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지펀드가 몰려온다④] "나는 헤지펀드 투자자다"

"4년 전부터 전 세계 선물시장에 투자하는 헤지펀드를 직접 방문해 운용기법을 이해하려고 부단히 노력했어요. 그 결과 지난해 관련업계 최초로 헤지펀드에 투자하는 펀드 오브 헤지펀드(Fund of Hedge Fund)를 시장에 내놓을 수 있었죠. 올들어 판매속도에 불이 붙어 판매된 지 9개월 만에 약 1100억원이 모였습니다."

한국경제신문의 온라인뉴스미디어 <한경닷컴>이 25일 만난 김성하 미래에셋증권 전략기획본부 이사(40ㆍ사진)는 지난해 8월 글로벌 헤지펀드에 분산 투자하는 재간접 펀드인 '미래에셋증권 글로벌CTA펀드'를 내놨을 당시만 해도 시장의 관심이 썩 좋지는 않았다고 당시를 떠올렸다.일각에선 펀드의 최소가입금액이 5000만원(업계 평균 수준) 이상으로 높아 일반 직장인들을 상대로 판매하기에도 적당하지 않은 상품이라고 지적했었다. 물론 이 펀드는 일부 자산가들을 겨냥한 사모펀드이다. 그러나 '한국형 헤지펀드' 도입을 앞두고 금융업계가 분주해지자 발빠른 자산가들을 중심으로 '입소문'이 퍼지며 헤지펀드에 대한 '스터디 열풍'이 불고 있다는 전언이다.

◆'펀드 오브 헤지펀드'가 선물매매 전략을 선호하는 이유

미래에셋이 고안해 내 일부 자산가들을 모아 판매 중인 '글로벌CTA펀드'는 전 세계 선물시장을 상대로 투자하는 헤지펀드를 선별해 분산투자하는 대안상품이다. CTA(Commodity Trading Advisor)는 파생상품에 투자하는 글로벌 헤지펀드의 운용전략 중 하나인데 요즘은 '마음껏 선물시장을 주무른다'는 뜻을 지닌 'Managed Futures' 전략으로 더 많이 불린다. CTA는 본래 '이 전략을 취해 다른회사에 상품 선물 및 옵션의 매매에 조언을 해 준 운용회사'의 이름을 딴 것이다. 때문에 학계에선 CTA가 헤지펀드의 선물매매 전략을 통칭하는 용어로 적절치 않다고 입을 모으고 있는 상황이다.

미래에셋이 이렇게 선물매매 전략을 쓰는 헤지펀드만 골라 재간접 펀드를 만든 이유가 있다. 다른 헤지펀드에 비해 비교적 환매(돈을 찾는 것)할 수 있는 기회가 어렵지 않게 주어지기 때문이다. 헤지펀드는 단기적으로도 3~5년 정도 투자하는 것이 일반적이어서 분기별 또는 연말에 환매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 기업의 경영에 직접 참여해 기업가치를 높여 이득(배당)을 챙기는 PEF(사모투자전문회사)의 경우 최소 7년 이상 투자한다.

"선물매매 전략을 쓰는 헤지펀드의 경우 비교적 환매가 쉬운 편이죠. 미래에셋의 재간접 헤지펀드는 현재 1개월 마다 환매가 가능해요. 선물매매의 경우 매일 투자성과를 집계할 수 있기 때문이죠. 특히 위험자산으로 분류되고 있는 주식을 많이 보유 중인 자산가들은 선물을 매매하는 헤지펀드에 간접투자하면서 자산 포트폴리오의 안정성을 높일 수 있어 매력적이죠."◆"재간접 헤지펀드에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투명성'"

선물매매 운용전략을 쓰는 헤지펀드의 또 다른 특성이 있다. 투자자들에게 '투명성'을 보장한다는 점이다. 선물시장에서만 거래하는 운용전략이기 때문이다.

'엄밀히 말하면 선물매매 전략은 헤지펀드 운용전략이 아니다'라는 주장도 있다. 헤지펀드의 의미 그대로 헤지(Hedge)를 하지 않고, 주로 시장의 방향성에 의존하는 운용전략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선물매매 전략을 쓰는 헤지펀드 역시 다른 전략을 사용하는 헤지펀드와 같은 법적 구조, 투자권유 서류, 성과보수 등을 그대로 지니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한국형 헤지펀드' 도입 이후 돈 많은 자산가들을 제외한 일반투자자들의 경우 '펀드 오브 헤지펀드'의 방식으로 헤지펀드에 투자할 수 있을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금융위 관계자는 "헤지펀드 중에서 환매가 가장 쉬운 것이 선물매매를 운용전략으로 한 헤지펀드일 것"이라며 "소수가 아닌 비교적 다수를 대상으로 판매할 재간접 펀드의 경우 선물매매 운용전략을 쓰는 헤지펀드만 골라 담을 가능성이 높다"라고 판단했다.

"'Managed Futures' 전략은 200개 이상 글로벌 선물시장에 모두 투자하고 있습니다. 미래에셋은 3년 전부터 이미 국내 헤지펀드 시장의 발전 가능성을 높게 보고 영국, 네덜란드 등지에 있는 유명 헤지펀드를 찾아가 수년간 실제 수익률을 비교해보고, 매니저들의 투자 노하우까지 샅샅이 살펴본 뒤 보다 뛰어난 헤지펀드를 분류해왔습니다. 특히 2008년에 일어난 '메이도프 사태' 이후 전 세계적으로 가장 중요시 여기고 있는 '투명성'에 집중했죠. 일종의 시스템매매(컴퓨터 자동매매)로 움직이는 선물매매 운용전략은 사실 헤지펀드 업계 안에서 가장 투명한 헤지펀드에요."

'메이도프 사태'는 미국 역사상 최대 규모의 다단계 금융사기(폰지 사기)였다. 2008년 12월, 버나드 메이도프라는 유명한 헤지펀드 매니저가 당시 최고 수준의 투자수익률(40% 이상)을 내걸고, 투자자들을 끌어모은 뒤 기존 투자자들에게 먼저 돈을 나눠주는 수법의 '폰지 사기'를 벌여오다 금융당국에 적발당한 것이다. 이 사건 이후로 헤지펀드의 가장 중요한 자격요건 중 하나로 '운용의 투명성'이 떠올랐다.

◆안정적인 펀드 오브 헤지펀드의 조건 '헤지펀드 실사능력'

그렇다면 어떻게 좋은 헤지펀드를 구분해 안정적인 재간접 펀드를 만들 수 있을까. 미래에셋은 이를 위해 오랜 기간 동안 '헤지펀드 실사능력'을 높여왔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지속적인 헤지펀드 사내 교육을 통해 투자자 및 판매자로서 헤지펀드 관련 이해력을 키워온 것으로 나타났다.

"펀드 오브 헤지펀드 역시 사모펀드라서 은행PB(Private Banker, 자산관리사), 증권PB 등을 통해 투자자들을 모집하고 있어요. 불특정 다수를 상대로 공모해 투자자금을 모으는 게 아니기 때문에 자산가들의 돈을 끌어모으기 위해선 판매자들의 헤지펀드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정말 중요해요. 아직까지 기관투자가들의 참여비율은 상당히 낮다고 봐야 합니다. 특히 미래에셋의 재간접 헤지펀드는 2~3개 이상 선물매매 헤지펀드를 분산 투자하고 있어 위험자산이 아닌 안전자산이라는 성격을 늘 강조하고 있어요. 미래에셋의 '글로벌CTA펀드'는 작년 8월 첫 출시 이후 9월부터 올 3월까지 7개월간 약 7%의 누적수익률을 기록 중입니다."

'한국형 헤지펀드' 도입을 앞두고 정부, 금융업계, 학계 등이 올초부터 머리를 맞대고 개선안 마련에 한창이다. 이르면 오는 8~9월 이후 실제 헤지펀드의 설립이 가능해 질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이와 관련, 재간접 헤지펀드 관련 업계에서는 펀드투자자의 규제 사항인 '49인 이하의 일반 및 전문투자자'라는 기존의 빗장이 풀릴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증권사 펀드 오브 헤지펀드 판매자는 "49인 이하로 모집해야 한다는 현행 규제가 풀린다면 재간접 헤지펀드의 투자규모가 대형화될 수 있을 것"이라며 "49인 이하로 투자자들을 끌어모아야 해서 최소 펀드가입금액도 5000만원 이상으로 높은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49인 이상으로 투자자들을 모을 수 있다면 최소 가입금액이 지금보다 낮아져 일반투자자들도 투자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아질 것이란 얘기다.

◆여의도서 불붙은 '재간접 헤지펀드' 판매경쟁

상황이 이러한 가운데 일부 증권사와 자산운용사들간 펀드 오브 헤지펀드에 대한 국내 판매 경쟁도 본격화되고 있는 분위기다.

미래에셋증권의 글로벌 CTA펀드의 경우 운용규모가 약 1080억원(5월18일 기준)에 달해 규모면에서 업계 1위를 달리고 있으며, 윈튼(Winton)과 트렌스트랜드(Transtrend)의 헤지펀드를 주로 편입하고 있다. 윈튼 캐피탈 매니지먼트는 1997년 영국에서 설립된 대안투자 분야의 글로벌 독립 자산운용사로, 운용자산이 모두 185억달러(약 20조원)에 이른다

삼성증권은 선물매매 운용전략과 글로벌 매크로(Global Macro) 전략을 쓰는 헤지펀드 3곳에 분산 투자하는 '북극성 알파'라는 재간접 펀드를 판매 중이다. 최근에는 유럽에서 롱-숏 전략을 벌이는 헤지펀드를 포함시킨 '북극성알파 스페셜' 펀드도 내놨다.우리투자증권도 일찍부터 헤지펀드 국내 도입에 대비해온 곳이다. 우리투자증권은 2008년 자기자본 1억달러를 투자해 싱가포르에 별도법인인 '우리 앱솔루트 파트너스(Woori Absolute Partners)'를 세워 헤지펀드를 직접 운용해오고 있다. 또 '우리 프리미어 클래스' 등 재간접 헤지펀드 11개 상품을 판매 중이다.

한경닷컴 정현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