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겁고 슬픈 소설 '서울 1964…', 재미있는 연극으로 되살렸죠"
입력
수정
소설가 김승옥·연출가 전진모 씨 필담
"현대인의 감성은 1960년대나 지금이나 똑같지 않을까. 외롭고 소외된 개인…."(소설가 김승옥 씨 · 70)
'무진기행'의 작가 김씨의 또 다른 대표작 '서울 1964년 겨울'이 처음으로 연극무대에 오른다. 그것도 신인 연출가 전진모 씨(30)에 의해서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전문사(석사) 과정에 재학 중인 전씨는 2명의 젊은 연출가와 함께 한국,일본,미국의 단편 소설을 무대화하는 '단편소설 극장전'을 기획했다.
극단 '제12언어 연극스튜디오'와 함께 8~12일 서울 홍익대 인근의 산울림소극장에서 김씨의 작품을 공연한다.
원작자인 김씨와 서울 효자동의 한 카페에서 함께 만난 전씨는 "지난 겨울 교내에서 올린 연극을 보고 대관이 까다로운 산울림 측에서 먼저 연락을 해왔다"고 말했다. "많은 사람들이 소설 '서울 1964년 겨울'을 무겁고 슬픈 느낌으로 읽었다고 해요. 그런데 연극은 담백하고 재미있어 절반의 목표는 이뤘다 싶었죠.과연 우리가 타인과 제대로 소통하고 있는지,무엇을 소유하고 있는지 등의 헛헛한 감성을 소설 그대로 전달하고 싶었습니다. "
소설 속 인물의 말은 그대로 연극 대사가 됐다. 서술 부분도 배우들의 방백이나 독백으로 치환됐다.
소설을 읽었던 독자들의 체험이 고스란히 연극으로 이어지도록 하기 위해서다. 예매 관객들은 신인 연출가의 '이름값' 대신 '원작의 감동' 때문에 이 공연을 택했다고 했다. '1964년 겨울을 서울에서 지낸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겠지만…'으로 시작되는 소설은 김씨가 1965년 발표한 단편이다.
눈이 내리는 겨울밤,부잣집 대학원생인 '안'과 구청 병사계에서 일하는 '나',급성 뇌막염으로 죽은 아내의 시체를 4000원에 팔아버린 30대 중반의 서적외판원이 포장마차에서 우연히 만난다. 스물다섯 살 동갑내기인 안과 나는 시시껄렁한 말장난을 주고받다 사내의 요청에 따라 중국식당과 화재 현장을 함께 다니게 되고 결국 같은 여관에 투숙하게 된다. 이튿날 사내가 자살한 것을 발견하고 도망치듯 여관을 빠져나온다.
작가는 세 남자가 화재를 구경하는 장면에 대해 "불은 이들 각자에게 '사랑'과 '가난''분노''자본주의'를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2003년 뇌졸중으로 쓰러진 뒤 투병 중인 김씨는 이날 필담(筆談)을 통해 전씨와 소통했다. 전씨가 "소설이 안톤 체호프의 작품을 연상시킨다"고 말하자 김씨는 "슬픔을 드러내는 '비(悲)'가 아니라 우스꽝스러운 '희(喜)'에 가까운 점이 비슷하다"고 응수했다.
전씨가 "연극이라는 소통 방식은 배우와 관객의 약속인데 그 거리를 임의적으로 조절할 수 있다는 게 매력적"이라며 "소설을 좋아했던 독자들을 실망시키지 않겠다"고 하자 김씨는 "소설에 비해 극 형식은 내용과 감정의 굴곡이 심해 전혀 다른 재미일 것"이라고 화답했다.
문혜정 기자 selenm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