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세한 '한국판 배트맨'에 할리우드 반했죠"

영화 '프리스트' 원작자 형민우 작가
소니와 계약…한국 만화 최초 美서 영화화
미국 개봉 보름만에 3500만弗 거둬 들여

미국 LA에서 한국 만화를 수입하는 업체 도쿄팝의 스튜어트 레이빗 사장이 2003년 한국의 대원출판사를 찾아왔다. 형민우 작가(38)의 만화 '프리스트'를 수입하기 위해서다. '프리스트'는 미국 서부 사막을 배경으로 신부가 자신의 가족을 해친 악마들을 상대로 복수하는 이야기.1998년 첫 출간된 이후 국내 50만부를 비롯해 전 세계 33개국에서 100만부가 팔렸다.

그는 수입 계약을 체결하면서 콘텐츠가 좋다면 영화로도 만들 수 있다고 귀띔했다. '프리스트'는 곧 미국에서 출간됐지만 폭발적인 호응은 없었다. 하지만 마니아 층이 형성됐다. 그로부터 2년 뒤 형민우 작가가 미국으로 날아갔다. 도쿄팝의 주선으로 영화로 만들어지게 된 것이다. 그는 현지에서 할리우드 메이저 소니와 영화화 판권 계약을 체결했다. 한국 만화 최초로 할리우드 영화로 제작이 결정되는 순간이었다. 소니는 미국 영화의 편당 평균치인 7000만달러를 투입해 3D영화로 제작했다. 지난 13일 미국에서 개봉된 이 영화는 보름 만에 제작비의 절반을 회수했다. 한국에서는 내달 9일 개봉된다.

서울 사간동 한 카페에서 형씨를 만났다. 팔뚝에 문신을 한 채 1200㏄짜리 할리데이비슨 오토바이를 타고 나타난 그는 미국 팝문화를 즐기는 마니아였다.

"웨스턴 호러라는 '짬뽕' 장르지만 미국에서는 흔한 얘기예요. 다만 섬세함이 부족한 미국 만화에 비해 드라마틱한 한국식 정서를 심었죠.미국인 입장에서 보면 익숙한 음식에 외국 조미료를 가미한 셈이죠.그게 할리우드 영화로 만들어진 가장 큰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프리스트'는 미국 만화 계보에 비춰보면 대중적인 '코믹'이라기보다는 마니아 취향의 '그래픽노블'에 가깝다. 주인공은 '배트맨'처럼 어둡고 신비한 '다크 히어로'(어둠의 영웅) 계열이다.

"프리스트는 배트맨보다 더 어두운 캐릭터지요. 싸움을 해도 단순하게 치고받는 게 아니에요. 복잡한 관계를 바탕으로 한 심리적 동인이 있습니다. 개똥철학을 읊는 듯한 부분도 있고요. 종교적인 문제도 건드리지만 주인공은 선도 악도 아닙니다. 악도 신이 만든 피조물이란 입장이죠."

그는 이런 이야기를 수많은 영화와 게임에서 접했다. 아무나 쉽게 접할 수 없는 것을 찾아가는 괴짜 취향이 미국식 이야기를 만들게 된 뿌리인 것이다. "독자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받아들이도록 하려면 세련된 스타일로 포장해야 해요. 저는 영화 콘티처럼 만화 장면을 구성합니다. 가령 중요한 순간에 슬로모션을 넣거나 효과음으로만 진행하는 식이죠.그래픽노블에도 이처럼 일정한 형식 요건이 있습니다. "

그는 미국에서 영화로 각색하는 회의에 3~4차례 참가했다. 하지만 영화는 만화와 기본적으로 다른 장르여서 그들 마음대로 만들도록 했다.

"원작은 고전적인 서부시대를 배경으로 했지만 영화는 SF물처럼 트렌디해졌어요. 싸워야할 적들도 좀비나 악마에서 흡혈귀와 악의 추종세력으로 대체됐고요. 스피드는 빠르지 않지만 완급을 조절했고 하드보일드한 느낌을 강화했습니다. "그는 판권 가격에 대해서는 함구했다. 비밀유지 조항 때문이다. 그러나 33개국에 수출한 금액을 합친 것보다 많다고 했다.

"우리나라 관객들의 반응이 가장 겁납니다. 기준이 엄격하고 기대치가 너무 높거든요. 외국 영화처럼 그냥 넘어가주면 좋을텐데…."

유재혁 기자 yoo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