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가 만난 고향시장·군수] 맨손으로 키운 글로벌 플랜트회사…"3년내 2조 매출 해낼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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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의 메카 울산1982년 늦가을,울산시 성남동의 한 허름한 지하 창고에 '유영금속'이라는 조그마한 간판이 내걸렸다. 이곳에서 23세 청년이 소형 프레스를 설치, 볼트와 너트를 만들었다.
전정도 성진지오텍 회장의 성공 스토리
그가 바로 연매출 6000억원대를 바라보는 전정도 성진지오텍 회장이다. 전 회장은 설립 당시 5000만원의 매출도 넘기지 못했던 영세업체를 30여년 만에 세계적인 종합 에너지 플랜트 설비업체로 변신시켰다. 특히 해외시장 개척 10년 만에 수출액을 100만달러에서 3억달러로 무려 300배나 끌어올렸다. "사업을 하는 형님들의 영향을 받아 일찍부터 비즈니스가 가져다 주는 성취감에 매료됐습니다. 사업을 너무 하고 싶어 대학 진학도 포기할 정도였지요. "
전 회장은 1994년 선박의 선체 부분에 해당하는 블록생산을 계기로 초대형 설비사업에 뛰어들었다.
하지만 잘 나가던 그에게 위기가 닥쳤다. 1997년 외환위기 때 전체 매출의 40%를 차지하던 거래 대기업이 부도를 냈다. 실패를 죽기보다 싫어했던 그에겐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부도 위기에 내몰렸을 때 사원들이 적금을 깬 돈을 갖고 찾아와 "제발 회사를 일으켜 달라"며 눈물짓는 것을 보고 마음을 다시 잡았다. 이때부터 그는 부침이 많은 국내시장보다는 해외시장으로 눈을 돌렸다. 대규모 플랜트 설비를 성공적으로 완수한 2002년부터는 세계시장에서 기술력을 인정받았다. 같은 해 전남 광양 액화천연가스 복합 화력발전소에 들어가는 폐열회수 설비(HSRG)와 프랑스 시뎀사의 담수화 플랜트 사업을 성공적으로 완수했다. 2007년을 고비로 성진지오텍은 세계적인 기업으로 부상했다. 화학플랜트용 초대형 정유탑 분야에서 세계시장 점유율 1위(32%)를 달성했고 2억불 수출탑을 수상하는 겹경사를 맞았다.
전 회장은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오히려 불황기에 더 많은 자금을 투자하는 공격적인 경영스타일도 체득했다. 2004년 중국발 원자재값 폭등으로 자금 융통이 다소 어려웠지만 그는 역발상으로 울산 바다 인접지역에 대형 생산기지를 잇달아 조성했다. 지금까지 조성된 생산기지만 총 5개단지 50만㎡에 이른다.
하지만 위기는 또 한 번 찾아왔다. 2009년 환헤지 파생상품인 키코로 자본잠식상태까지 내몰렸다. 전 회장은 보유지분의 10%를 회사에 무상으로 증여, 사기가 바닥에 떨어진 임직원들은 물론 주주들로부터 신뢰를 얻으려 노력했지만 한계가 있었다. 그는 이 같은 위기가 오기 전만 해도 2010년 내에 매출 1조원 달성을 하겠다고 호언장담했었다. 결국 그는 '포스코의 회사 인수'라는 결단을 내렸다. 전 회장은 포스코의 인수를 계기로 경영사정이 크게 호전된 만큼 향후 3년간 성진지오텍을 매출 2조원 기업으로 탈바꿈시킨 후 회사를 떠나겠다는 각오를 다지고 있다. 전 회장은 1998년 100만불 수출탑 수상을 시작으로 2008년 3억불 수출탑,지난해 4억불 수출탑 수상까지 총 9회에 걸쳐 수출탑을 수상하며 11년 만에 400배 이상의 성장을 실현하는 공격적인 수출 전문 기업가로 명성을 날렸다.
성진지오텍은 올해 매출이 작년보다 70% 상승한 63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했다.
울산=하인식 기자 hai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