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과장 & 李대리] 사내연애는 '자전거래' 결혼은 '상장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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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만의 '공장용어'
철강회사 김대리는 '불순물' 이라며?
리스크 프리 애셋?
공무원 사귀면 '무위험 자산'…오래된 커플엔 "잔금은 언제?"
일본어 '지고' 영어 '뜨고'
'간지 난다' 대신 '에지 있게'…스마트폰·SNS·드라마 영향
"리서치팀 김 과장과 법인영업팀 현 대리가 '자전거래'한다는 소문이 있던데?"
"김 과장은 이미 '상폐' 아니었어?""무슨 소리야.요즘 연애시장에서 얼마나 잘나가는데….현 대리가 '메사키'있게 잘 잡은 거지."
김 과장,이 대리들은 직장에 오면 '딴 나라' 말을 쓴다. 가족들과는 표준어에 맞는 대화를 나누다 직장 동료들과의 대화에서는 그들만의 '공장용어(업계에서 쓰이는 은어 · 속어 · 전문용어)'들이 표준어를 대신한다. '자전거래'는 원래 증권사의 매수 · 매도 동시주문을 뜻하는 용어지만,그들 사이의 대화에서는 '사내 연애'를 뜻한다. '상폐(상장폐지)'는 '품절',즉 처녀 총각들 사이에서는 결혼으로 통한다. 일본어로 '눈앞'을 뜻하는 '메사키(めさき)'가 증권가에서는 통찰력과 판단력을 의미하는 은어로 쓰인다. 대부분의 직종에는 그들만의 공장용어가 있다. 공장용어는 서로 간의 문화적 정체성을 확인하는 암호 역할을 한다. 김 과장,이 대리들은 이 역설의 표현들을 통해 스트레스도 풀고,상대방의 '내공'도 가늠한다.
◆'생큐'와 'ㅅㅂ'도 종이 한 장 차이최근 A사 총무팀 주 과장은 평소 절친한 해외영업팀 박 대리에게 수출 견적서 신규 양식을 보내줬다가 메신저로 'TQ'라는 답신을 받았다. TQ의 뜻이 궁금해 인터넷을 한참 뒤지다보니 'ㅅㅂ'의 영어 자판으로,욕을 나타낸다는 풀이가 눈에 들어왔다. 발끈한 주 과장은 "친할수록 직장 선후배 사이에 예의는 지켜야 한다"며 박 대리를 꾸짖다가 그의 답변을 듣고는 얼굴이 붉어졌다. "과장님,생큐(ThanQ)라는 의미였는데요. "영어를 자주 쓰는 해외영업팀에서는 간단한 인사를 영어 약자로 주고받는 게 일상화돼 있는데,이를 모르고 오해한 주 과장이 머쓱해진 상황이다.
금속소재기업인 L사에는 '3대 불순물'이 있다. 3대 불순물은 금속제련에서 순도 높은 제품을 뽑아내기 위해 제거해야 하는 비소,안티몬,비스무스 등 세 가지를 말한다. 경력 채용으로 들어온 성 과장,최 과장,한 대리 세 사람은 직장 내 교육훈련(OJT) 첫날 밤 숙소를 탈출해 술을 마신 뒤 다음날 교육 시간에 비몽사몽 상태로 교육을 받다가 팀장에게 찍혔다. 마침 불순물에 대해 가르치던 팀장이 "이런 사람들이 바로 우리 회사의 '3대 불순물'이다"고 한 뒤 세 사람은 각각 비소와 안티몬,비스무스가 됐다.
공장용어가 자주 등장하는 화제는 연애와 결혼이다. 은행에 입사한 신입사원 김관철 씨.여자친구가 있는지를 묻는 선배의 질문에 "최근에 공무원과 사귄다"고 답하자 선배가 대뜸 '리스크 프리 애셋(risk-free asset)'이라며 부러운 눈초리를 보냈다. 신분과 정년이 보장되는 공무원을 이성으로 만나면 '무위험 자산'과 다름없다는 의미다. 건설업계에서는 연애를 오래 하다가 결혼을 하는 직원이 있으면 "드디어 잔금 치르는구나"라며 축하 인사를 건네고,결혼 후 혼인신고를 안하면 "여태 이전등기를 안했냐"며 면박을 주기도 한다. 증권업계에서는 신입사원이 소개팅에 나서면 '시장에 나왔다'는 의미로 '상장'이라고 표현한다. 애인이나 부인을 두고 바람을 피우면 '장외거래'가 된다. ◆'바른 말'의 억압에서 해방되면…
공장용어가 가장 발달한 업종으로는 증권업계와 법조계,언론계 등이 꼽힌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이들 모두 '바른 말과 정확한 글'을 필요로 하는 직업군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하지만 종목추천 리포트,판결문,기사 등에서 해방되면 그야말로 비문과 속어가 난무한다. 특히 증권업계는 은어와 속어의 메카다. 뇌동(雷同)매매는 원칙없이 시장의 인기에 편승하는 투자를 말하지만 최근에는 '뇌동(腦同)매매'라는 뜻으로 변용됐다. 숨겨진 투자정보를 서로 공유하는 사람들끼리 이뤄지는 투자를 말한다.
법조계에도 은어가 많다. '벙커'는 '일을 잘 못하면서 후배들한테 일을 가혹하게 시키는 선배 판사'를 말한다. 자신은 벙커에 남아있는 채로 후배들에게는 총탄이 빗발치는 사선을 뚫으라고 지시하는 '얌체 상사'라는 의미.합의 재판부는 원래 3명이지만 휴가 등으로 자리가 빌 때는 옆 재판부 판사가 잠시 자리를 채워주기도 한다. 이 때는 '몸배석'이라고 한다. 말 그대로 '몸만 앉혀놓는다'는 뜻이다. 배석판사가 판결문 작성 후 부장판사에게 가져다 주는 것을 '납품한다'고 표현하기도 한다. 최근의 저축은행 관련 비리 수사는 '깡치사건'에 해당된다. 관련 자료가 수천 페이지가 넘어 파악이 힘들거나 세간의 주목이 집중돼 판결이 어려운 사건 등을 가리키는 말이다. 검찰에서는 의미가 큰 대형사건을 '벤츠',자질구레한 사건은 '자전거'로 통용된다. ◆일본어 지고,영어 뜬다
최근 젊은 직장인들은 약어를 즐겨 사용한다. 메신저,휴대폰 문자 등을 사용하면서 나타난 현상이다. 사무실이 아닌 외부장소로 바로 출근하는 '직출'(직접 출근의 준말)을 비롯해 '법카(법인카드)','칼퇴(칼같이 정시퇴근)','즐근(즐거운 근무)','열근(열심히 근무)'등도 대표적 약어.
한동안 일제시대의 영향으로 일본어에서 파생된 속어가 많았지만 최근에는 영어가 이를 대체하고 있다. 드라마 '시크릿 가든'을 통해 회자된 '삼신할머니 랜덤(random)'이 좋은 예."삼신할머니 랜덤 덕에 금수저 입에 물고 태어난 주제에…"에서처럼 부모 잘 만난 사람을 비꼬는 말에 쓰인다.
과거에는 디자인업계를 중심으로 '멋있다,똑부러진다'는 표현으로 '간지난다'는 표현을 자주 썼다. 일본어 '간지(かんじ · 느낌)'에서 나온 말이다. 하지만 요즘에는 드라마 '스타일'의 영향으로 '에지(edge · 모서리,칼 등의 날)있다'가 더 자주 쓰인다. 광고업계에서는 사용하는 '바리치다'는 영어 '베리에이션(variation · 변화,변형)'에서 나온 말."이번에 광고제작물 몇 개나 바리쳐야 하나요?"라는 질문은 '하나의 제작물을 몇 가지 종류의 광고사이즈로 변형해야 하는가'를 묻는 말이다.
고경봉/노경목/강유현 기자 kgb@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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