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웅 아들의 비참한 삶…"제 연기인생 바꿔놓은 작품"

연극 '나는 너다' 1인2역 송일국
"왜 주인공 준생(안중근의 둘째 아들)은 박수받으러 안 나와? 송일국만 나오고 그 배우는 어디 갔어?"

예술의전당 토월극장에서 다음달 6일까지 공연하는 연극 '나는 너다'의 마지막 커튼콜 순간 객석에서 이런 소리가 종종 들린다. 이 작품에서 배우 송일국(40 · 사진)은 안중근과 그의 아들 준생까지 1인2역을 맡아 관객들을 제대로 휘어잡는다. 안중근은 동양평화를 외친 영웅이지만 그 뒤에 가려진 준생은 친일파로 낙인찍힌 채 평생 괴로움 속에 살아간다. 모순된 이미지가 90분 내내 중첩되는 게 이 작품의 매력이다. 공연 전 분장실에서 송일국을 만났다. "다시 태어난 기분입니다. 제게는 드라마 '주몽'처럼 이 연극이 연기 인생을 뒤바꿔놓은 작품이니까요. 처음에는 연극 무대에 서 본 경험이 없으니 잘 해야 본전이라는 생각이 들었죠.발성법도 달라 부담이 컸고요. 하지만 지난해 초연 당시 리허설 때부터 한번도 빼놓지 않고 제 카메라로 녹화해 매일 밤 보고 분석했어요. 연출하신 윤석화 선배님도 배우 출신이라 연기 지도를 예리하게 해주셨죠.연극계 대모 박정자 선생님과 감정이 풍부한 배해선 씨가 없었다면 이 정도는 못해냈을 것 같아요. "

그는 유명한 스타지만 연극은 '나는 너다'가 처음.지난해 7월 안중근 서거 100주년 기념으로 국립극장 무대에 올렸고,올해 예술의전당 명품연극 시리즈로 기획됐다.

"영웅만 그려내는 작품이라면 안했을 거예요. 영웅의 삶에 가려진 가족들과 그의 아들이 겪는 괴로움,남겨진 사람들의 슬픔에 집중하기 때문에 더 의미있는 작품이죠."김좌진 장군의 후손인 그는 캐스팅에 얽힌 비화가 있다. 작품 기획 단계에서 안중근의 어머니 역할을 맡은 박정자 씨가 중국 현장탐방에 나섰다가 "한국 배우 송일국 씨는 매년 대학생들을 데리고 청산리대장정을 와서 잘 안다"는 현지 관계자의 말을 듣고 캐스팅했다.

스물여덟 살 때 MBC공채 탤런트로 연기를 시작한 그는 대학 때까지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하던 청년이었다. 지금도 카메라나 미술 도구를 손에서 놓지 않는다. "해외여행 가서는 테이블 웨어(식탁 장식용 도구들)를 가방에 가득 담아오곤 해요. 연기자 생활은 무대 미술을 배우고 싶어서 연극영화과에 간 게 계기가 됐죠."

김보라 기자 destinyb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