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경영인으론 안돼…총수가 나서야"

● 李대통령 '총수 문화' 발언 왜

동반성장 기대 못 미친다고 판단 '불만 표출'

이명박 대통령이 16일 대 · 중소기업 동반성장과 관련해 총수 문화가 바뀌어야 한다고 언급,그 배경이 주목된다. 이날 유망 중소기업인 400여명을 청와대로 초청해 간담회를 가진 자리에서 동반성장이 제대로 되려면 대기업의 문화와 태도가 변화해야 한다는 점을 거론하면서다.

이 대통령이 지금까지 동반성장을 얘기하면서 총수라는 단어를 쓴 적은 여러 번 있으나 '총수 문화'를 직접적으로 사용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는 동반성장과 관련, 대기업에 보다 압박강도를 높인 것이라는 게 일반적 해석이다. 더욱이 대기업들의 실적 위주 경영을 지목하며 "남의 희생을 낳고 살벌한,냉혹한 경쟁이 될 수 있다"고까지 말했다. 이 대통령은 지금까지 기회가 있는 대로 대기업이 동반성장에 적극 나서달라고 주문했다. 지난해 12월8일 국민경제대책회의에서 "동반성장은 강제로 할 것은 아니다"면서도 "대기업 총수의 인식과 문화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평소 생각한다"고 밝힌 바 있다. 같은 달 15일에도 "대기업 총수들이 인식을 바꾸고 기업문화를 바꾸는 데 앞장서 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지난 3일 청와대에서 가진 경제5단체장과의 오찬간담회에선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동반성장도 상대를 존중하는 문화가 형성돼야 가능한 것"이라며 "총수들이 조금 더 관심을 갖고 배려하면 문화가 바뀔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대통령이 총수 문화를 직접 언급한 것은 동반성장에 임하는 대기업들의 태도가 여전히 미흡하다는 인식이 바탕에 깔린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재계에 '나는 친시장 · 친기업이고 강압하지 않겠다'고 하면서도 동반성장과 일자리 창출,사회적 기여 등에서 대기업들이 소극적이라는 불만을 우회적으로 나타냈다는 얘기다.

청와대 관계자는 "우리나라의 대기업 문화는 총수 중심의 분위기가 형성돼 있는 게 현실"이라며 "때문에 이 대통령은 동반성장을 위해 총수들의 역할이 결정적이라는 판단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큰 힘을 갖고 있는 총수가 직접 중소기업을 찾아가는 등 솔선수범을 해야 밑에 직원들이 따라오고,동반성장 문화가 제대로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전문경영인으론 한계가 있는 만큼 총수들이 직접 나서야 한다는 얘기다. 이 대통령의 이날 발언은 지금까지의 자율적 동반 성장 기조와는 거리가 있다는 비판적 시각도 있다. 이에 대해 청와대의 또 다른 관계자는 "동반성장에 대한 이 대통령의 뜻은 강제가 아닌 법에 의해,대기업과 중소기업이 자율적으로 해야 한다는 데 변함이 없다"고 강조했다.

특히 이 대통령이 최근 '공정사회 드라이브'를 걸 태세를 보이고 있다는 점에서 총수 문화 언급은 주목된다. 임태희 대통령 실장은 지난 15일 기자간담회에서 "앞으로 확실하게 고칠 것은 고치고,지킬 것은 지킨다는 의지를 갖고 공정사회를 해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대통령이 부산 저축은행 사태에 대해 연일 엄정조사를 지시한 것도 공정사회 차원이라고 했다. 때맞춰 감사원은 공직자 비리에 관용이 없다며 기강 다지기에 나섰다. 이런 상황에서 '총수 문화'발언은 '친서민 · 공정사회'를 과학비즈니스벨트 입지 선정 등 논란을 불식시키기 위한 돌파구로 삼겠다는 신호탄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홍영식 기자 ysh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