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황 모르는 한국 백화점] (2) 상품 구성 '끝없는 변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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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로 뛰는 백화점…홍대 '길거리 브랜드'도 유치지난 주말 서울 압구정동 현대백화점 본점 지하 1층 식품매장.한 제과점 앞에 유난히 많은 사람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간판 이름은 '르 알래스카'.지난해 5월 서울 강남구 신사동 가로수길에 문을 연 뒤 '프랑스 유학파가 만든 정통 프랑스 빵'이라는 입소문을 탔던 빵집이다. 소문은 홍순지 현대백화점 델리 담당 바이어의 귀에도 들어왔다. 수차례에 걸쳐 직접 맛을 보고 소비자 반응을 살핀 홍 바이어가 "현대에 들어와달라"며 주인에게 명함을 내민 건 가로수길 가게 문을 연 지 두 달 만의 일이었다.
뜰만한 브랜드 발굴해 6개월마다 매장 개편
가로수길 빵집도 입점시켜
지난 2월 매장 개편 때 10㎡(3평) 규모로 입점한 르 알래스카는 월 8000만원 안팎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면적당 매출로 따지면 30여개 델리 매장 중 1등이다. 김봉진 현대백화점 MD(상품기획)개발팀장은 "끊임없는 매장 변신이 한국 백화점들의 경쟁력을 끌어올린 핵심 요인"이라며 "백화점 MD의 역할도 입점을 원하는 업체 중 좋은 브랜드를 고르는 것에서 좋은 브랜드를 직접 발굴해오는 것으로 바뀌고 있다"고 전했다. 뛰어난 상품구성 능력은 한국 백화점들이 '나홀로 성장'을 거듭하고 있는 비결 중 하나로 꼽힌다. 패션만 해도 명품에서부터 '길거리 브랜드'에 이르기까지 대한민국에서 잘나가는 브랜드는 모두 백화점에서 만날 수 있다. 6개월마다 한 번씩 실시하는 봄 · 가을 매장 개편을 통해 점포 전체를 '요즘 가장 뜨는' 브랜드와 '조만간 뜰' 브랜드로 탈바꿈시키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주요 백화점들은 봄 · 가을 개편 때 전체 입점 브랜드 중 매출이 낮은 하위 10~20%를 퇴출시키거나 면적을 줄이고 그 자리에 '신인'들을 채워 넣는다"며 "덕분에 한국 백화점들은 소비자들에겐 '신선함'을,기존 입점 업체들엔 '긴장감'을 불어넣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거두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런 끊임없는 변신은 '빅3' 백화점들이 밀리오레 굿모닝시티 등 2000년대 초 부상했던 서울 동대문이나 명동지역 패션쇼핑몰과의 대결에서 '완승'을 거두는 성과로 이어졌다. 패션쇼핑몰은 수백명의 소유자가 분양받은 매장을 제각각 운영하는 방식인 탓에 트렌드가 바뀌어도 발빠르게 대응할 수 없었던 반면 백화점은 '오케스트라의 지휘자'처럼 그때 그때 상황에 맞게 매장 분위기와 입점 브랜드를 변화시킬 수 있었기 때문이다. 신세계가 최근 인천점을 확대해 재개장하면서 럭셔리의 대명사인 루이비통과 중 · 저가 패스트패션의 선두주자인 H&M을 1층에 같이 입점시킨 게 대표적인 예다. 서로 상이한 두 브랜드가 같은 건물,같은 층에 들어서기는 세계 최초였다. 신세계가 지휘자가 돼 성격이 판이하게 다른 두 브랜드를 설득하고 조율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박건현 신세계백화점 대표는 "빅3 백화점들은 최신 트렌드와 소비자 니즈를 파악해 이보다 딱 반보(半步)만 앞서 나가려고 노력한다"며 "한발 이상 빨리 나가면 고객이 따라오지 않고,반발이라도 느리면 고객이 외면하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롯데백화점이 홍익대 앞 길거리 브랜드였던 '컬처콜'을 지난 2월 봄 매장개편 때 서울 소공동 본점,잠실점,노원점 등 9개점에 입점시킨 것도 최신 트렌드에 '딱 반보 앞서가는' 백화점 상품구성 사례로 꼽힌다. 현대백화점은 패션 바이어들이 엄선한 '최신 유행 스타일'을 한데 모은 편집매장 '스타일 429'를 압구정 본점에 운영하면서 앞으로의 유행 경향을 파악하는 '리트머스 시험지'로 활용하고 있다.
오상헌 기자 ohyeah@hankyung.com