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가속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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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속기란 일종의 슈퍼 현미경이다. 맨눈으론 볼 수 없는 물질의 미시 세계를 들여다보는 대형시설이다. 미국 시카고 인근 페르미국립연구소에 있는 '테바트론'은 둘레 6.3㎞의 입자가속기다. 양성자와 반양성자를 다른 방향으로 가속해 충돌시키는 실험을 한다. 1994년엔 이 가속기를 이용해 자연에 존재하는 마지막 소입자로 불리는 '톱쿼크'를 발견했다.
2008년 완공된 유럽입자물리연구소의 거대강입자가속기(LHC)는 테바트론을 단숨에 앞질렀다. 스위스와 프랑스 국경지대 지하 100m에 지름 8m,길이 27㎞로 건설된 지상 최대의 과학실험 장치다. 비용만 10조원이 들어갔다. 두 개의 양성자를 가속한 뒤 빅뱅 당시와 비슷한 힘으로 정면 충돌시킨다. 이 때 들어가는 에너지는 17테라전자볼트(TeV)다. 1.5볼트 건전지 10조 개를 연결해야 얻을 수 있는 엄청난 에너지다. 이를 통해 빅뱅 직후 1조분의 1초까지 재현할 수 있다고 한다. 국내에는 포스텍에 방사광가속기가 1994년 처음 설치됐다. 미국과 유럽에 가속기가 4대밖에 없던 시절이다. 이곳에서 연구한 뒤 해외 학술지에 발표한 국내 학자들의 논문이 2007년까지 1373건에 달했을 정도로 효용이 크다. 2002년 착공한 경주 양성자가속기는 내년에 완공될 예정이다. 양성자 10경(京)개를 70여m 길이의 가속장치에서 광속의 57%에 달하는 속도로 가속할 수 있는 장치다.
대덕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에 들어갈 중이온가속기도 테바트론이나 LHC와 작동원리는 비슷하지만 목적은 좀 다르다. 테바트론과 LHC가 우주탄생 순간을 재현하는 순수 연구시설이라면 중이온가속기는 희귀 동위원소를 만드는 게 주목적이다. 지하 10m 깊이에 지름 10m의 원형가속기와 길이 200m의 선형가속기를 연결하는 게 특징이다. 원형가속기에서 만들어진 희귀 동위원소를 다시 선형가속기에서 충돌시키면 더 새로운 동위원소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새 물질을 찾아내면 신소재 개발로 연결될 가능성이 크다. 암세포를 공격하는 새로운 물질을 발견할 수도 있다.
가속기 같은 첨단설비는 과학 선진국으로 가는 통로다. 궁극적으론 인류 문명 발전에도 기여한다. 정치적 계산으로 오락가락하다가 겨우 입지를 선정한 것이나,선정 결과를 놓고 단식 삭발에 혈서까지 쓰며 티격태격하는 것은 참 부끄러운 일이다.
이정환 논설위원 jhlee@hankyung.com
2008년 완공된 유럽입자물리연구소의 거대강입자가속기(LHC)는 테바트론을 단숨에 앞질렀다. 스위스와 프랑스 국경지대 지하 100m에 지름 8m,길이 27㎞로 건설된 지상 최대의 과학실험 장치다. 비용만 10조원이 들어갔다. 두 개의 양성자를 가속한 뒤 빅뱅 당시와 비슷한 힘으로 정면 충돌시킨다. 이 때 들어가는 에너지는 17테라전자볼트(TeV)다. 1.5볼트 건전지 10조 개를 연결해야 얻을 수 있는 엄청난 에너지다. 이를 통해 빅뱅 직후 1조분의 1초까지 재현할 수 있다고 한다. 국내에는 포스텍에 방사광가속기가 1994년 처음 설치됐다. 미국과 유럽에 가속기가 4대밖에 없던 시절이다. 이곳에서 연구한 뒤 해외 학술지에 발표한 국내 학자들의 논문이 2007년까지 1373건에 달했을 정도로 효용이 크다. 2002년 착공한 경주 양성자가속기는 내년에 완공될 예정이다. 양성자 10경(京)개를 70여m 길이의 가속장치에서 광속의 57%에 달하는 속도로 가속할 수 있는 장치다.
대덕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에 들어갈 중이온가속기도 테바트론이나 LHC와 작동원리는 비슷하지만 목적은 좀 다르다. 테바트론과 LHC가 우주탄생 순간을 재현하는 순수 연구시설이라면 중이온가속기는 희귀 동위원소를 만드는 게 주목적이다. 지하 10m 깊이에 지름 10m의 원형가속기와 길이 200m의 선형가속기를 연결하는 게 특징이다. 원형가속기에서 만들어진 희귀 동위원소를 다시 선형가속기에서 충돌시키면 더 새로운 동위원소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새 물질을 찾아내면 신소재 개발로 연결될 가능성이 크다. 암세포를 공격하는 새로운 물질을 발견할 수도 있다.
가속기 같은 첨단설비는 과학 선진국으로 가는 통로다. 궁극적으론 인류 문명 발전에도 기여한다. 정치적 계산으로 오락가락하다가 겨우 입지를 선정한 것이나,선정 결과를 놓고 단식 삭발에 혈서까지 쓰며 티격태격하는 것은 참 부끄러운 일이다.
이정환 논설위원 jh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