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객원 논설위원들의 수다] "지금은 고령화 大전환기…죽음이 위험인가, 삶이 위험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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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계 넘나드는 지성, 雜談의 美學 보여주다…첫 주제 - 리스크
"금융위기 초래한 파생상품은 '모른다는 것을 안다'는 가정에서 나온 것"
"요즘엔 사회가 실수를 용납 안 해…성공 땐 '너 잘났다' 실패 땐 '그럴 줄 알았다'式"
"저축은행 위기 7~8월에 최고조 달할 듯…정부대책이 새로운 리스크 만들 수도…"
"경제에 정치 개입되면 리스크 더 커져…高유가는 수급 아닌 투기와 政爭 때문"
한경이 형식 파괴, 경계 넘기의 새로운 집담회(集談會)를 선보인다. 집담 주인공은 한경 객원논설위원들이다. 각 분야 전문가들이 술잔을 부딪치며 격의 없는 지성의 대화를 시작한다. 첫 집담회는 지난 16일 저녁이었다. 이날의 주제는 리스크(Risk)였다. 일본 후쿠시마 원전 리스크에서부터 저축은행 사태에 이르기까지 이 시대를 살아가는 개인과 기업,사회가 직면한 위험은 무엇인지를 놓고 벌인 갈팡질팡의,그러나 수심(水深) 깊은 잡담들이었다. 첫 집담회는 황영기 차병원그룹 부회장의 초청 형식으로 서울 청담동 '차움'에서 있었다. 심각한 대화와 가벼운 농담들이 교차했다. 자,수다 속으로 들어가 보자.
▼정규재 한국경제신문 논설실장=오늘은 황 부회장께서 이렇게 좋은 식당에 초대하셨는데 '차바이오'는 우리 삶이 직면한 건강 리스크를 잘 관리하고 계신지.▼황영기 위원(차병원그룹 부회장)=오늘 식단도 최고의 건강식이다. 적절한 염분,좋은 식재료들이다. 자, 건배! (그렇게 대화가 시작되었다)
▼정 실장=오래 사는 것도 요즘은 리스크 아닌가.
▼황 위원=우리 시대가 직면한 최대 리스크는 고령화겠지.역사적 전환기다. 지금의 사회비용,의료비,국민연금 체제가 지속가능한가? 애써 눈 감고 있다. 이게 진짜 리스크다. 거대한 변화가 진행 중인데.▼정 실장=사는 것이 위험인가,죽는 것이 위험인가.
▼복거일 위원(소설가)=오래사는 것도 위험이지.럼스펠드는 지식을 세 가지로 분류했다. 알고 있는 것을 아는 것(known knowns), 모른다는 것을 아는 것(known unknowns),모른다는 것을 모르는 것(unknown unknowns)으로.모른다는 것을 아는 것은 언제 닥칠지 모를 쓰나미에 대비해 방제시설을 갖추는 것과 같다. 모른다는 것을 모르는 것은 '블랙 스완'과 같은 상황이고.글로벌 금융위기를 초래한 파생상품은 'known unknowns'라는 가정에 의해 만들었지만 실제로는 'unknown unknowns'였다. 여기에 불안의 원천이 있다. 인간은 과학기술을 통해 리스크를 처리해왔지만 언제나 새로운 리스크가 생긴다. 대응책이 곧 새 리스크를 만들어내고 문명이 발전할수록 사고도 커진다. 100년 뒤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
▼정 실장=갑자기 어려워진다. 그런데 비행기가 떨어지면 전원 사망하지만 비행기 추락 확률로 따지면 다른 교통수단보다 안전하다. 지금은 원전이 큰 리스크이지만 화력발전소는 만성적 위험이라는 점에서 더 위험할 수도 있지 않나. ▼복 위원=그렇게 보나? 인류 최초의 전쟁은 100명 단위였을 것이다. 지금은 몇백만명의 군대가 싸운다. 리스크의 크기가 다르다.
▼구자균 위원(LS산전 부회장)=대학에서는 기대와 실제치의 차이가 리스크라고 가르쳤다. 미팅에서 킹카를 기대했는데 아니라면 이게 리스크다. (일동 웃음) 과거엔 리스크를 손실로 인식했다. 리스크 발생 확률보다 손실 규모가 관심이었다. 리스크의 전조는 수십 수백 가지다. 관리 가능성이 문제다.
▼이만우 위원(고려대 경영학과 교수)=하나금융은 정부가 외환은행을 인수하지 못하게 하면서 리스크에 직면했다. 1만4000원대에 인수하려는데 시장가격은 9000원대이고 금융위는 9000원 수준에서 맞추려고 한다. 사회에 손실이 나는 쪽으로 배당이 되는 것 같다. 경영자는 정규분포의 수익을 오른쪽으로 이동시키는 사람이다. 하지만 한두 건 나쁜 것이 평균수익을 저하시키고 이것으로 사후 책임을 묻는 게 현실이다. ▼구 위원=사람마다 리스크에 대한 판단이 다르다. 정보량의 차이가 리스크의 크기를 결정한다.
▼정 실장=어려운 얘기다. 법률가는 어떤 리스크에 직면하나.
▼문영호 위원(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법률가는 리스크 관리를 도와준다. 사회적으로 필요한 리스크의 수준이 있겠지.이 선을 넘는 것을 자제시키는 거다.
▼정 실장=검사의 리스크는 무엇인가. (문 위원은 검사 출신이다)
▼문 위원=검찰 수사도 엄청난 리스크를 안고 간다. 조각들을 모아 큰 그림을 추론하는 것이다. 흥미진진한 논리의 게임이지.당혹스런 결과가 나올 수도 있다. 검사는 용의자와 법정의 가운데 서 있는데 아무래도 법정보다는 용의자 쪽에 있는 리스크가 크다.
▼조주현 위원(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변동성을 리스크로 정의한다면 부동산 시장도 그렇다. 저출산 고령화로 주택이 남아돌고,그래서 부동산 장기침체를 예상하는 사람들이 많다. 일본이 그랬다는 거다. 그러나 새 집도 많이 지어지고 있다. 일본의 공가율은 무려 13%다. 우리나라는 5%인데 일부 지역은 7%다. 무모한 대규모 건설사업도 리스크다. 세종시는 1만5000명 일자리를 25만명으로 추정했다. 세계 최대 쇼핑센터는 두바이에 있는데 12만평이다. 그런데 서울 가든5는 40만평이다. 그림을 너무 크게 그린다. 일본의 쓰나미는 가우스 확률분포(정규분포)를 넘어섰다. 확률분포의 꼬리(tail) 부분이 리스크다. (조 위원은 부동산 정책의 정치화를 길게 우려했다)
▼김지수 위원(영남대 경영학과 교수)=나는 영화 딥임팩트와 같은 상황의 리스크를 연구한다. 위험의 크기가 가공할 만한 그런 리스크 말이다.
▼복 위원=미국은 오래 전부터 딥임팩트에 대응해 왔다. 스페이스 가드(Space Guard)라는 이름으로 예산도 배정했다. 유성이 해왕성 궤도에 진입하는 시점부터 지구에 떨어지기까지 궤적을 계산할 수 있을 정도다. 역시 과학이 해법을 준다.
▼정 실장=복 위원은 과학을 주제로 소설을 많이 쓰셨다. 이제 산업으로 들어가보자.
▼백수경 위원(인제대학원대 학장)=의료계는 정부정책이 가장 큰 리스크다. 이런 리스크는 확률이론으로도 설명이 안 된다. 설명이 안 되는 리스크에 대처하는 방법은 맷집밖에 없다. 변화와 혁신도 좋지만 정체성을 정립하는 것도 리스크를 줄이는 경쟁력이 될 수 있다. 역시 업(業)의 본질로 돌아가는 것이 리스크 관리의 기본이다.
▼이정동 위원(서울대 산업공학과 교수)=벤처와 기술개발 분야만큼 리스크가 큰 곳도 없다. 2008년 금융위기 당시 미국에선 20~30%이던 벤처캐피털 투자가 30~40%로 높아졌다. 우리나라는 30~40%에서 거꾸로 20~30%로 줄었다. 미국 대공황 직후 기업 탄생이 가장 많았다. 우리나라에선 실물(기술)과 금융 간 괴리가 더 벌어지는 듯한 느낌이 든다. 낙후된다는 두려움이 있다.
▼정 실장=기술 그 자체도 리스크가 크지 않나.
▼이정동 위원=삼성전자가 스마트폰이 나온 지 1년 반 만에 새 패러다임을 따라잡은 것은 기적이었다. 이런 패스트 팔로어(fast follower)는 세계 어디에도 없다. 하지만 이런 전략이 너무 잘 먹혀 계속 성공해온 것이 삼성전자의 진짜 리스크다. 프런티어로서 치고 나가는 데 오히려 걸림돌이 된다. 삼성전자 임원 중에는 앞으로 뭘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사람들이 많다. 삼성의 문제요 우리의 문제다.
▼황 위원=리스크를 회피하려면 코스트가 든다. 1% 확률의 피해보다 예방 코스트가 엄청나게 크다면 그냥 넘어가게 된다. 쓰나미를 막기 위해 15m 높이인 댐을 50m 높이로 쌓아야 하나 고민이다. 정주영 이병철 등 기업인은 리스크 테이커(taker)였다. 1990년대 초까지만 해도 실수가 용납되는 분위기였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리스크를 감수해 성공하면 "너 잘났다"는 식이고,실패하면 "자식,그럴 줄 알았다"는 식이다. 관료들은 정책결정을 회피하고 기업인들도 뒤탈을 겁낸다. 1인당 소득이 갓 2만달러를 넘겼는데 이미 5만~10만달러가 된 사회처럼 조로화 경향을 보인다.
▼정우진 위원(에너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에너지 문제는 리스크와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 2007년 원유가격이 배럴당 150달러를 돌파했을 당시엔 투기적 요인이 강했다. 지금은 원유가 공급과잉 상태인 데도 투기요인으로 올라온 것이다. 1970년대 이전엔 에너지에서 국제적 리스크가 없었다. 기술이 진보해 자연에너지와 신재생에너지 개발이 활발하다. 하지만 2050년이 돼도 화석연료를 대체할 기술을 기대하기 힘들다. 국제에너지기구는 2050년에도 화석연료 에너지가 80%를 차지할 것으로 추정한다. 참고하시라.
▼정 실장=석유고갈에 대한 과장된 우려가 있다.
▼정 위원=유가는 쏠림현상이 일어나면서 투기적인 거래가 2004년 이후 급격히 늘었다. 고유가가 지속된다면 오일샌드나 셰일가스 개발이 경제성을 갖는다. 배럴당 80~90달러가 기준이다. 그 이상이면 셰일가스가 무궁무진하다. 셰일가스 손익분기점은 더 내려갈 수도 있다. 독일 스웨덴에선 원전폐지론이 대두했지만 미국은 폐지론이 없다. 저개발국들도 원전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유가가 한 번 더 오르거나, 화석연료에 대한 규제가 강화될수록 대안은 원전이다.
▼구 위원=중국에서 보내온 최근 정보인데 중국이 신규 원전사업을 중단한다고 한다. 글쎄,신장의 화력발전으로 동부지역으로 보내기 위해 2000㎞의 전선을 깐다는 거다.
▼정 실장=그렇다면 얼른 LS산전 주식 사야겠다. (일동 폭소)
▼안재욱 위원(경희대 경제학과 교수)=투기가 나쁜 것만은 아니다. 세계는 리스크가 존재할 수밖에 없다. 리스크는 각자 인지 수준도 다르다. 2008년 위기를 불러온 파생금융상품은 리스크를 과소평가한 게 문제였다. 가우스 모형을 이용해 설계하면 확률분포의 꼬리 부분이 거의 없어진다. 꼬리 부분의 확률은 극단적인 케이스여서 잘 안 일어나지만 실제론 꼬리가 두꺼웠다는 얘기다. 대개는 정부 개입이 들어올 때 많이 발생하고 있다. 중앙은행 시스템은 정치적 영향력이 크고,시스템 리스크는 대개 돈의 양에서 비롯된다. 그런 면에서 지금의 화폐금융 제도는 문제가 많다.
▼강석훈 위원(성신여대 경제학과 교수)=경제발전 초기엔 정부가 기업의 리스크를 공유했다. 금융이 바통을 이어받았는데 제 역할을 못하고 있다. 결국 기업의 리스크는 인하우스로 귀결되면서 막대한 내부유보를 쌓는 결과를 낳았다. 그러니 투자도 부진하고 경제가 활력을 잃는다. 국가 경제도 그렇다. 만약 1997년,2008년과 유사한 사태가 재발할 경우 리스크는 어떻게 셰어링하나. 선물환을 약간 규제하고 있지만 수출이 정체되면 가계부채가 폭발하고 외국인 자금이 이탈하게 되면 어떻게 하나. 미국 중국이나 치앙마이이니셔티브(CMI) 중 어느 것일지가 숙제다. 아까 말한 저출산 고령화 문제는 이미 개인 차원을 넘어 사회적 리스크로 바뀌었다. 프랑스가 저출산 문제를 해소한 모범국가로 알려져 있는데 혼외출산 비율이 무려 51%다. (일동은 크게 놀라며 그 비율이 맞는지 되물었다)
▼이만우 위원=저축은행 리스크를 좀 더 이야기해보자.가계대출 연체율이 10%이고,프로젝트파이낸싱(PF)대출은 캠코에 넘긴 것에도 대손충당금을 9%만 쌓고 있다. 손실률이 얼마가 될지 모른다. 배드뱅크에서 장부가의 50%에 사주더라도 충당금 대비 자본잠식이 5배다. 게다가 저축은행은 일반 기업과 달리 자본잠식이 곧 영업정지로 이어진다. 오는 6월 말 결산에서 영업정지가 내려지면 회계사들은 감사의견 거절을 내게 된다. 뱅크런을 피하기 어렵다. 이것이 오는 7~8월의 시나리오다.
▼황 위원=금감원 출신의 퇴로를 차단한 것도 문제가 될 거다. 20~30년 금융회사만 들여다본 사람들을 금융회사에 못 가게 하면 갈 곳이 없다. 검사가 아주 세질 거다. 최근 검사를 받은 국민은행도 예전에는 웬만하면 넘어갈 것을 일일이 확인서 쓰게 했다고 한다. 패닉이 일어나고 있다.
▼이만우 위원=부산저축은행은 예금자가 오면 5000만원씩 쪼개서 5개 계열 저축은행에 분산 예치하는 방법으로 1인당 2억5000만원까지 받았다. 이름이 1,2 이렇게 돼 있는 저축은행들이 모두 그렇다. 금감원은 최근 인사에서 국제회계기준(IFRS) 담당 베테랑 회계사 2명을 저축은행 담당 부서로 보냈다. 기업들이 IFRS 문제를 질의해도 대답할 사람이 없다. (이 위원은 이 설명을 하면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기도 했다. 역시 당면 주제였기 때문이었다)
▼복 위원=해저드는 만물의 본질이다. 위험은 우리 삶의 내밀한 부분일 것이다. 그렇게 알고 살아야지….▼정 실장=독자들이 많은 힌트를 얻을 것으로 생각한다. 감사한다. (다음 모임은 삼겹살과 소주로 하기로 했다)
정리=오형규/오춘호 논설위원 oh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