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길진 칼럼] 살아있는 한 정년은 없다
입력
수정
얼마 전 지인이 가까운 골프장을 찾았다. 기분 좋게 이야기를 나누며 코스를 이동하려는데 진행요원이 다가와 잠시만 기다려 달라고 양해를 구했다. 이유는 앞 팀에서 속도를 못 맞추고 있다는 것. 기다리는 시간이 길어지자 앞 팀이 어떤 사람들인지 다들 궁금해 했다.
문제의 앞 팀은 93세의 할아버지가 가까운 친지들과 팀을 이룬 60세 이상의 실버 그룹이었다. 항의하러 달려온 뒤쪽의 팀들도 고령의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나이를 잊고 즐기는 아름다운 모습을 보자 고개를 끄덕였다. 다들 '나도 저 나이되면 저렇게 건강하게 골프를 즐길 수 있을까' 부러워하는 눈치였다. 나이는 단지 숫자에 불과하다고 하지 않는가. 살아있는 동안은 언제나 청춘인 것이다. 과거엔 회갑을 넘기면 어르신 대우를 받았지만 이제는 옛일이 되었다. 요즘은 동네 경로당에 가면 75세 노인이 담배 심부름을 한다고 한다. 85세 이상은 되어야 어르신 대우를 받을 수 있고, 65세 이하는 버릇없다고 아예 근처에도 못 오게 할 정도로 평균수명이 늘었다. 과거엔 정년퇴직 이후의 삶은 덤이려니 했지만 이제는 30년을 더 바라봐야 하니 환갑 이후는 이제 인생의 후반전인 셈이다. 퇴직을 했더라도 당당히 제2의 인생을 살 각오를 해야 한다.
커넬 샌더스는 65세에 도산해 100달러 남짓을 손에 쥐고 새로운 사업 계획서를 만들어 1000번 이상 거절당한 끝에 치킨 가게를 열 수 있었다. 그는 가고 없지만 그의 열정은 지금도 깨끗한 정장을 입은 할아버지 마스코트로 세계 곳곳에 남아있다. '인간의 굴레'를 쓴 소설가 서머셋 모옴은 젊은 여비서 일기장에 85세에도 사랑을 불태웠다는 증거를 남겼다. 그런가 하면 미국 켄사스 주에 거주하는 95세의 노라 옥스는 포트헤이스 주립대학교를 졸업했고 캐서린 로빈슨은 96세에 노스캐롤라이나에서 변호사를 개업했다. 99세에 테네시 주에 거주하던 데이비드 유진 레이는 글을 깨우쳤다. 그야말로 백발의 청춘이 아닌가.
노년의 도전은 몇몇에게 한정된 특권이 아니다. 몸을 가꾸기에 앞서 마음과 영혼을 가꾸는 길은 모두에게 열려있다. 하루를 한 생(生)으로 여기며 산 사람은 창의적 열정으로 매일이 즐겁다. 노화는 육신의 생리이지 영혼의 순리는 아니다. 퇴직에는 정년은 있어도 살아있는 한 인생에는 정년이 없다. 나이 50이 넘으면 대부분 산에 가면 친구들을 만날 수 있다고 한다. 반면 외국의 경우 일선에서 물러난 사람은 대학이나 자원봉사활동에 가면 만난다. 파트타임으로 또는 무보수로 일을 하기 때문이다. 자신의 나이에 지레 겁먹고, 마음이 먼저 늙어버린 것은 아닌지 한 번 생각해 볼 일이다. 마음에 간직한 청춘의 씨앗을 밖으로 꽃피우는 일에는 나이는 전혀 문제가 안 된다.
마음이 청춘이면 외모나 나이는 하등 문제될 것이 없다. 그리고 움직일 수 있는 동안은 정년이란 없다. 마음이 움직이지 않고 욕망이 없을 때, 그때가 바로 정년이다. 대기업 그룹부회장을 지내고 62세의 나이에 호텔 웨이터로 새롭게 일했던 서상록씨는 말한다. “인생에서 무엇을 지금 하든 늦은 것은 없다”고. (hooam.com/whoim.kr)
☞ 차길진 칼럼 더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