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 규제 30년 '풍선효과'] 수도권정비ㆍ産集法에 '꽁꽁'…하이닉스 이천공장 증설 5년 걸려

● 수도권 역차별ㆍ지방 소외

신설 허용 업종 확대도 정치인들 반발에 연기
일본은 공장제한 등 수도권 규제 대부분 폐지

KCC는 2000년 경기 여주에 자동차용 판유리 생산공정 증설을 추진하다 난관에 부딪쳤다. 6만㎡ 이상 공장 '증설'을 제한하는 수도권정비계획법 때문이다. 공장 증설을 마냥 미룰 수 없었던 KCC는 결국 충남 연기군에 위치한 전의지방산업단지로 공장을 옮겼다. 사업장을 두 곳에 두는 바람에 물류비용으로만 연간 35억원이 추가로 들었다.

올해 초 KCC는 30만㎡가 넘는 공장부지 증설을 경기도에 다시 신청했지만 이번에도 같은 법에 가로막혔다. 해외 이전까지 검토했지만 경기도가 여주공장 '증설' 대신 안성공장 '신설'카드를 내밀어 극적인 타협이 이뤄졌다. KCC로선 현행법상 '신설'이 아니면 수도권 규제를 뚫기 힘들고,경기도는 '타지역에 일자리를 뺏길지 모른다'는 지역 여론이 절묘하게 맞아떨어진 것이다. ◆기업들,수도권 공장 짓고 싶지만…

기업들에 수도권 진입은 쉽지 않은 과제다. 이왕이면 인구와 자본,시장이 밀집해 있고 기존 공장과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는 수도권에 공장을 세우거나 늘리고 싶은 게 기업들의 입장이다.

하지만 각종 규제로 높아진 수도권 진입 문턱을 넘기는 힘들다. 김은경 경기개발연구원 수도권정책센터 연구위원은 "수도권은 수도권정비계획법,산업집적 활성화 및 공장 설립에 관한 법(산집법) 등 각종 규제에 묶여 '역차별'을 당하고 있다"며 "지역균형 발전 명분으로 수도권 개발을 규제하지만 여주 이천 포천 등 일부 지역은 영 · 호남보다 산업 육성이 더 필요한 곳"이라고 지적했다. 수도권 규제가 기업 활동의 장애물이 되는 사례는 기업들의 공장 신 · 증설 규제 법안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산집법이 대표적이다. 정부는 최근 수도권에 들어설 수 있는 첨단 업종 대상 품목을 156개에서 277개로 늘리기로 했다. 수도권 규제를 일부 완화한 조치였다. 예정대로라면 지난달 11일 관보에 게재돼 곧바로 시행돼야 했다.

하지만 지방에 지역구를 둔 국회의원들이 반발하면서 일이 꼬였다. 국회 기획재정위원장인 김성조 한나라당 의원 등 여야 의원 5명이 관보 게재 직전 기자회견을 열고 산집법 시행규칙 개정을 비판했다. 지식경제부는 관보 게재를 늦췄다.

이에 따라 경북 구미에 있는 LCD TV 생산라인을 내년에 경기 평택으로 옮기려던 LG전자는 '닭 쫓던 개' 처지가 됐다. 게다가 지역 국회의원들이 "지역 균형 발전에 저해된다"며 공장 이전에 이의를 제기하면서 정치권의 눈치마저 살펴야 하는 상황이다. LG전자는 2009년에도 구미 R&D센터를 수도권으로 옮기는 과정에서 비슷한 홍역을 치렀다. LG전자 관계자는 "지방에 본사나 공장이 있으면 아무래도 인력 유치가 힘든 게 사실"이라며 "그렇다고 수도권으로 옮기기도 어려워 이래저래 걱정"이라고 토로했다.

◆수도권 공장 늘리는 데만 5년

업계에선 수도권 규제의 최대 피해 기업 중 하나로 하이닉스를 꼽는다. 하이닉스가 경기 이천 공장 증설을 추진한 것은 2006년이다. 세계시장에서 경쟁 업체와 한판 승부를 벌이고 있던 터라 하이닉스 경영진은 신속한 인 · 허가를 기대했다. 하지만 정부는 '불가' 판정을 내렸다. 반도체 공장에서 나오는 폐수 때문에 환경 오염이 우려된다는 이유에서다. 결국 하이닉스는 자동차로 1시간가량 떨어진 충북 청주에 반도체 공장을 증설해야 했다. 한군데 모일수록 효율이 커지는 반도체 업종의 특성과 어긋나는 결정이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하이닉스 이천공장 증설이 허용된 것은 이로부터 5년이 지난 올해 1월이었다.

◆선진국은 수도권 규제 완화 중

한국과 달리 일본 프랑스 영국 등 선진국은 수도권 규제 완화에 적극적이다. 1970년대 인구 과밀,균형 발전 등을 이유로 수도권 규제를 강화했지만 이후 도시 경쟁력이 곧 국가 경쟁력이라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규제를 풀기 시작했다. 전문가들은 뉴욕 로스앤젤레스 파리 런던 도쿄 오사카 베이징 상하이 등 세계 주요 도시들은 이미 광역화돼 있다고 지적한다.

실제 일본은 2002년 '수도권 기성시가지의 공장 등 제한법'을 폐지했고 2006년에는 '공업재배치촉진법'을 없앴다. 영국은 1979년 '도크랜드' 등 런던 부심권 재개발을 확대하고 공장 및 사무실 개발 허가제를 철폐했다. 1990년대부터는 런던권 대규모 광역개발사업인 '템스강 하구개발프로젝트' 등 도시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런던 플랜'을 가동 중이다. 프랑스는 1982년 과밀부담금제를 없앤 데 이어 1985년 공장 및 사무실 신축허가제를 폐지했다.

박신영 기자 nyus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