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값 등록금' 전문가 제언] "보편적 복지 대신 '장학금 활성화'…산업현장 맞춤인재 키워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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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 산업체에서 일할 지역일꾼 선별지원 필요
재직자 특별전형 지원 확대…'先취업 後진학' 정착시켜야
K씨(24 · 여)는 지난 3월 '전문계고교 졸업자 재직자 특별전형'을 통해 중앙대 지식경영학부에 입학했다. 낮에는 대기업 기획팀에서 일하고 밤에는 공부하는 '주경야독' 생활이지만 꿈을 키울 수 있어 행복하다. K씨는 "어떤 공부를 해야 할지 목표가 더 뚜렷해지고 미래 계획도 잡힌다"고 말했다.
같은 대학 2학년생인 P씨(35 · 여)는 마케팅 기획 · 관리 업무에서 전문성을 키우기 위해 지난해 늦깎이로 입학했다. 평일 야간(오후 7~10시)은 물론 토요일에도 수업을 받아 피곤하지만 만족해 한다. 그는 "대학에서 배운 지식과 직장생활에서 얻은 실무 경험을 바탕으로 지금 직장에서 성과를 높여 인정받고 싶다"고 말했다. 경북 구미에 있는 의료기기 업체의 P사장은 보름에 한번꼴로 대학교와 연구소를 찾아다닌다. 회사 소개서를 만들어 전달하고 선물 공세도 펼친다. 부족한 연구 · 기능 인력을 뽑기 위해서다. 중소기업중앙회의 최근 조사에 따르면 중소기업 전문직 인력 부족률은 40%를 웃돈다.
정치적 이슈가 돼 버린 '반값 등록금' 문제를 국가인재 양성 차원에서 풀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고등교육 예산과 장학금을 늘리되 국가와 기업에 필요한 인력을 길러내는 곳에 집중 투입,국가경쟁력을 높이는 쪽으로 방향을 틀어야 한다는 논리다. '보편적 복지' 방식보다는 '맞춤형 장학제도'로 논의의 생산성을 높여야 한다는 지적이다.
◆"무차별 복지로 접근하면 안돼"전국 4년제 대학 협의체인 한국대학교육협의회 김영길 회장(한동대 총장)은 지방 산업일꾼과 이공계 인력을 키우는 데 재원을 집중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는 "지방대를 나와 해당 지역에서 일할 예비 산업인력에게 장학금을 많이 줘야 한다"며 "기업에 필요한 이공계 인력을 키우는 데도 예산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기우 한국전문대학교육협의회장(재능대 총장)은 "정성을 들이면 효과가 바로 나타나는 특성화 전문대와 지방대에 투자하는 게 맞다"며 "대학의 3분의 1인 100개가량은 퇴출시키는 특단의 대책도 강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기문 중소기업중앙회장은 "지금 중요한 것은 무차별적으로 대학 문턱을 낮추는 것이 아니라 각 산업 현장에 필요로 하는 맞춤형 인재를 양성하는 것"이라며 "특성화 교육에 지원을 집중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울산대 총장을 지낸 김도연 국가과학기술위원장은 "국가적으로 필요한 이공계 인력을 양성하기 위해 지방 이공계 대학에 대한 지원을 늘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치권에서도 같은 의견을 가진 사람이 적지 않다. 김영환 의원(민주당)은 "반값 등록금 정책을 지방대생이나 국 · 공립대생에게 우선 적용해야 한다"며 "지방 근무를 희망하는 학생에게 인센티브를 주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설명했다. 같은 당 김춘진 의원은 "이공계 분야는 직업교육과 연계해 별도의 학비를 지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마이스터고 등 효과 큰 곳에 투자해야"강석훈 성신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정부의 정책 방향은 대학에 가지 않아도 기술을 가지면 먹고 살만하게 하자는 것"이라며 "마이스터고와 특성화고 등은 돈을 조금만 넣어도 효과가 클 것"이라고 말했다.
산업체에서 일하다 대학에 진학하는 재직자 특별전형도 같은 맥락에서 지원 대상으로 꼽힌다. 박재환 중앙대 안성캠퍼스 지식경영학부장은 "재직자 특별전형으로 입학한 학생 가운데 장학금을 받는 인원은 전체의 15%에 불과하다"며 "정부 지원을 늘리면 선(先)취업을 통해 경쟁력을 갖춘 뒤 진학하는 패러다임이 자리잡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황철주 주성엔지니어링 사장은 "일률적인 등록금 인하는 자칫 학생들의 경쟁력을 오히려 저해하고 실업자만 양산할 가능성마저 있다"며 "이공계 등 지원이 절실한 분야 등에 집중하는 것이 정책 효과를 낼 수 있다"고 말했다. 김주형 LG경제연구원장은 "적은 비용으로 최대의 효과를 내도록 지원 대상을 창의적으로 설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반값 등록금을 공짜 점심이나 무차별 복지로 이해하면 포퓰리즘으로 흐른다"고 덧붙였다. 이한구 의원(한나라당)은 "장학금 증액을 국가 예산으로 충당하기보다 대학이 스스로 등록금 인상을 억제하고 장학금을 늘릴 수 있는 토대를 만들어줘야 한다"며 세제 혜택과 대학 재단의 수익사업 규제 완화방안을 제시했다. 같은 당 김선동 의원은 "우수 지방대를 지원해 경쟁력을 높이면 지방 균형발전에도 도움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이건호/구동회/서보미/허란 기자 leek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