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너 몰린 스티브 발머…헤지펀드 거물 "MS 떠나라" 압박

아인혼 "CEO 존재 자체가 주가에 부담"
태블릿·SNS 등 잇단 실패…IT 시총 3위로 밀려
2000년부터 11년째 마이크로소프트(MS)를 이끌고 있는 스티브 발머 최고경영자(CEO)가 연일 굴욕을 당하고 있다. 지난 22일에는 시가총액에서 15년 만에 IBM에 추월당한 데 이어 25일에는 월스트리트의 스타 헤지펀드 매니저로부터 회사를 떠나야 한다는 이야기까지 들었다. 빌 게이츠의 후계자에 대한 시장의 냉혹한 평가가 시작된 셈이다.

◆시장으로부터 퇴진 요구받은 발머25일 로이터 등 외신에 따르면 데이비드 아인혼 그린라이트캐피털 회장은 이날 뉴욕에서 열린 '아이라 손 투자 콘퍼런스'에서 발머 CEO를 스포츠에는 영 재능이 없는 만화 캐릭터 '찰리 브라운'에 비유하며 "발머의 존재 자체가 MS 주가에 부담을 주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MS 이사회가 발머에게 '이제 당신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다 봤으니 다른 사람에게 기회를 주자'고 말해야 한다"며 발머의 퇴진을 종용했다. MS 주가는 이날 4센트 오른 24.19달러에 장을 마쳤지만 올해 들어서만 13% 하락했다.

아인혼 회장은 2008년 리먼브러더스 파산 4개월 전에 리먼브러더스 주가 하락에 베팅해 엄청난 수익을 올리면서 유명세를 탄 헤지펀드 매니저다. 아이라 손 투자 콘퍼런스는 그가 자신의 의견을 개진할 때 자주 활용하는 자리.그는 2008년 이 투자 콘퍼런스에서 리먼브러더스의 건전성을 경고하는 연설을 했고 4개월 후 리먼브러더스는 파산했다. 2006년 열린 같은 콘퍼런스에서는 MS 지분 매입 사실을 밝히며 투자자들에게 투자를 권유하기도 했다. 그린라이트는 MS 주식 900만주(0.11%)를 보유하고 있다.

◆MS 이사회,보너스 지급 미루기도아인혼 회장은 "발머 CEO의 가장 큰 문제는 과거에 사로잡혀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검색,모바일 소프트웨어,태플릿PC,소셜네트워킹 등 새롭게 등장한 대부분의 분야에서 경쟁자들에게 패하고 있다"는 것.그는 "발머가 이런 함정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엄청난 돈을 쏟아붓고 있는 것이 더 큰 문제"라고 주장했다. MS는 지난 10일 85억달러에 인터넷전화 회사인 스카이프를 인수한다고 밝힌 이후 최근 2주 동안 주가가 6% 하락했다.

빌 게이츠 MS 창업자와 하버드대 동문인 발머는 게이츠에 이은 MS의 2대 주주다. 지분 4%에 해당하는 333만주를 보유하고 있다. 그러나 그는 애플과 구글 등에 시장점유율을 빼앗기면서 다른 주주들로부터 압박을 받아왔다. 지난해에는 이사회가 발머의 보너스 지급을 보류하기도 했다.

◆MS 주가는 그래도 저평가그러나 아인혼은 MS 주가에 대해서는 여전히 신뢰를 보냈다. 그는 회사의 성과와 전망에 비해 주가가 너무 저평가돼 있다고 말했다. MS의 주가수익비율(PER)은 9.8배로 S&P500 평균에 비해 34%나 낮다. 블룸버그 분석에 따르면 1992년 이래 가장 저평가돼 있는 상태다.

MS는 1년 전 애플에 정보기술(IT) 업계 시가총액 1위 자리를 내준 데 이어 22일에는 IBM에도 추월당해 3위로 내려앉았다. 이날 종가 기준으로 MS의 시가총액은 2037억달러로 IBM의 2038억달러보다 낮았다. 로이터는 "MS가 예전처럼 다시 IT 시장을 지배할 수 있다는 신뢰를 투자자들에게 심어주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유창재 기자 yooco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