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南, 돈봉투까지 꺼내"…정부 "황당하다"

● 北 "남한 정부, 세 차례 정상회담 제안"

"5월 베이징 비밀 접촉" 이례적 폭로
정부 "천안함·연평도 사과 요구한 자리"

북한이 1일 남측 고위 당국자 이름까지 거론하는 등 외교적 관례를 깨고 남북 정상회담을 위한 접촉사실을 공개했다. '돈봉투' 등 민감한 문제도 꺼냈다. 이에 천해성 통일부 대변인은 "진의를 왜곡한 일방적 주장으로 일일이 대응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며 강한 유감을 표시했다. 이에 따라 남북 관계는 더욱 경색 국면을 맞게 됐다.

정부는 다만 중국 베이징에서 남북이 접촉했다는 사실은 인정했다. 그동안 우리 정부가 북한에 천안함 연평도 도발 사과와 비핵화에 대한 진정성을 요구해왔다는 점에서 비밀 접촉은 상당한 파장을 낳을 것으로 예상된다. 당장 이용섭 민주당 대변인은 "대북 강경정책을 고수하면서 뒤로는 정상회담을 애걸하는 우리 정부의 이중적 자세는 국민을 속이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누구 말이 맞나

북한이 비밀 접촉 내용을 세세하게 공개함으로써 남북 관계는 '루비콘 강'을 건넜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연초부터 대화공세를 펴온 북한이 전략적 틀을 바꿔 강경모드로 전환하겠다는 뜻이 담겼다는 것이다. 비밀접촉 공개는 대북정책을 둘러싼 남측 내부의 갈등 유발을 염두에 둔 것으로도 보인다.

북한이 공개한 것을 보면 남북 관계를 파국으로 몰아넣을 수 있을 정도의 내용이 적지 않다. 우선 "남측에서 '정상회담 개최를 빨리 추진시키자'고 하면서 돈봉투까지 거리낌없이 내놓고 그 누구를 유혹하려고 꾀하다 망신을 당했다"고 했다. 이에 우리 정부 관계자는 "말도 안 된다"며 적극 부인했다. 북한은 남북정상회담을 위한 접촉이라고 분명히 했지만,청와대 관계자는 "남북 간 핵심 현안인 천안함과 연평도 문제에 대한 우리의 입장을 전달하기 위한 자리였다"고 반박했다. 정상회담 성사를 위한 만남이라기보다 천안함과 연평도 도발에 대한 북한의 시인과 사과가 있어야 남북관계가 발전할 수 있다는 점을 전달하기 위한 자리였다는 게 정부의 주장이다. 남북 경색 국면을 타개하기 위해 우리 측이 만남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이 "남측이 '북측에서 볼 때는 사과가 아니고 남측에서 볼 때는 사과처럼 보이는 절충안'이라도 만들어 세상에 내놓자고 하면서 '제발 좀 양보해 달라'고 애걸했다"고 한 데 대해 정부 관계자는 "황당하다"며 부인했다.

세 차례 정상회담을 열자고 제한했다는 데 대해선 "구체적으로 그렇게 하지 않았다"는 게 우리 정부의 반응이다. 지난달 9일 베이징 비밀접촉에 나선 남측 인사는 김태효 청와대 대외전략비서관,김천식 통일부 정책실장,홍창화 국가정보원 국장 등이라고 북한이 공개했다. 접촉장소로 독일 베를린과 동남아도 거론된다. ◆이 대통령,정상회담 하고 싶지만…

청와대는 일절 공식 반응을 내놓지 않았다. 북한의 일방적인 주장에 정색하고 대응할 경우 오히려 북한의 전술 의도에 말려들 수 있다는 판단이 작용했다고 한 관계자는 전했다.

청와대는 그동안 물밑에서 추진해 온 남북 정상회담이 완전히 물 건너가는 게 아니냐는 우려 섞인 반응도 보였다. 이명박 대통령은 그동안 천안함 연평도 도발에 대한 북한의 사과를 대화의 전제로 내세웠지만 정상회담에 대한 의욕은 강했다. 임기 내에 답보상태를 보여온 남북 관계에 획기적인 진전을 봐야 한다는 압박감으로 '마지막 승부수'를 던졌다는 관측도 있으나 힘들게 됐다는 게 대체적 분석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이 대통령은 남은 임기 동안 가장 중요한 과제로 경제와 남북관계의 안정을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홍영식/김정은 기자 ysho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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