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드 스토리] "당서기 친하면 뭐해…사장은 한명도 모르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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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재완 중화회 사장 "中사업 이렇게 성공했다"
'맨땅에 헤딩' 정신 필수
조선족에만 의존하지 말고, 한국인 사는곳 얼씬도 마라
아예 중국인이 돼라
관료·거래선 친해지기 위해, 설·추석은 10년째 중국서
생각의 틀을 바꿔라
中 공항직원에 공짜 옷 주고, 옷에 브랜드·전화번호 새겨
1986년 어느 날.한 부동산 디벨로퍼가 두툼한 보고서를 들고 대기업 계열 건설회사의 문을 두드렸다. 강남지역 아파트를 재개발해야 한다는 게 보고서의 요지였다. "멀쩡한 아파트를 왜 부숴?" 건설업체 간부의 반응은 차가웠다. "3.3㎡당 120만원짜리 땅을 깔고 앉은 아파트가 한 가구에 1600만원밖에 안 됩니다. 이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세요. 아파트를 헐고 고층 아파트를 지으면 부가가치가 10배로 뛸 겁니다. " 한국에 부동산 개발 열풍이 불기 시작된 순간이었다.
2009년 중국 베이징.서울 강남에 해당하는 왕징 지역에 173~203㎡(52~62평) 크기 대형 아파트인 왕징신청(望京新城)의 분양이 이뤄지고 있었다. 부동산 경기 악화로 분양 시장이 시들한 시점이었지만 왕징신청은 달랐다. 순식간에 1차 분양 물량 114가구가 동이 났다. 이 아파트의 비밀은 내부에 있었다. 삼성전자의 고급 가전제품이 기본으로 설치돼 있고 인테리어도 서울 강남의 주상복합빌딩 수준으로 고급스러웠던 것.인테리어 시공을 입주자가 직접 해야 하는 중국에서는 파격적인 시도였다.
◆중국으로 간 1세대 디벨로퍼
이 두 일화의 주인공은 중국 부동산의 대부로 통하는 양재완 주황부동산 사장(57)이다. 중화회(中華匯) 사장도 겸하고있는 그가 중국에서 벌인 4건의 부동산 개발 사업은 2조5000억원 규모에 달한다. 원래 그는 한국에서 패시픽부동산을 운영하며 1980~1990년대 서울 부동산시장을 이끈 1세대 디벨로퍼였다. 양 사장이 중국에 첫발을 디딘 것은 1996년이었다. 진로건설의 용역으로 다롄 지역 쇼핑몰 사업을 검토하러 갔다가 사업 시행자가 손을 빼는 바람에 얼떨결에 다롄개발구 빌라 사업을 시작하게 됐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순조롭던 중국 사업은 1997년 외환위기를 맞으면서 흔들리기 시작했다. 양 사장을 더욱 곤란하게 만들었던 것은 뜻도 모르고 서명했던 중국어 계약서였다. 양 사장은 "조선족 변호사가 필요하다고 들이밀었던 중국어 서류 몇 개를 내용도 잘 모르고 사인했다가 현지에 투자한 자산들을 고스란히 빼앗겼다"며 "비싼 수업료를 치른 셈"이라고 말했다.
다롄에서의 실패 후 양 사장은 중국인 사회에 직접 뛰어들었다. 우선 중국의 명절인 춘제(음력 설)와 중추제(추석)는 무조건 중국에서 보내기로 했다. 현지 관료나 거래선들과 친해지기 위한 결단이었다. "외국인이 선물을 한아름 싸들고 고향까지 따라오는 게 신기했나봐요. 고향을 오가면서 중국인들과 급격히 친해졌죠.명절을 중국에서 보낸다는 원칙은 작년까지 10년째 지키고 있습니다. "
◆3無 CEO의 성공비법
양 사장은 스스로를 3무(無) 최고경영자(CEO)라고 소개한다. 오랜 사업 경력에도 불구하고 운전,골프,인터넷 등을 못한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어떻게 결점들을 극복했느냐고 묻자 "남들과 다른 생각을 하기 위해 노력한 것이 효과를 봤다"며 중국 공항 마케팅 일화를 들려줬다. 중국 진출 초기였던 2002년.양 사장의 고민은 홍보였다. 주황부동산 브랜드를 저렴한 비용으로 알릴 방법을 고민하던 그는 베이징 서우두 공항을 찾아갔다. 양 사장은 공항 직원 420명의 옷을 공짜로 줄 테니 옷 구석에 회사 브랜드와 전화번호를 넣을 수 있게 해달라고 제안,'OK' 사인을 받아냈다. 양 사장이 걸어다니는 광고판 420개를 갖게 된 순간이었다.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중국인=상전' 마인드로 사업해야
양 사장은 중국에 진출한 한국인들 대부분이 스스로 중국에 대해 잘 알고 있으며 현지인들과의 '관시(關係 · 친분)'도 두텁다고 착각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당서기와 친하다고 자랑하는 한국 사업가들을 보면서 '저런 하수'라고 속으로 혀를 찬다"며 "실제로 사업에 도움이 되는 상장사 대표들과 아는 사람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다"고 말했다. "중국인을 상전으로 모셔야 한다"는 얘기도 나왔다.
중국에서 돈벌기를 원하는 20~30대에겐 한국인과 조선족을 멀리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양 사장은 "다롄에서 실패한 후 한국인이나 조선족과는 10원도 거래를 안 했다"고 강조했다.
이어 "성공하고 싶다면 당장 거주지부터 바꿔야 한다"며 "한국인이 많은 베이징 왕징이나 우다커우 대신 중국 부자들이 밀집한 차오양에 살아야 중국인들의 생각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양 사장은 중국에서 사업하는 우리 기업들에 대해서도 할 말이 많다. 양 사장은 "중국인들과 장기 체류 한인들은 '5년 갈 기업''10년 내 망할 회사' 등으로 이미 안 될 싹이 보이는 현지법인을 꼽고 있고 그 가운데 1,2,3 순위는 대부분 동의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망해가는 기업의 특징은 주재원들의 공무원 마인드"라며 "일부 주재원들의 자세는 개방 전 중국 공무원보다 더 경직돼 있다"고 덧붙였다.
송형석 기자 clic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