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갓진 마을 달리는 증기기관차…강바람에 '추억' 실려오네

곡성 섬진강변

줄배 타고 샛강 건너니 곡성 5일장 시골 인심 '푸근'
천문대·레일바이크도 있어요

낙동강 강변 마을에서 살았던 어린 시절.국화빵 먹는 맛에 어머니를 따라 재 너머 10리길을 걸어 장으로 가곤 했다. 도중엔 줄배를 타고 샛강을 건너야 했다. 강의 양쪽에 박아놓은 말뚝과 배를 줄로 연결해 줄을 잡아당기면서 건너가는 배였다.

그 줄배를 다시 만났다. 전남 곡성군 고달면 호곡리 섬진강에서다. 전라선의 옛 곡성역인 섬진강기차마을에서 출발하는 증기기관차가 통과하는 중간역이자 레일바이크역이 있는 침곡역에서 강 건너 호곡리로 질러가는 교통수단이 줄배다. 배가 강 건너에 있어도 줄을 잡아당기면 따라온다. 섬진강 유일의 이 줄배가 알려지면서 요즘에는 관광객들에게도 단골 체험코스가 됐다. 이 줄배를 필두로 곡성은 과거로의 시간여행을 재촉한다. 기차마을에서 침곡역을 지나 가정역까지 13.2㎞를 시속 25~30㎞ 느릿느릿 달리는 증기기관차는 한갓진 고장이던 곡성을 일약 유명 관광지로 만들었다. 전라선 복선화 공사로 곡성역이 옮겨가자 옛 역을 중심으로 기차마을을 조성하고 증기기관차를 도입한 게 2000년.그 덕에 지금은 연간 430만명 이상이 곡성을 찾고 있다. 침곡역~가정역 간 5.1㎞의 철로를 달리는 레일바이크,5일장인 기차마을전통시장,호곡나루터,심청이야기마을,가정역의 기차마을펜션,섬진강천문대 등도 곡성의 명소로 떠올랐다.

먼저 곡성 읍내에 있는 기차마을전통시장으로 간다. 마침 장날(3일,8일)이다. 장터엔 가장자리를 따라 78칸의 장옥(長屋)이 들어서 있고,가운데에는 장옥을 임대하지 못한 할머니들을 위한 장터가 마련돼 있다.

"할머니,좀 더 주세요. " 장터에 나온 아주머니들이 좌판에서 산나물을 파는 할머니에게 떼를 쓴다. 할머니는 "아주 못살겄네" 하면서도 한줌 가득 집어서 봉지에 넣어준다. 할머니 장터엔 직접 텃밭에서 길렀거나 채취한 취,쑥,두릅,미나리,고사리,풋마늘과 곡성의 특산물인 담배상추 등이 풍성하게 나와 있다. 직접 풀무질을 해서 농기구를 만드는 옛날식 대장간,"뻥" 소리와 함께 하얗게 부풀어 오른 쌀튀밥이 요술처럼 터져나오는 뻥튀기 가게,한 그릇에 3000원 하는 팥칼국수 등에서도 추억이 묻어난다. 전통시장 상인회장인 백태순 씨(68)는 "평일 장날이면 평균 3500여명이 방문하고 주말과 겹치는 장날엔 방문객이 50~60% 늘어나는데 절반 이상이 외지인"이라고 귀띔한다.

그 다음 코스는 섬진강기차마을.단체로 온 꼬마손님들이 와글와글하다. 기차마을 안에서 1.6㎞를 달리는 레일바이크(7000원)나 섬진강변을 달리는 레일바이크(2인승 1만5000원,4인승 2만2000원)도 인기다. 멀리서 기적소리와 함께 뽀얀 증기를 뿜으며 기차가 역으로 들어오자 아이들은 환호성을 지른다. 하지만 무늬만 증기기관차다. 실제로는 디젤엔진으로 달리면서 증기기관차 흉내를 내기 때문이다. 그래도 느릿느릿 섬진강변을 달리는 기분은 진짜다. 종착역인 가정역에는 기차를 리모델링한 기차캐빈과 목조 펜션이 그림처럼 서 있다.

가정역 앞에서 시멘트 다리인 두가세월교를 건너면 청소년야영장과 섬진강천문대, 가정녹색농촌체험마을로 갈 수 있다. 시멘트 다리 옆에 있던 168.3m의 두가현수교는 지난해 8월 집중호우로 교량 상부가 유실돼 재가설 공사가 한창이다. 가정역에서 멀지 않은 오곡면 송정리에는 심청이야기마을이 있다. 이 산골에 웬 심청 이야기인가 싶어 물어보니 사연이 있다. 그 옛날 섬진강엔 중국 남경상인들이 물줄기를 타고 올라와 철과 곡식에다 젊은 여자까지 데려갔다. 팔려간 딸 생각에 곡성(谷城)은 곡성(哭聲)이 돼버렸다.

곡성 오산면의 관음사 사적기에도 이와 비슷한 설화가 전해내려온다. 원량이라는 장님이 딸 원홍장과 살다가 홍장의 효심 덕분에 눈을 뜨게 됐다는 것이다. 이 이야기 덕분에 송정리에는 심청이야기마을이 생겼고,오산면에는 심청문화센터와 심청공원,효심공원까지 들어섰다. 이래저래 곡성은 추억을 더듬게 하는 고장이다.

서화동 기자 fireboy@hankyung.com■ 여행팁

산지가 70%를 넘는 곡성엔 섬진강 맑은 물과 깨끗한 공기로 길러낸 먹을거리가 넘쳐난다. 지난겨울을 강타한 구제역 파동도 곡성은 비껴갔다. 기차마을전통시장 뒤편에는 곡성축협이 직영하는 지리산 순한한우명품관(061-363-3392)이 성업 중이다. 구입한 한우 고기를 즉석에서 구워 먹을 수도 있다.

참게탕과 은어구이,은어튀김도 섬진강의 별미다. 별천지가든(061-362-8746)에선 무청 시래기를 넣어 끓인 참게탕이 시원하다. 은어튀김은 머리부터 꼬리까지 통째로 씹어 먹어도 될 만큼 부드럽고 바싹하다. '돌실나이'라는 길쌈으로 유명한 석곡(石谷ㆍ돌실)에 있는 돌실회관(061-363-1457)에선 직접 채취한 벌꿀로 양념장을 만들어 숯불에 구운 석쇠불고기가 일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