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酒道

'매얼(媒蘖)되다'란 옛말이 있다. 술밑(媒)과 누룩(蘖)이 잘 어울려야 술이 된다란 뜻으로,모든 사물은 어울려서 이뤄진다는 말이다. 우리 조상들은 이처럼 어울림을 세상 이치의 근본으로 봤다. 술밑과 누룩이 어울리지 못하면 술이 될 수 없는 것처럼,사람과 사람 사이에 조화가 없으면 사회 곳곳에서 충돌이 생겨 불안해진다.

어울린다는 것은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고 나아가 나의 부족한 부분을 채우는 것으로 완성된다. 극단적인 갈등이나 충돌은 그 차이를 인정하지 않고 없애려다 생긴다. 나와 비슷한 사람을 만들기 위한 시도는 성공하기도 쉽지 않거니와 성공하더라도 그 과정에 무수한 부작용을 낳는다. 이런 이유로 사람들은 부족한 부분을 채워줄 수 있는 우호적 인간관계 쌓기에 열중한다. 사교의 방법이 다 다르겠지만 많은 사람들은 술자리를 통해 인간관계를 맺는다. 술을 통해 보다 솔직해질 수 있고,경계심을 풀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실제 최근 한 취업사이트에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대학생의 66.3%가 '친구들과 교우관계를 위해 음주를 한다'고 응답했다. 전혀 술을 마시지 않는 사람은 20%에 불과했다. 술이 가진 효용은 분명하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벽을 허물어 관계를 돈독하게 한다. 술을 마시기 전까지 부담스러웠던 사람이 술자리 이후 쉽게 편해지는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다. 항상 피로와 긴장에 짓눌려 있는 현대인들에게 쉼터 역할도 한다.

그러나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이 하나 있다. 바로 술을 마시는 사람과 자신이 마시는 술의 어울림,조화다. 술이 품고 있는 맛과 향을 즐길 수 있는 여유가 술과의 어우러짐을 완성한다. 이런 여유를 찾지 못하면 술이 술을 마신다는 말처럼 술자리가 당초 의도와 달라진다.

"잔을 돌리되 세 순배 이상 하지 않는다. " 우리 조상들의 음주문화를 나타내는 대표적인 주도(酒道)라 할 수 있다. 술을 즐기되 절제를 강조하고 동시에 술을 잘 못하는 사람들을 배려한 것이다. 절제되고 바른 음주를 통해 사람을 아끼고 사람과의 조화를 이루려는 조상들의 지혜를 엿볼 수 있다. 조상들은 특히 소학에서 술에 임하는 예법을 익혀 건전한 음주문화를 만들었다. 요기(療飢)를 위한 술집은 있었지만 몰려 다니며 술을 마시는 법이 없었고,술집에 노래를 하고 춤을 추는 기생은 있었지만 옆에 앉아 같이 마시는 작부는 없었다. 술자리는 반드시 공개했고,자식이나 제자들과 동행해 술시중을 들게 해 술 마시는 법도를 익히게 했다. 아쉽게도 여유와 배려의 철학이 밑바탕에 깔린 우리 고유의 음주문화를 이젠 찾아보기 힘들다. 술이 사람을 마시는 무절제한 음주문화가 우리의 것인 양 똬리를 틀고 있다. 우리네 조상이 물려준 사람과 사람의 어우러짐,사람과 술이 조화된 건전한 음주문화가 그리워진다.

배중호 < 국순당 사장 jungho@ksdb.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