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김정일이 선택한 '고난의 행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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訪中은 심각한 北정권위기 반영북한의 최고 지도자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지난 20일 오전 열차편으로 중국 옌볜 조선족 자치주 투먼(圖們)에 도착해 중국방문 일정에 들어갔다.
혈맹관계 과시해 체제안정 목적
그의 이번 방중은 지난해 5월과 8월에 이은 것으로,1년 사이에 무려 세 차례나 이뤄졌다는 점에서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더구나 중국 내 그의 일정이 중국의 동북부를 종단하면서 2000㎞가 넘는 장거리를 중간에서 쉬지 않고 무려 사흘간 무숙박 강행군했다는 보도도 있다. 노령에다 2008년 8월 뇌졸중으로 쓰러진 그가 이렇게 중국 방문을 강행군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전체적으로 볼 때 그만큼 절박하다는 것을 드러낸다. 우선 김정일의 최대 고민은 날로 동요하는 북한주민들이다. 이들에게 북한체제의 안정감과 자신감을 심어주는 것이 무엇보다도 심각하고 중요한 과제이다. 아픈 노구를 이끌고 강행군을 해야 하는 그 절박함은 여기에서 나온 것이다.
사실 1998년 8월 북한이 전면적인 구호로 시작한 강성대국 건설의 목표는 시간표상으로 내년에 달성되게끔 잡혀 있다. 이를 위해 그동안 수백만명의 아사자가 속출하고 수십만명의 탈북자가 발생한 가운데에서도 장밋빛 구호로 이를 위장하고 북한 주민들을 달래왔던 것이다. 수차례 고난의 행군도 감행했지만 이제는 더 이상 북한주민들을 설득하고 동원할 수 있는 선전구호를 내세우기 어려운 상황이 됐다.
북한주민들에게 소위 팔자를 고치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매우 간단한 문제다. '이밥에 고깃국'을 먹는 것이다. 이것이 북한 주민들이 이해하는 현실적인 '강성대국'이다. 종결 시점은 다가오는데 선창 시점과 비교해서 별로 나아진 게 없다는 게 최대의 문제다. 북한체제의 동요가 왔던 1990년대 후반기에 통치 논리로 출발한 '강성대국론'이 이제 와서 부메랑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최근 탈북자들을 대상으로 한 북한정권의 내구력 평가 조사 결과는 2009년 말 화폐교환 조치를 계기로 정권 지지도가 현격히 떨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후계구도에 대한 내면적 지지도는 이미 위험수위이다. 북한주민 상당수가 남한사회를 동경하고 있고,남한으로 넘어간 탈북 가족이 보내주는 송금의 위력을 아는 북한주민은 이들을 부러워하는 세상이 됐다. 적어도 현재 북한주민이 인식하는 북한정권은 별 볼일 없다는 것이다.
현재 북한이 당면한 과제가 단순히 후계자 문제라든지 경제난이나 식량난 등 개별적인 사안이 아닌,복합위기 상황임을 누구보다도 잘 아는 김정일은 그 출구가 중국 카드밖에 없다고 인식하고 있는 듯하다. 안으로는 주민들로부터 정권의 안위가 위협받을 정도의 상황과 밖으로는 미국 및 남한의 압박에 맞서 북한 정권의 미래는 중국과의 튼튼한 관계 속에서만 지켜질 수 있다고 선전하는 길밖에 없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이번 방중은 단순히 조 · 중 경협 확대라든지,후계구도에 대한 선무차원이 아니라 정권의 사활을 걸고 새로운 권력이론을 창출해내야 하는 김정일의 절박감이 짙게 배어 있는 또하나의 고난의 행군인 셈이다. 혈맹으로 맺어진 중국과의 관계를 다시 한번 과시함으로써 김정일은 북한주민들로 하여금 북한체제가 신뢰할 수 있는 체제이며,그들이 추종하는 김정일 정권이 정당성이 있다는 점을 선전하고 싶은 것이다. 그러나 결과는 녹록지 않아 보인다. 왜냐하면 정권의 정당성이란 단순히 이념적 완결성이나 논리만으로 획득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 어떤 선전도 주민들의 삶을 영위케 하는 기초적 재화의 공급마저도 책임지지 못하는 정권의 무능성을 덮을 수는 없다. 그런 점에서 이번 김정일을 위시한 북한 지도부의 방중이 북한주민들의 삶과 생활개선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수 있을지 여부에는 회의적인 시각이 많다.
이조원 < 중앙대 교수·정치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