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전관예우는 나라를 병들게 한다

경제발전 속 빈부격차 더 심해져…부조리 척결 위한 개혁 지속돼야
개정된 변호사법이 발효됐다. '전관예우 금지법'이란 별명대로 이 법이 얼마나 나라를 정화하는 데 기여할지 두고 볼 일이다. '고검장 퇴직 때 8억원 재산이 6년 뒤 57억원.' 며칠 전 신문 1면의 제목이다. 어느 전직 대법원장은 5년간 60억원을 벌었다고 실명이 거론되기도 했다.

법조계만도 아니다. 다른 고위 공직자들도 "20~30년 공직생활을 2~3년에 보상받는다"는 말이 있고,과학단체들도 전직 고관을 모셔야 예산을 챙길 수 있다는 것이다. 말썽 난 저축은행에는 전직 국회의원이 사외이사이고,군 개혁은 퇴직 장성들이 막고 있다고도 한다. 이 몹쓸 관행은 법에 대한 불신을 확실하게 키워준다. 그래서 수많은 한국인은 여전히 '유전무죄 무전유죄'를 노래한다. 재판의 공정성에 대한 설문 조사를 보면 '불공정'(67.2%)이 '공정'(25.3%)을 압도했고,83%가 전관예우의 '엄격한 금지'를 원했다. 그런데도 여전히 전직 고관들이 여러 법무법인(로펌)에 영입됐다고 어제자 신문은 그 명단까지 전한다.

경제발전으로 세상은 온통 '돈 판'(돈 조반니란 말이 아니라 돈이 판치는)이 되어버렸고,사람들은 더욱 더 돈에 영악해진다. 지속적 개혁 없이는 중산층은 줄어만 가고 빈부의 격차는 더욱 심화될 것이 뻔하다. 《논어》계씨(季氏)편에 '불환빈이환불균(不患貧而患不均 · 가난함을 근심하지 않고 고르지 않음을 근심함)'이란 말이 있다. 정말로 우리는 이제 가난을 걱정하기보다 오히려 불평등을 걱정해야 할 때를 맞았다. 더해만 가는 한국사회의 부조리를 방치한다면,앞으로 그 자체가 우리를 위협할 것이 분명하다.

생각해 보면 이는 우리만의 문제도 아니다. 마침 이달 초 유엔은 세계 인구 전망을 발표했다. 오는 10월 세계인구는 70억명을 넘고,2100년이면 101억명으로 늘어난다는 예측이다. 인구의 폭발적 증가로 인한 우울한 세계를 예언했던 토머스 맬서스(1766~1834)의 《인구론》(1798)이 나온 지 200여년 만에 세계인구는 8배 이상 늘어났다. 원래 학자들은 세계인구가 90억명 정도에서 증가를 멈출 것이라고 예상했지만,잘못이었다. 한국의 빈부 격차 문제는 국제적 과제이고,인구 증가와 함께 더욱 악화될 판이다.

선진국과 달리 개발도상국에서는 가난 속에 인구 폭발이 진행형이다. 나이지리아를 비롯한 아프리카 몇 나라와 필리핀 등의 인구는 지금 12억명에서 2100년 42억명으로 늘어날 전망이다.

그들에게는 이미 식량과 식수가 부족하다. 바로 그 때문에 이들의 인구폭발은 좀 억제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로 인한 비극적 상황을 잘사는 나라 사람들은 어떻게 눈뜨고 보고 있어야 할 것인가. 이미 우리는 북쪽 동포들의 굶주림을 지켜보기에도 힘이 드는데….세계인구가 60억명을 돌파한 것이 2000년인데 불과 10여년 만에 10억명이 늘고,다시 한 세기 뒤에는 40억명이 늘어난다니 이 인구폭탄이 무섭지 않은가. 하지만 한국 인구는 현재의 4800만명에서 2030년 최고점 5000만명을 찍고는 하향해 2100년에는 3700만명까지 줄어든다는 예측이다. 북한도 2040년(2600만명) 정점에 이르렀다 2100년에는 지금과 같은 수준(2400만명)으로 줄어들고.세계인구의 폭발 속에 우리는 인구 감소를 심각하게 걱정하게 됐다.

전관예우 따위 부조리를 척결해 '보다 살 만한 세상'을 만든다면,우리는 인구 감소를 걱정하지 않아도 될지 모르겠다. 그리고 우리가 그런 세상을 만드는 데 성공한다면,그것은 곧 세계를 이끄는 힘으로 작용할 수도 있지 않을까. 남을 보고 따라 배우기도 점점 쉬워지고 있으니 말이다. 다른 나라의 모범이 될 만큼 우리 사회의 부조리를 제거하는 개혁이 지속돼야 할 세계사적 이유가 여기에 있다.

박성래 < 한국외대 과학사 명예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