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은 문화 제국주의 해독제 역할 수행해야"

● 한국 찾은 佛 노벨상 수상작가 르 클레지오

황석영·이승우·한강·김애란 등
민족 특수성과 세계적 보편성 모두 살려내 우리 시대 증언
"개별 문학 작품은 특정 언어로 쓰여지기 때문에 각각의 국적을 갖게 되지만 결국 독자로 하여금 그것을 넘어 외부와 소통하고 보편적인 인간성을 이해하게 만들죠.문학은 진정한 '이종(異種) 결합의 장'입니다. "

2008년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프랑스 작가 장 마리 귀스타브 르 클레지오(61 · 사진)가 2년 만에 서울을 찾았다. 대산문화재단과 교보생명,서울문화재단이 주관하고 한국문화예술원회가 후원하는 제3회 '2011 서울국제문학포럼'에 참석하기 위해서다. 그는 '세계화 속의 삶과 글쓰기'라는 올해 주제에 맞춰 24일 기조강연에 나선다.

남성적이고 서구 중심적인 물질문명을 반성하고 지성과 시적 감수성 속에서 인간성을 발견해 온 그는 아프리카의 동쪽 인도양에 있는 섬 모리셔스 출신이다. 프랑스와 영국 식민지였던 이곳은 작은 독립 국가. 그는 힌두와 이슬람,기독교 문명이 뒤섞인 속에서 자랐다.

그는 "노예제도와 강제 노동의 잔혹함에 맞서온 외딴 섬 나라 사람들의 역사를 생각해보면 그들은 불가피한 상황에 이끌려 세계를 향해 문을 열어야 했다"며 "세계대전 당시 일본군이 탄 뗏목이 섬 근처에 있다는 소문이 모리셔스에 돌자 곧바로 그들을 상대하기 위해 일본어를 배우는 사람들도 있었다는 말을 고모로부터 자주 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전쟁과 제국주의 식민지배에 이어 오늘날 영화와 같은 대중문화와 이미지 중심의 미디어는 문명화라는 이름으로 단일문화주의를 퍼트려 왔다"며 "결국 문학이 전쟁의 폐해와 문화적 제국주의의 해독제 역할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문학은 정체성 상실과 획일화에 대응할 수 있어야죠.세계의 모든 국가를 경쟁력이나 군사력이 아니라 서로 다른 문화와의 상관성을 기준으로 순위를 매긴다면 최상위 그룹에는 다수 언어를 가르치고 토착 문화의 가치를 보호하는 볼리비아나 에콰도르,아프리카의 가나와 세네갈,유럽의 스웨덴과 노르웨이가 포함될 겁니다. 미국은 정반대죠."

그는 주로 미국 뉴멕시코주 알버커커에 거주하며 프랑스와 전 세계를 여행하고 있다. 한국도 여러 차례 방문했는데 2007년 가을학기부터 1년 동안 이화여대 통역번역대학원에서 강의하기도 했다. 그는 한국 문학에 대해 "일부 유럽 평론가들은 한국 문학이 매우 침울하고 폭력적이라고 느낄 수도 있지만 이것은 전쟁의 유산인 '한(恨)'을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라며 "황석영 이승우 한강 김애란 등의 소설은 지역적이고 민족적인 특수성과 세계적인 보편성을 모두 녹여내는 방식으로, 또 독특한 개성을 가지고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를 잘 증언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경제위기 이후 처음으로 한국을 찾았는데 한국의 경제와 분위기는 미국이나 프랑스보다 훨씬 긍정적이란 느낌을 받았다"며 "올 가을 프랑스에서 출간할 9편의 단편소설을 모은 소설집에 한국을 다룬 작품이 다수 포함된 이유"라고 덧붙였다.

영국 외과의사인 아버지와 프랑스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그는 1963년 소설 《조서》로 데뷔한 뒤 르노도상 등을 수상했다. 주요 작품으로 《사막》 《황금물고기》 《허기의 간주곡》 등이 있다.

문혜정 기자 selenm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