다. 그는 "금융위기는 한국과 아시아에 새 시대를 열어줬다"며 "이는 (갑작스러운 것이 아니라) 위기 이전 축적된 역량이 발현된 것"이라고 평가했다. ◆과도한 자신감이 금융위기 불렀다

서머스 교수는 금융위기가 오기 전 미국에는 낙관적 경제론이 판을 쳤다고 지적했다.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은 1990년대 정보기술(IT) 발전으로 깊은 불황이 없는 '신경제'가 가능하다고 주장했고,조지 W 부시 전 대통령도 누구나 주택을 가질 수 있도록 하겠다는 '오너십 소사이어티' 정책을 펼쳤다.

서머스 교수는 "매우 인상적인 성장 시나리오가 넘쳐났고 장기적인 성장이 가능하다는 자신감이 시장에 가득했다"며 "과도한 자신감,과도한 투자,과도한 대출,과도한 레버리지가 2000년대 미국 경제를 지배했다"고 평했다. "한국의 외환위기를 비롯해 러시아 태국 등 각국의 경제 위기를 많이 지켜봤지만 내가 있는 미국이 위기의 진원지가 되리라곤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고 회고했다. 그는 미국이 "생각보다 빠르게 금융위기에서 벗어났다"며 그 이유로 '달러가치 안정'을 꼽았다. 한국 외환위기에선 원화값이 급락하고 외국 자금이 급속히 이탈했지만 기축통화인 달러화는 이런 문제를 겪지 않았다는 것.

서머스 교수는 "유동성이 넘쳐나 문제가 생겼는데 위기 극복을 위해서는 추가 유동성을 시장에 공급해야 했다"며 "미국 재정적자를 늘리는 딜레마가 있었지만 위기 극복에는 도움이 됐다"고 설명했다.

◆美 · 中,'제로섬 관계' 아니다미국의 경쟁자로 빠르게 부상하고 있는 중국과의 글로벌 불균형 상태에 관해 그는 "미국과 중국의 관계는 펩시콜라와 코카콜라처럼 '제로섬 관계'가 아니다"고 강조했다.

그는 "신흥시장이 성장하는 것이 전 세계 경제를 풍요롭게 만드는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미국이 쇠퇴하는 추세는 명백하며 중국의 성장으로 인한 도전은 앞으로 수십년간 과소평가돼선 안 될 문제"라고 지적했다.

재정위기를 겪고 있는 유럽 국가들에 대해서는 부정적으로 언급했다. 그는 정부가 투명한 정책을 쓰는 것이 좋은가에 대해 말하던 중 "실제 상황이 시장의 예상보다 너무 나쁘다면 '투명한 정책'이 도움이 되지 않을 수도 있다"며 "이것이 바로 유럽 국가들이 현재 투명한 정책을 쓰지 못하는 이유"라고 비꼬았다. 유럽이 알려진 것보다 더 나쁜 상황에 처해 있다는 것이다. 그는 한 참가자로부터 급격하게 고령화 사회로 접어드는 한국에 대한 조언을 요청받자 "은퇴 시기를 늦추는 것이 가장 근본적인 해결책"이라고 답했다. 무조건 복지를 확충하기보다는 더 오래 살게 된 만큼 더 오래 일할 수 있도록 하는 게 낫다는 주장이다.

서머스 교수는 28세에 하버드대 교수로 임명됐다. 2001년부터 2006년까지 하버드대 총장으로 재직했다. 레이건부터 부시 전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여러 차례 미 정부 자문위원을 맡았으며 클린턴 정부에서는 재무장관을 역임했다. 가난한 나라에 부유한 나라의 쓰레기를 버릴 수 있다는 주장 등으로 설화를 겪기도 했지만,오바마 대통령은 그를 "세계에서 가장 명석한 경제학자"로 신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상은 기자 se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