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과장 & 李대리] 직장인 자화상 '책상', 책상만 보면 직급ㆍ성별ㆍ부서가 딱!

영업맨 책상엔 페브리즈·컨디션
여직원 자리엔 스타벅스 텀블러가…

부장 자리엔 꼭 있다
손톱깎이·안마기·계산기…상무 몰래 치는 7번 아이언도

거울이 있는 까닭은…
불시에 들이닥치는 상사 감지…주식거래·메신저 할 때 필수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책상이 나온 사진이 화제가 된 적이 있었다. 그의 책상 위엔 서류 몇 장과 전화기 한 대만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성공하려면 그처럼 주변 정리를 깨끗하게 해야만 하는 걸까?물론 반대의 경우도 적지 않다. 천재 과학자 앨버트 아인슈타인,미국 언론인이자 작가로 보수주의의 정신적 지주였던 윌리엄 버클리 등의 책상은 물건을 둘 곳이 없을 정도로 지저분했다.

직장인들이 매일 하루를 시작하고 마감하는 곳은 다름 아닌 책상 앞이다. 책상은 김과장이대리들의 직장 내 위치뿐 아니라 감정 상태,취향까지 보여주는 '자화상'이다. ◆책상을 보면 성별 · 직급이 보인다

젊은 여성 직장인의 책상엔 팬시도구와 화장품이 즐비하다. 피부를 촉촉하게 해줄 미니 가습기와 미스트(스프레이형 보습제),핸드크림 매니큐어 향수는 바구니에 정갈하게 담겨 있다. 바다의 요정 사이렌 로고가 선명한 '스타벅스' 텀블러,날개 달린 볼펜도 필수품이다. 팬시용품은 텐바이텐,펀샵,1300K 등 온라인몰에서 구입한다.

남자들의 책상엔 태블릿PC,무선 아이폰 충전기,스피커 내장형 노트북 받침대 등 정보기술(IT) 기기가 등장한다. 영업직이라면 탈취제 '페브리즈'와 숙취 해소 음료 '컨디션'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직급별 '머스트 해브' 품목들도 있다. 말단 사원급의 책상엔 야근 때 주문을 위한 분식집과 중국집의 메뉴판을 빼놓을 수 없다. 대리급이 되면 목베개와 담요,이쑤시개 등 회사에 '서식'하기 위한 물품들이 등장한다. 과장급 책상엔 스타벅스 텀블러 대신 자판기 커피가 비타민,간장약과 함께 놓인다. 부장급 책상엔 손톱깎이와 안마기,계산기가 대부분 있다. 상무 몰래 휘두를 7번 아이언과 행운의 2달러는 옵션이다.

◆책상을 보면 고과 등급을 알 수 있다?

일을 잘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주변이 깔끔하다. 매일 할 일을 수첩이나 메모지에 표시하고 중요도에 따라 검정 빨강 파랑 등으로 구분한다. 컴퓨터 폴더도 잘 정리해 필요할 때 바로 꺼내볼 수 있도록 한다.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이라고 책상에 가족 사진도 떡 하니 붙여놓는다. 꼼꼼하지 못해 일 마무리가 허술한 사람은 책상도 대체로 지저분하다. 메신저는 항상 2개 이상 켜져 있다. 메모는 일단 눈에 보이는 종이에 닥치는 대로 하고 책상을 치우면서 메모도 같이 버린다. 모니터 앞에는 '아자아자!''금연''폭풍 다이어트' 등 업무와 관련없는 내용만 보인다.

◆간만에 청소했더니… "사표쓰게?"

책상이 너무 깨끗해도 문제다. 경력사원들의 이동이 잦은 한 중견기업에 다니는 김모 과장의 책상은 늘상 너저분하다. 본의 아니게 남의 공간을 침범하기는 예사고,때로는 자신의 물건을 찾지 못해 옆자리 이 대리의 물건도 내 것처럼 쓴다. 어느 날 김 과장은 큰 맘 먹고 책상을 정리했다. 널려 있던 5년치 달력을 치우고 나뒹굴던 이쑤시개와 종이컵,'맥심'(남성잡지)도 버렸다. 이제 남은 것은 컴퓨터,전화기,2011년 달력,휴지,펜 몇자루,서류가 전부였다. 10년 묵은 체증이 내려간 것처럼 속시원함을 느끼고 있던 때,팀장의 태클이 들어왔다. "김 과장 금방 딴 데로 가나?사표 쓰게?어째 단기 파견직보다도 책상에 물건이 없나?"◆십자가 보며 '후아'…평정심을 찾자

회사 생활을 하다보면 '욱'하는 마음이 들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김과장 이대리들은 '평정심'을 찾기 위한 품목들도 나름대로 하나씩 갖고 있다. 유통업체에 다니는 박 모 과장은 책상에 나무 십자가를 세워뒀다. 그는 "상사한테 깨지고 자리에 돌아온 뒤 십자가를 보며 '주여…'를 되뇌이면 안정이 찾아온다"고 한다.

항공업체 직원 정모 대리는 굿네이버스를 통해 후원하는 13세 방글라데시 소년의 사진을 붙였다. 때려치우고 싶을 땐 사진을 보며 내 처지를 감사하게 여기고,간혹 소년에게 편지라도 오면 착한 사람이 된 것 같아 보람을 느낀다.

전자업체에 다니는 골드미스 임모 과장은 레고 피규어(관절이 움직이는 인형)를 사는 데 한 달에 100만원 안팎을 지불한다. 그의 옆 자리에 앉은 성모 과장은 건담 프라모델을 수집한다. 남들은 그 둘을 보며 "쓸데 없는 데 돈 버린다"고 하지만,그들은 사무실 책상에 꼼꼼히 놓인 수집품들에서 삶의 위안을 얻는다.

◆뒤통수엔 눈이 없으니 거울을 단다

회사에 CCTV가 있다면,김과장 이대리들에겐 거울이 있다. 상사의 움직임이 거울에 포착되면 재빨리 Alt와 Tab을 동시에 눌러 직전에 작업 중이던 화면으로 돌아가야 한다. 소재업체의 사보 담당인 이모 과장은 자동차 사이드미러를 책상에 두고 있다. 사보에 실을 자료들을 찾다보면 뜻하지 않게 선정적인 영상들도 클릭하게 되는데,얼마 전 상사와 여직원들이 이를 보고 눈에 핏대를 세웠기 때문.그는 고심 끝에 사이즈도 크고 남자 책상에도 어울리는 사이드미러를 놓았다. 그는 "업무 중에 주식거래나 메신저를 할 때도 꽤 효과적"이라고 전했다.

강유현/윤성민/고경봉 기자 yhkang@hankyung.com



화제뉴스 1
"청와대 경호원 되려면
이정도는 돼야죠"


화제뉴스 2
천만원으로 사업시작
"월 300만원 벌어"


화제뉴스 3
여직원들
속옷만 입고 근무 왜?


화제뉴스 4
"과장 때가 좋았어"
터놓고 말할 동료없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