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황혼 결혼

해리(잭 니콜슨)는 나이에 아랑곳없이 젊은 여성만 사귀려 드는 60대 독신남이다. 20대인 마린과 오붓한 주말을 보내려 마린 엄마(에리카)의 별장에 놀러가지만 결정적 순간 심장 발작을 일으킨다. 마침 별장에 와 있던 에리카(다이앤 키튼)는 졸지에 그를 돌보게 된다.

둘은 서로 '주제를 모르는 마초''늙고 고집 센 이혼녀'라며 헐뜯지만 점차 같은 세대로서의 동질감을 느낀다. 자신의 감정을 알고도 '한 사람에게 정착할 수 없다'며 떠났던 해리는 상심한 에리카가 연하남 줄리안(키아누 리브스)의 사랑을 받아들이려는 순간 돌아온다. 할리우드의 2003년 작 '사랑할 때 버려야 할 아까운 것들'이 장년층의 밀고 당기는 연애를 다뤘다면,올봄 개봉된 우리 영화 '그대를 사랑합니다'는 노인들의 애틋하고 절절한 사랑을 그렸다. 메시지는 같다. 사랑은 연령과 무관하고 나이들수록 동반자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영화가 만들어지고 흥행에 성공하는 데엔 이유가 있을 터.장 · 노년층의 황혼 결혼이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는 소식이다. 지난해 50세 이상 남성의 결혼은 1만8791건으로 2000년 8928건의 2.1배에 이르고,전체 혼인 건수에서 차지하는 비중 역시 2000년 2.7%에서 5.8%로 증가했다는 것이다. 60세 이상도 같은 기간 2291건에서 4812건으로 급증했다.

이유는 다양하다. 황혼 이혼 증가도 그 중 하나다. 서울에선 지난해 20년 이상 함께 산 부부의 이혼이 결혼 4년 안에 헤어지는 신혼 이혼을 앞질렀다. 길어진 평균수명(남성 76세,여성 83세)과 핵가족화도 요인이다. 홀로 된 부모를 모실 자식이 없거나 있어도 꺼리다 보니 65세 이상 독거 노인만 100만명이 넘는다. 효자보다 악처가 낫고,남녀 노인 모두 연애만 해도 활력과 자신감을 되찾는다고 한다. 실제 지방자치단체 등에서 개최하는'노년 커플 찾기 행사'마다 성황을 이룬다는 마당이다. 그러나 인생의 마지막 반려자를 찾는 황혼결혼의 경우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고 한다.

급한 마음에 서두르면 후회하기 십상인 만큼 충분한 교감과 동지애적 사랑을 확인할 때까지 1~3년의 연애기간을 갖는 게 좋다는 것이다. 그런 다음 자식들의 동의를 구하고 모든 게 원만하게 합의됐는지 꼼꼼이 점검한 뒤 결심해야 한다는 얘기다. 결혼은 언제 해도 힘든 일인 모양이다.

박성희 수석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