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좋은 술

필자가 가장 많이 받는 질문 중에 하나가 "좋은 술이 무엇인가요?"라는 것이다. 등산 뒤 시원하게 한 잔 마시는 막걸리가 수백만 원짜리 와인보다 더 좋은 술일 수 있고,친한 친구와 마시는 약주 한 잔이 어려운 상대와 마시는 20년산 위스키 한 잔보다 좋은 술일 수 있다.

우리 술을 만드는 것을 업으로 하는 필자가 생각하는 좋은 술이란 맛과 향이 조화롭고, 비록 술이지만 조금이라도 덜 해롭고 기능적 효과가 있는 것이다. 다행히 우리 술은 예로부터 약식주동원(藥食酒同原)이라고 해서 약과 음식과 술은 같다고 했고,또 백약지장(百藥之長)이라고도 하여 모든 약 중에 술을 으뜸으로 쳤다. 우리 술이 기능적 측면에서 매우 우수하다는 것을 말해준다. 선조들은 우리에게 술 빚는 방법을 정확하게 남겨주지는 않았다. 수많은 시행착오와 경험을 선조들의 관점에서 정리한 술에 관한 고서들을 보니 우리 선조들의 술 빚는 방법은 한마디로 자연이 술을 빚게 만드는 것이었다. 정성스럽게 술 빚을 준비를 하고 자연 스스로 하는 발효를 보고 있다 저어주고 술이 다 되면 거두는 것이었다. 막걸리를 예로 들면 곰팡이와 효모를 통해 자연적인 발효 과정을 거치면서 다양한 발효산물들에 의해 특유의 향미를 가진 저알코올성 음료가 된다. 그런데 이렇게 생성된 알코올성 음료,막걸리는 자연이 빚은 선물을 가지고 있다. 미생물에 의한 생리활성물질(항균물질)을 함유하고 있는 것이다. 오늘날 과학의 발달로 막걸리가 발효시 생기는 대사산물의 실체가 규명되고,항암효과,소염효과, 비만억제 효과 등이 있는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 우리의 누룩과 막걸리에는 위와 같은 우수한 생리활성을 나타내는 여러 기능들이 있고,세계의 어떤 술과도 비교되지 않을 정도의 효능이 있다는 것이 증명되고 있다.

그럼 과학기술의 발달과 함께 과거의 선조들이 빚던 술이 현재의 술로 진화되어 오면서 모든 면에서 더 좋아지고 우수하다고 할 수 있을까? 물론 비위생적인 환경에서 경험적으로 빚어오던 술보다 위생적이고 현대화된 설비를 이용해 과학적이고 체계화된 시스템하에서 생산된 제품이 더 균일하고 신뢰가 가는 건 당연하겠지만,그렇다고 해서 현대 방식의 술이 모든 면에서 더 좋아졌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좋은 술이란 무조건적인 옛날 방식의 술도 아니고,지금처럼 대량생산 체제하에서 과학적 현대적이란 미명 아래 주정에 물을 섞어 취하기 위해서 마시는 단순화된 패스트푸드적 술도 아닐 것이다. 이제는 좋은 술에 대한 패러다임을 과감히 바꿔야 한다. 자연이 스스로 빚는 술을 제대로 이해하고 대자연의 복잡함과 다양성 앞에 겸손한 마음으로 자연 그대로의 순리를 재현해내는 과정이 진정한 과학화이고,이를 통해 빚어진 슬로푸드적 술이 좋은 술,우수한 술이 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배중호 < 국순당 사장 jungho@ksdb.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