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길진 칼럼] 수석(壽石)도 돌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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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필자가 돌을 좋아한다는 말에 한 지인이 한 일(一)자와 마음 심(心)자가 새겨있는 돌 두개를 선물했다. 자연이 그린 일심(一心)자였다. 참 좋은 돌이구나 싶어 한 수석 전문가에게 보여주자 ‘이거 진짜 비싼 돌입니다. 어떻게 구하셨습니까?’라고 물었다.
나는 돌을 준 지인을 다시 만나 미안한 마음에 왜 이렇게 비싼 돌을 내게 선물로 줬냐고 물었다. 그러자 그는 순진한 아이처럼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돌은 돌입니다. 돌을 돈으로 보면 그 순간부터 돌의 가치가 없어집니다.'라고 말하며 '허허허' 웃었다. 가치를 따지지 않고 그저 마음으로 돌을 보고, 마음이 통하는 돌이야말로 최고의 돌이다. 사물에 대해 가치를 부여하지 않고, 보이는 그대로 보는 사람은 아마 아이들뿐일 것이다. 때가 묻지 않았으니 아이들은 느끼는 그대로 본다. 하지만 생각이 많고, 가치를 따지고 의미를 부여하기를 좋아하는 어른은 본래의 모습과는 다른 것을 보게 된다. 보는 그대로 느끼는 그대로를 표현하는 마음, 그것이 아이의 순수한 마음이다. 수석도 금전적으로 바라보지 말고 아이의 마음으로 돌로 보아야 하는 것이다.
세상을 아이의 마음으로 산다면 한결 여유로울 것이다. 생각이 단순하고 자유로운 아이의 마음. 사람이 살면서 스트레스를 받는 가장 큰 이유는 아이의 마음을 잊고 살기 때문이다. 그러면 우리는 아이의 어떤 마음을 잊고 있는가.
아이는 나쁜 기억을 오래 간직하지 않는다.
아이들은 잘 싸운다. 아주 사소한 장난감 하나를 가지고도 다툰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언제 싸웠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함께 잘 뛰어 논다. 이처럼 아이들은 나쁜 기억을 오래 간직하지 않는다. 노인정에 가보면 삼삼오오 노인들이 모여 고스톱을 친다. 평소에는 거들떠보지 않는 10원짜리 심심풀이 고스톱이지만 그 10원 때문에 서로 싸운다. 남들이 보면 대단한 것 때문에 싸우는 줄 알 정도다. 그리고 싸운 후에는 누가 먼저 사과하거나 중간에서 화해를 시키기 전까지는 며칠 지나도 절대 말도 하지 않는다. 아이는 상황에 잘 적응한다.
아이들은 적응이 빠르다. 처음 유치원에 가더라도 친구를 빨리 사귄다. 같이 놀이를 하고 장난감도 같이 가지고 놀고. 친구가 몇 평에 사는 지 부모가 무슨 일을 하는지 상관없이 아이들에게는 그냥 놀이 친구일 뿐이다. 하지만 어른은 사람을 만날 때 알게 모르게 이해관계를 따진다. 적인지 아군인지, 나중에 힘이 되어 줄 수 있는 사람인지를 따진다. 그러다 아니다 싶으면 거리를 두게 된다.
아이는 감정표현이 솔직하다.
아이들은 좋고 나쁘다는 감정을 솔직하게 말한다. 생각을 하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상황에 관계없이 느끼는 그대로 감정을 표현한다. 하지만 어른은 이해관계에 얽혀있어 때로는 솔직하게 표현하기 어려울 때가 있다. 자신의 감정보다는 상황에 따라 자신의 의견을 말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이른바 처세라는 것을 하는 것이다. 그러나 아이에게는 처세란 없다.
아이는 웃음을 잃지 않는다.
아이들은 별거 아닌 일에도 잘 웃는다. 어른들의 눈과는 달리 아이들의 눈에는 세상이 모두 재미있게 보이는 모양이다. 그래서 웃는 아이를 보는 사람도 따라 웃게 만든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 점점 웃음이 사라진다. 사는 것이 힘들어서 그렇다고는 하지만 오히려 나이가 들수록 웃음이 더 필요하다는 사실을 모른다. 웃음이 행복을 주고 불노장생하게 만든다는 사실을.우리는 세상에서 배울 것은 이미 유치원에서 다 배웠다는 사실을 안다. 알면서도 그것을 실천하지 못할 뿐이다. 나이 들면서 점점 생각할 것이 많아지고, 또 그 생각에 눌려서 순수한 마음이 밖으로 나오지 못하는 것이다.
눈을 감아야 눈으로는 볼 수 없던 세상이 보인다. 밝아야 멀리 볼 수 있다고 하지만, 정작 어두워야 수십 광년 멀리 있는 별들이 보이는 것이다. 소리가 클수록 잘 들린다고 하지만, 정작 지구가 돌아가는 엄청난 소리는 듣지 못한다. 잠시라도 일심(一心)의 돌처럼 한 마음을 가져보라. (hooam.com/whoim.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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