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인근 투자사·멘토 즐비…기술 있으면 누구나 창업

● 美 창업사관학교 스탠퍼드大 가보니…

CEO 멘토링·맞춤형 인턴십…실패까지 체험하게 투자 지원
실무 프로젝트 단위로 수업…기업평가·M&A 교육도 병행
지난 18일 미국 스탠퍼드대 NVIDIA오디토리움.40여명의 공대생들이 참석한 가운데 세미나가 열렸다. 매주 열리는 이 세미나는 실리콘밸리 소재 기업의 최고경영자(CEO)들이 참석해 자신의 창업 스토리와 회사 경영 방식 등을 설명하는 자리다. 이번 강의는 미국의 세계적 모바일 결제 업체 '블링 네이션'의 설립자 윈서스 캐사레스가 맡았다. 세미나가 끝나면 믹서(mixer)라는 이름의 가벼운 뒤풀이가 이어진다. 기업인과 대학생들은 서로 웃고 떠들며 밤 늦도록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대화가 이어지면서 학생들은 어느샌가 벤처에 대한 꿈에 젖어들게 되고 자연스럽게 기업가가 된 자신의 모습을 그리게 된다.

스탠퍼드대는 미국 내에서 창업이 가장 활발하게 이뤄지는 대학 중 한 곳이다. 공대 분야만 보면 단연 세계 최고의 창업열기를 자랑한다. 2008년 미국 경제잡지 포천의 조사에 따르면 도쿄대,하버드대에 이어 세계 500대 기업 CEO를 가장 많이 배출했다. HP와 야후,구글 등 글로벌 정보기술(IT) 업계의 스타 기업들이 이 대학의 연구실에서 잉태됐다. 지금도 연간 수백여곳의 기술 기업들을 배출하고 있는 스탠퍼드대의 기업가 정신(entrepreneurship) 프로그램은 어떤 비결을 갖고 있을까. 이 대학에서 기업가 정신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기관은 줄잡아 30여곳에 이른다. 이 중 가장 활발한 기관으로 꼽히고 있는 아시아태평양연구소의 로버트 에버하트 소장은 "우리는 학생들에게 기업가가 되라고 등을 떠밀거나 재촉하지 않는다"며 "다만 그들이 꿈을 꾸고 모험심을 가질 수 있게 한다"고 말했다. 강의는 철저히 실무 중심적이다. 실제 벤처기업을 창업해 성공한 스탠퍼드대 졸업생들이 강의를 맡아 △아이디어 창출 및 시장조사 △자금유치 △기술 적용 방식 등 실무 프로젝트 단위로 진행한다. 수업이 끝나면 혹독한 리뷰가 이어진다. 한국의 창업교육과 가장 다른 점은 기업가치 평가나 인수 · 합병(M&A) 관련 수업도 병행한다는 점이다. '일정 시점이 되면 기업을 매각한다'는 관점을 기초해 창업과 함께 투자회수 전략까지 같이 다루는 것이다. 에버하트 소장은 "기업을 창업하면 끝까지 책임져야 한다는 무거운 중압감을 덜어주는 의도가 있다"고 설명했다. 기업 인턴십도 제조 현장에서 근무하는 한국이나 다른 미국의 대학들과 차별화됐다. 인턴들은 100여명이 넘는 지원자 중 20~30명이 엄선된다. 이들은 실리콘밸리 유수의 IT기업에서 실제 직원들과 동등한 수준의 임금을 받고 근무하며,이사회에 참가하고 CEO,최고기술담당자(CTO) 등과 의사결정에 참여한다. 직원이 아닌 경영자로서 키워내는 것이다.

프로그램을 거친 학생들은 비교적 쉽게 투자를 유치해 다양한 분야에서 창업해 실패와 성공을 경험해볼 수 있다. 스탠퍼드대를 나오자마자 뻗어있는 샌드힐로(路)가 있기에 가능하다. 이곳엔 미국 최대 벤처캐피털 수십여곳이 줄지어 입주해 돈뭉치를 들고 스탠퍼드대 재학생들을 기다리고 있다. 학생들은 창업 기술과 프레젠테이션 자료만 갖고 이곳을 노크해 자금을 유치할 수 있다. 세계적인 네트워크도 스탠퍼드대 기업가 정신 프로그램의 강점 중 하나다. 스탠퍼드대 내에 30여개의 센터가 각각 창업 관련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전 세계 주요 기업,정부 등과 공동 연구,협업을 진행하고 있다.

팔로알토(샌프란시스코)=고경봉 기자 kg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